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2) (사도행전 10:24-48)

Posted on 9월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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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date 2020-09-20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예배 –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2) (사도행전 10:24-48)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2)”
• 본문: 사도행전 10:24-48
9/20/2020 주일 낮 예배

우리는 지난주 부터 이방인 고넬료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고넬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욥바에 있는 사도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베드로의 기도 시간에 황홀한 중에 ‘신비한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고넬료와의 만남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 하기 전에 성령은 미리 베드로에게 알려 주시고,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는 바로 그 때에 고넬료가 보낸 일행의 방문을 맞게 되고, 그들을 자신의 집에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총감독이요 연출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방인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요 계획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과 환상의 설명 내용이고, 다음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 전파의 내용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 임한 성령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소제목을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24-33)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3명의 사람들과 함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출발합니다.

혼자 가지 않고 여섯 명의 유대인 형제들(11:12)과 함께 갑니다.

고넬료가 보낸 두 하인과 로마 군인 한 명은 모두 이방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방인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것은 유대인의 관례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교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구원하실 계획에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 걸려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도착해 보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들어 올 때에 고넬료는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합니다. 로마 군대의 장교인 고넬료가 갈릴리 출신 어부, 유대인 베드로 앞에 엎드리어 절하는 모습은 당시의 관습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고넬료의 겸손한 인품을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그는 베드로가 환상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임을 믿었기에 그에게 최대한 공경의 예를 취할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나도 사람이라’ 즉 나는 사람의 경배를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도 피조물에 불과함을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이 내용은 사도행전 14장에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며 이적을 행하자 마을 사람들이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 즉 그들이 섬기는 우상(수호신)이 현현했다고 생각하여 그들 앞에 제사를 하려고 하자, 바나바와 바울이 깜짝 놀라 옷을 찢으며 우상 숭배의 죄를 범치 말라고 말리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모인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관례에 어긋나는 것인 줄은 당신들도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셔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셨기에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이곳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넬료에게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지 묻습니다.

고넬료가 환상 중에 나타난 천사의 메세지를 전하며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고 합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친척, 친구들이 구원받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이지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고넬료가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힘쓴 고넬료, 그는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자신 뿐 아니라 온 가족 식구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가장으로서 신앙의 모범을 보였으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던 로마 장교였습니다.

또한 그는 성품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꿇어 엎드려 절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권위와 신분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신저에게 최대한 예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그와 가족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에 대해 들어야했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 보내신 사도 베드로를 그는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전한 말을 통해 고넬료의 경건한 신앙심과 겸손함,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주일 오후 예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의 첫번째 시간에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4가지 마음의 밭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맺는 ‘옥토’(좋은 땅)밭이 되어야함을 배웠습니다.

고넬료의 마음밭이 바로 이 비유에 있는 ‘옥토밭’과 같은 상태였다는 말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없었으며, 말씀의 뿌리가 내려질 정도의 품질이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그의 마음 밭에 베드로를 통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자,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은 순전히 말씀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칠십명의 전도대를 조직하여 둘씩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파송하실 때에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 10:5-6)

복음을 전하러 집에 들어 갔는데 ‘평안을 받을 사람’ (a man of peace), 다른 말로 하면 ‘평안의 사람, 평안의 아들’이 있으면 전도자들의 전한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전도자들에게 돌아 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지나 전도 대상지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평안(평화)의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 복음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진리에 목마른 영혼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명의 ‘평안의 사람’을 통해 온 가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이웃과 마을 전체에 복음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넬료는 바로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하여 하나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갈급한 영혼이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전해질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고넬료처럼 가난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준비되어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 (34-43)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환상을 통해서 자신을 이곳까지 보내신 섭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4-35)

‘외모를 보다’는 말은 원래 의미는 ‘얼굴을 취하다’입니다. 하나님은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인종, 국적이나 사회적 계층 같은 어떤 외적 기준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하실 때에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하)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피부 색깔로 판단하고, 인종에 따라 우열을 가리고, 경제적인 능력을 보고 사람을 가려 사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초대 교회내에서도 사회적인 신분이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성도들을 차별하기도 하였기에,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 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약 2: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으로서 베드로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과 관습을 깨뜨리시고, 사회적으로 부정하다고 천대와 멸시를 받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게 하시고, 고넬료가 보낸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게 하시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간단하지만 복음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36-43)

1) 복음의 정의: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6)
2) 복음의 전파: 침례 요한의 사역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전파 (37)
3) 복음의 능력: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 (38)
4) 복음의 증인: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은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일에 증인됨과 부활 하신 이후 나타나셔서 음식을 나누신 것을 증인됨
5) 복음의 핵심: 그리스도의 십자가(나무)에 죽으심과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음(신 21), 대속 제물), 삼일만에 부활하심,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심판주),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됨(구원주) (39-43)

베드로의 설교는 짧지만 복음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는 Powerful한 설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땅에서 행한 사역과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을 전파한 이후 구세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죄사함의 은혜에 대해 선포합니다.

그의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Christ – Centered Preaching)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 부어진 성령 (44-48)

바른 복음, 능력있는 메세지가 선포되었을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임하셨던 성령의 역사와 동일하게 고넬료와 친척, 친구들에게도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46)

베드로와 함께 내려온 여섯명의 유대인 형제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45)

‘놀라다’의 원래의 의미는 ‘이성을 잃다’입니다. 그들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빌립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자,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부터 파견되어 그 모든 일들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안수 기도하였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내용을 사도행전 8장에서 살펴 본 적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과 피가 썪인 혼혈인들이었고, 그들도 그리심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모세 오경을 경전으로 삼아 율법을 준행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넬료와 그의 식솔들은 이방인들이었기에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소위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을 목도하게 된 것이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유대인들에게 임하였던 성령은, 원수처럼 여긴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부어졌고, 마침내 이방인들에게도 부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이제 복음이 유대 땅과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 지역에 본격적으로 전파될 것임을 알려주는 시그널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그들에게 물로 침례를 베풉니다.

성령으로 침례 받은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물침례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을 증거하는 예식입니다.

물침례를 주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주신 지상 명령에 대한 순종의 행위입니다. (마 28:18-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초대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에게 즉시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침례를 받은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복음, 구원의 도에 대해서 더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 3:18) 고 합니다.

겸손한 자는 배우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르긴해도 아마 고넬료는 이후로 믿음이 성장해서 이방인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와 이번 주, 두번에 걸쳐서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사건이 주는 의미와 영적인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마음밭이 옥토밭처럼 준비된 고넬료와 그의 식솔들에게 베드로를 통해 생명의 복음이 전해졌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고 모든 사람들이 침례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복음은 인종과 문화와 신분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이방인이며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족, 친구들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에 이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은 가난하고 갈급한 심령 가운데 부어지며, 지금도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영혼들 가운데 부어집니다.

우리 모두, 고넬료처럼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날마다 고백함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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