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주일 예배(스데반의 설교 III, 성령을 거슬린 사람들)

Posted on 7월 9,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07-05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7월 5일 주일 예배(스데반의 설교 III, 성령을 거슬린 사람들)

스데반의 설교 III “성령을 거슬린 사람들”
• 본문: 행 7:37-53
7/5/2020  주일 낮 예배
우리는 지난 2주간에 걸쳐서 스데반의 설교 두 편을 나누었습니다. 첫번째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약속과 요셉을 통한 구원에 대한 말씀을, 두번째 시간에는 모세를 통한 구원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스데반의 설교 세번째 시간으로 “성령을 거슬린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 거의 대부분에 걸쳐서 유대인들을 향해 긴 설교를 합니다. 설교의 핵심은,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성전을 모독하고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고발한 것에 대한 반박입니다.
지난 주에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시내산 가시 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두려워 떨고 있는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 (7:3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서 있는 땅, 즉 미디안 광야 시내산 그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곳은 그곳이 이방 땅이라 할지라도 거룩한 땅,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됨을 말씀해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 모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사모하며 죽어서도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은,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약속하여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복을 주실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할 가나안 땅에만 머물지 않을 것을, 미디안 광야 시내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존으로 예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출 20:24)
하나님은 “내 이름을 기념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선민주의와 우월의식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고 주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을 향한 논증의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조상들 (모세의 율법을 어김) (7:37-43)
• 새로운 성전 개념 (7:44-50)
•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함 (7:51-53)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조상들 (모세의 율법을 어김) (7:37-43)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거절하며 우상을 숭배하였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스데반은 출애굽기 33장에 기록된 ‘금송아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지 오래되었는데도 내려 오지 않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형 아론더러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7:40)고 합니다.
백성들의 아우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론은 그들의 요구대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은 그 우상 앞에서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며 춤을 춥니다.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명이 없는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이 자기들을 인도할 신,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모세에게 친히 돌판에 적어 주신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도, 두번째 계명도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고 만들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4백년동안 노예로 지내던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영적인 지도자 모세를 세워 그들을 애굽으로 부터 탈출(exodus)하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로 부터 내리셔서 그들을 먹이신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광야에서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 (7:42)을 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늘의 군대는 하늘의 모든 천체들, 곧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우상으로 섬긴 하늘의 군대 가운데는 “레판의 별” (7:43)도 있었습니다. 레판의 별은 아모스 5:26에 나오는 기윤이라고도 이르는 토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토성을 우상으로 여기며 숭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하늘의 별들을 신성시 여기며 그것들을 예배하였습니다.
43절에 “몰록의 장막”은 이방 민족인 암몬 족속이 섬기던 우상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해 아모스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스데반은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범한 불순종의 죄악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42절 하반부 부터 43절 말씀은 아모스 5:25-27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다메섹 밖으로” 사로 잡혀 갈것 (바벨론 포로)을 예언합니다.
스데반은 그 말씀을 인용하면서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 처럼, 당신들이(유대인들)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그 율법의 참 정신,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망각하고 그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범한 것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모독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조상들처럼 돈을 우상시하고 권력을 우상시하고 전통을 우상시함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버렸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전 개념 (7:44-50)
계속해서 스데반은 율법에서 성전으로 주제를 바꾸어 설교를 이어갑니다.
44절에 ‘증거의 장막’이라 한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회막)을 만들것을 명하시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자세한 설계도와 디자인을 알려 주셨는데, 성막안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그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증거판’이라고 불리웠던 십계명 돌판이 있었던 그곳을 ‘증거의 장막’이라 칭하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이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진군할 때 성막을 중심으로 대진을 형성하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성막은 ‘움직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그 성막을 가지고 들어갔고, 나중에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이후 자신은 화려한 왕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과도 같은 언약궤가 휘장친 장막에 있는 것에 대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견고할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성전 건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 때에 시작되고 완성되게 됩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는 당시 최고의 품질이었던 레바논 백향목을 사용하였는데, 그 벌목을 위해 동원한 군인의 수가 3만명이었습니다. 석재를 채석하기 위한 채석공의 수는 8만 명이었고, 성전 공사에 투입된 인부는 7만명이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을 감독하는 감독관의 수만도 3,300명이나 되었습니다. 무려 18만 3,300명이 장장 7년에 걸친 대역사끝에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되었습니다.
성전 건물은 가로 120미터, 세로 180미터에 달했고, 성전 기둥과 마감재는 금과 은과 같은 진귀한 보석으로 덮여졌습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그 성전에 늘 함께 하시며, 그곳에서 예배하는 백성에게 복을 주시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 (사 66:1)하면서 하나님은 성전을 초월해서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임재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7:49-50)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완성하고 드린 기도문에도 동일한 의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왕상 8:27)
이미 천년 이전 성전 건축을 완공한 솔로몬 왕도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만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온 천지 만물 가운데 임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며, 하나님을 기념하는 모든 장소에 임하셔서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왜곡된 성전 의식에 사로 잡혀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전 586년에 이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불에 타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으며,  성전안에 있던 금 은 그릇들과 예배 도구들, 성전을 장식하고 있던 금과 은들은 모두 약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계속 건축중이었던 헤롯 성전도 대단한 성전이었는데, 스데반이 생존하였던 시기로 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후 70년 8월 29일 유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공격한 로마 티두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성전의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 초토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해 주는 수단으로 여겼고, 겉으로는 성전을 신성시하고 있었지만, 성전의 비참한 종말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 성전을 허물라 사흘만에 내가 다시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 숭배 사상을 버리고 새로운 성전 시대를 여시는, 성전 자체이신 예수님께로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각종 수입으로 부를 누리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수입의 원천’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성전을 지키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중심은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짐승을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더립히고 있는 그들을 향해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내 아버지 집”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성전)로 지어져 가는” 믿음의 백성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이 심령이, 성도들의 삶의 자리가 성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우리들도 유대인들처럼 사람이 지은 성전(예배당)을,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보다 더 중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 하나님을 만나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성경을 우상시해서 성경위에는 물건도 놓지 않고, 성경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죄악시 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성경이 되는 것은,  그 말씀을 겸손한 마음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살았고 운동력있는 말씀”인 성경이 되는 것이지, 부적처럼 신주단지처럼 모시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깨끗하게 잘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줄치고 사용해서 너덜너덜하게 되어야,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지고 진리에 거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함 (7:51-53)
스데반은 설교의 결론 부분에서 직설적으로 율법을 어기고 불순종하며, 성전 숭배 사상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을 책망합니다.
그들을 향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칭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됨을 표식으로 남기는데, 할례받은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은 육체의 할례는 받았으나 마음과 귀의 할례는 받지 못한 자라고 꾸짖습니다.
사도 바울도 증거하기를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outwardly)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inwardly)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롬 2:28-29)고 하였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자’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유대인들에는 욕과도 같은 말이었고 매우 모욕적인 말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더 나아가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7:51)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는 성령을 대적하는, 거스르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였으나 광야 시대 조상들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또 그들은 성전을 자신들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아서,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을 더렵혔을 뿐 아니라 진정한 성전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기 보다 육체의 소욕에 지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5장에서 육신의 정욕에 사로 잡혀 있던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간절히 권면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6-18)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향해 말하기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였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의인으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은 자들임을, 살인자들임을 선언합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강력한 메세지였고, 그들의 사악한 행동과 마음을 꿰뚫는 송곳과도 같은 직설적이며 용기있는 선포였습니다.
또한 스데반의 설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위험한 설교였습니다.
당시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할례받지 못한 자들, 성령을 거스르는 자들, 의인을 십자가에 못박은 살인자, 천사가 전한 율법을 지키지 않은 범법자들이라고 통렬히 꾸짖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데반은 이 한편의 설교로 인해 군중들의 돌에 맞아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의 제단에 드려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웨인즈빌 침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지. 내 마음속에, 내 삶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나의 삶이,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성령이 거하시고 성령이 나를 다스리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육체의 소욕과 탐욕이 나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유대인들처럼 성령을 거스르지 않고, 내 안에 거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순종하고 동행하는 매일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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