주일예배 –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도행전 11:19-30)

Posted on 10월 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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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도행전 11:19-30)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 본문: 사도행전 11:19-30
10/04/2020 주일 낮 예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들을 부르는 호칭들이 사도행전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 “성도” “형제들” “신자들” “교회” “주의 백성” “따르는 자” (Followers)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그리스도인”(Christians)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게 된 내용이 오늘 본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Christianoi), Christians, 접미사 ‘ian’ 은 ‘~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호칭은 아마도 안디옥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붙인 조롱과 유모가 섞인 단어인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헤롯왕의 측근들을 일컬어 ‘헤롯의 사람’(Herodianoi), 가이사의 측근들을 ‘가이사의 사람’(Kaisarianoi)라 불렀던 것과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안디옥 교인들에 붙여진 이름인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처음으로 불리게 된 곳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래서 먼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게 되었는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바와 같이 스데반의 순교 이후 기독교에 대한 큰 박해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 중 일부는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마리아에 큰 부흥이 일어 나게 됩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대표로 파견하여 상황을 파악하게 하고, 그들의 안수로 말미암아 성령이 사마리아 신자들에게도 부어지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19-21절 말씀에 보면,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사마리아 북동쪽 지중해 해안 지역, 오늘날 레바논)와 구브로(북동쪽 지중해의 섬이자 바나바의 고향)와 안디옥(당시 로마의 속주인 수리아(시리아)의 수도)에 이르러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흩어진 사람들 중 구브로와 구레네(북아프리카, 오늘날 리비야의 도시) 출신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은 헬라말을 하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복음이 유대 지역을 넘어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 지역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수 많은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여 볼 부분은 안디옥에까지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사도들도 아니요 일곱 집사중 한명인 빌립도 아니고 ‘무명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방인 지역의 최초의 교회이며 이후 선교적 교회의 모델이 되는 안디옥 교회의 시작은 흩어진 무리들 가운데 무명의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사람은 바울이나 바나바, 사도들, 일곱 집사들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기름부으신 위대한 사역자들도 있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도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안디옥이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디옥은 B.C. 300년 알렉산더 대제의 장군들 중 한명인 셀레우크스 니카토르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 이름을 따라 ‘안디옥’이라 칭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80킬로미터, 지중해 북동쪽으로 24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에 있는 이 도시는 멋진 건물들로 인해 ‘아름다운 도시 안디옥’으로 불리었습니다.

도시 설립자는 헬라인이었지만 적어도 50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셀레우크스의 제안에 끌려서 온 유대인들도 많았고, 페르시아, 인디아, 심지어 중국에서 온 동양인들도 거주하는 국제적인(Cosmopolitan)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안디옥은 끔찍할 정도로 타락한 도시였으며, 이교도들 가운데 성행하던 악한 풍조들과 성적 부도덕을 부추기는 여러가지 이교적 제의를 위한 예배 중심지였습니다.

이처럼 상업의 중심지요,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는 국제적인 도시, 우상 숭배가 성행하던 도시에 흩어진 무명의 전도자들을 통해 이방 교회가 세워진것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께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들은 이방 문화 가운데 살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의 쾌락과 물질과 권력의 힘을 믿고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해졌을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그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우상과 세상의 헛된 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었으며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때 그들이 보인 반응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살전 1:9)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진실된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로 부터 매국노 취급을 당하며 조롱과 멸시를 한몸에 받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수많은 군중들 사이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은 나무위에 앉은 삭개오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눅 19: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개인적으로 부르신 것도 놀랄 일인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머무시겠다는 말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회개의 고백을 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세금을 착취하였던 그는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삭개오의 회심은 단순히 마음의 변화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내놓을 정도로 그의 회심은 변화된 행동을 수반하는 진정한 회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삭개오처럼 진정한 회심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적인 의미의 ‘회개’ ‘회심’은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 뿐 아니라, 행동과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옛사람의 생각과 생활 습관을 모두 버리고, 돌이켜 새사람의 옷으로 덧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벗어 버려야 할 옛사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골 3:8-9)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입고 있었던 옛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 옷을 입은 성도들이었습니다.

2) 두번째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23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NASB: began to encourage them all with resolute heart to remain true to the Lord) (KJV: that with purpose of heart they would cleave unto the Lord) (새번역, 현대인의 번역: ‘의지하라고 권하니’)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바나바의 권고를 따라 ‘굳건한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었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님을 믿는 행동은 큰 희생을 동반하는 담대한 결정이었습니다. 로마 당국으로부터 핍박과 유대인들로부터의 박해와 지역 공동체와 심지어 가족들로 부터 추방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도들은 ‘굳건한 마음’을 가져야 했고, 그들의 주(The Lord)와 구원자(The Savior)되시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고, 예수님만 의지해야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굳건한 마음’으로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안에 머물러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포도 나무 가지된 우리가 포도 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머물러 있을 때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세번째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무명의 전도자들의 전도로 시작된 이방인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의 영적인 지도로 말미암아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위로와 격려의 은사를 가진 초대 교회의 훌륭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구브로 섬 출신으로 자신의 밭을 공동체를 위해 기부하였고, 이후 사울이 회심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과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않았을 때,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적극 추천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안디옥 교회는 영적으로 견고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외적으로 교인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혼자 대형 교회를 목양하기에 버거워서, 함께 사역할 동역자를 찾게 되었는데 다소에 칩거 중인 사울을 생각하게 되어 그를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들 데리고 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은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를 죽일려고 하자 형제들이 그를 고향인 다소로 피신시킵니다.
고향 다소에서 그는 5년 혹은 8년 정도 은둔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사울에게 사역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울을 택하심을 알고 있었던 바나바는, 헬라 지역인 다소 출신으로 이방인들을 잘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헬라말로 잘 가르칠 수 있는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 꼭 필요한 사역자임을 알았기에 그를 동역자로 데리고 왔습니다.

두 사람은 일년동안 안디옥 교회의 많은 교인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회심 이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벧전 2:2)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두 명의 탁월한 교사들로부터 잘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배우는 자들입니다. 영적인 초보에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며, 기도를 배우고, 전도에 대해서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1-42)

침례 받은 초신자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말씀을 배우며 교제하며 기도 하기를 힘쓰는 공동체가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나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기를 힘쓰고 있는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애쓰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4) 마지막으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27-30절 말씀에 보면 글라우디오 황제가 통치하던 때에 (주후 41-54년) ‘천하에’ (로마가 통치하는 지역 전체에) 큰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 편으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합니다.

안디옥 지역에도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자신들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모 교회(mother church)인 예루살렘 교회에 도움의 손길을 펼친 것은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기 까지 예루살렘 교회는 전도자들을 보내었고, 바나바를 목회자로 파송하여 교회의 성장을 도모하였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도움을 받은 안디옥 교회는 모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부해야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9절 말씀에도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각기 자기 힘 대로’ 즉 ‘형편에 따라’ 하면 됩니다. 적게 가진 자는 적은 대로, 많이 가진 자는 조금 더 여유있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정한대로 하면 됩니다.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면 안됩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성도들과 이웃들과 나누는 성도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즐겨 불렀던 오래된 복음 성가 가사에도 이런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사랑은 참으로 베푸는 것 베푸는 것 베푸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베푸는 것 더 가지지 않는것
이상하다 동전 한 잎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하네”

우리 모두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돌보고 섬기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베풀며 살았던 신실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소개하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할려고 합니다.

일본에 병을 달고 살았던 신실한 그리스도인 여인이 있었습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녀는 가게를 하면서 찾아주는 모든 고객에게 매우 정직하고 친절하여 멀리까지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고객이 많았습니다. 작은 구멍가게였지만 트럭으로 물품을 구내해 올 정도로 호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게 때문에 주변의 다른 가게들은 물품이 팔리지 않아서 가게 문을 닫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그녀에게 근처 가게의 폐업을 염려하자 심성이 고운 그녀는 물건의 양과 종류를 줄이고 그런 물건을 찾는 손님이 오면 ‘우리 집에는 없으니 건너편 가게로 가보라.’고 다른 가게로 자신의 고객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점점 고객이 줄어들고 수입도 줄어들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평소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는 여유로운 시간에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소설을 탈고하여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그 소설이 ‘빙점’ 이라는 소설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나누었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여인은 바로 빙점의 저자인 ‘미우라 아야꼬’입니다. 이렇게 자신보다는 이웃을 생각하고 자신의 욕심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했던 아야꼬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보상을 하셨습니다. ‘빙점’이 신문사 최우수 작품으로 당선되고 많은 상금을 받았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배려한 미우라 아야꼬에게 하나님께서는 부와 명예를 함께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치와 쾌락과 우상 숭배가 가득한 이방 도시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 교인들을 일컬었던 이름, ‘그리스도인’ (크리스티아노이)의 의미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최초의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것은 그들의 말과 행동 방식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 불릴만큼 그들은 구별되고 영향력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것은 4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 그들은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믿고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2. 그들은 그리스도안에 굳건한 마음으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꾸준히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4. 그들은 섬기고 베푸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웨인즈빌 침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 모두 그 이름에 걸맞은 믿음과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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