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1)”
•본문: 행 9:43-10:23
9/13/2020 주일 낮 예배
지난 주에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 병자 애니아를 고치고, 욥바에서 여제자 다비다를 살리는 기적의 스토리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사건은 베드로가 행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 안에 살아 계시는 부활의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역사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베드로가 욥바에서 다비다를 일으킨 후 곧장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욥바에 여러 날 머물렀는데 머문 장소가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머문 집 주인의 이름 뿐 아니라 주인의 직업까지 소개하고 있는 것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술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두장이(tanner)는 죽은 동물의 가죽을 취급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것을 접촉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무두장이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부터 멸시를 받았습니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도 과거 조선 시대에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백정은 천민 중의 천민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어른인 백정에게 말을 하대할 정도로 백정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천대받는 무두장이의 집에 유대인 베드로가 머물렀다는 것은 그 당시 관습하에서는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구약 율법에 부정한 것을 만지는 자는 그 자신도 부정해 지기 때문에 정결 의식을 행하고 일정 기간 동안 격리생활 이후에야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동물의 시체를 다루는 무두장이 집에 머물면서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고 그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베드로도 부정케되는 일이었으므로, 유대 율법의 전통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책망을 들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베드로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여러날 머문 것은 베드로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께서 미리 베드로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종과 민족, 신분과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이방인에게도 전파되는 일이었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본격적으로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게 되는데, 이방인 선교에 교두보를 놓는 사역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총 48절) 전부를 할애하여 누가는 로마 군대 백부장 고넬료의 구원 스토리를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이번주, 다음주 두 번에 걸쳐서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사건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첫번째 설교의 주제는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1막 : 고넬료가 환상을 보다 (10:1-8)
10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먼저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북쪽으로 약 4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기념하여 지은 지명이며, 이곳에는 당시 로마 점령군의 본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고넬료’라 이름하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당시 최저 100명 정도의 부대를 통솔하는 로마 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장(Captain) 정도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겠지요.
2절에서 고넬료의 신앙과 인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누가복음 7장에도 가버나움에 거주하는 로마의 백부장이 등장하는 데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회장을 지어 줄 정도로 유대인들로 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게 되자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병 고쳐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에 가까이 갈 때에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직접 집에 오실 필요가 없사오니 말씀만 하사 하인을 낫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며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며, 그 종의 병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가버나움의 백부장처럼 고넬료도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God’s fearer)중 한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God’s fearer는 완전한 유대인 개종자는 아니지만,한 분 하나님을 믿고 유대인의 도덕과 윤리적인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 군대는 그 자체의 종교적인 것들을 준수했고 공식적으로 특정 날들을 규정했으며, 현대 교회의 행사와 같은 일상적으로 행하는 격식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인간의 영혼을 채우기에는 전적으로 불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로마의 군인들은 다른 종교, 예를 들면 미트라교나 유대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F.F Bruce, 사도행전)
아마도 고넬료도 이방인으로서 할례 문제등으로 인해 유대교로 개종하기는 꺼렸으나 유대 율법을 준행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경건한 유대교 신자였으리라 짐작됩니다.
그의 신앙과 삶을 묘사하는 2절에 보면, 그는 경건한 자였고,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고, (내적인 신앙의 모습)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자 (외적인 신앙의 모습)였습니다.
경건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는 희생 제물의 연기나 분향단의 향처럼 하나님의 보좌에 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4절)
고넬료는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라 오후 기도 시간(제 구시=오후 3시)에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고넬료에게 메세지를 전합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그에게 천사가 이르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4-6절)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여시기 전에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며 로마 군대의 장교인 고넬료를 주목하여 보셨고,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의 사자들을 사용하시고, 사도 베드로를 사용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구원의 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고넬료 말고도 다른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며 살고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특별히 고넬료를 찾아 가신 것입니다.
고넬료를 택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하심의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고넬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청하라고 알려 주시면서 그가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가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다비다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청한 성도들의 요청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드로를 욥바에 머물게 하신 것입니다.
고넬료가 거주하고 있던 가이사랴와 욥바는 48km 정도이므로 걸어서 하룻길 거리입니다. 걸어서 하루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기에 고넬료의 하인들과 부하가 욥바로 찾아 올 수 있었고, 베드로도 어렵지 않게 걸어서 가이사랴로 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머물렀던 것 또한 새로운 일을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신 것이라 믿어집니다.
천사의 메세지를 들은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알려주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 가게 합니다.
2막 : 베드로가 환상을 보다 (10:9-16)
고넬료가 보낸 일행들이 욥바로 출발한 -짐작컨대 오후 늦은 시각에 출발- 다음날 정오경에 욥바에 있던 베드로도 기도 시간이 되어 기도하려고 시몬의 집 지붕에 올라갑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시장하여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황홀한 중에 (fell into a trance), 신비로운 환상을 보게됩니다.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가 네 귀에 매여 땅에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은 네 발 짐승, 파충류, 새들이었는데, 이 동물들 중에 어떤 동물들은 유대의 율법과 관습에 의하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부정한 동물들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네 발 짐승중에는 되새김질도 하고 굽이 갈라진 동물은 정결하였지만, 이 조건에 맞지 않는 짐승들, 예를 들면 낙타, 토끼,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었으므로 먹지도 말고 그 시체도 만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파충류 중에는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종류는 먹을 수 있지만, 다른 파충류들은 부정한 동물로 규정되었습니다. 또한 날아다니는 새들은 다 부정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수 있는 정결한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을 구분하셨을까요?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 11:44)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이 율법을 어기는 자들에 대해서는 정죄와 판단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에 기록된 음식 규정과 당시 유대인들이 귀중하게 생각한 ‘장로들의 전통과 유전’에 매이지 않는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음식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거룩함의 본질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1)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 하시니라” (막 7:19)
구약의 율법의 가르침 중에 ‘음식법’과 ‘제사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폐지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게’(딤전 4:4) 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대속 제물,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음식 규정을 철저히 지킴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유대인이었기에 부정한 동물들을 먹거나 만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구약의 율법 규정에 따라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있으며, “피를 먹지 말라” (레 17:12)는 레위기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 도축할 때 세키타라고 하는 특별한 기술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빠른 동작으로 도축자(쇼켓)는 아주 예리한 칼로 동물의 경동맥, 기관, 식도를 절단해서 피가 완전히 빠지게 합니다. 주부는 고기에 피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30분 정도 미지근한 물에 넣은 후 고기에 코셔 소금을 뿌리고 경사진 곳이나 구멍 뚫린 판에 놓고 나머지 피가 빠지도록 합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삼지 말라” (출 23:19, 34:26, 신 14:21)는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 고기와 유제품을 동시에 먹지 않을 뿐 아니라 고기와 유제품을 담는 그릇도 구분하여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니 베드로는 순종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소리가 나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고 세번째에도 동일한 음성을 듣게됩니다.
베드로는 이 환상의 의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3막에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남으로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신것은 유대인들이 속되다, 부정하다고 여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미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 집사를 통해 이방인이었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사울을 택하시고, 또한 사도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로마 군대 장교와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경멸과 조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 여러 날 유숙할 정도로 율법과 관습에 매어있는 유대인이 아니라, 복음안에서 자유케 하시는 참 진리 가운데 거하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부정한 음식을 잡아 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은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메세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번씩이나 동일한 음성으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 그의 편견과 완고함을 부서뜨리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의 경험과 지식, 익숙한 문화와 관습을 더 소중하게 여김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마치 유대인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참 가르침을 져버리고, 안식일 규정과 음식법에 매여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것처럼, 우리도 동일한 실수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1835년 데이비드 넬슨 목사는 미국 중부에 엄청난 규모의 농장과 많은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예 제도 반대자의 연설을 듣고 그는 목사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노예 없는 감자와 소금만의 식탁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넬슨은 자신의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노예들을 풀어주고 농장도 처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선언과 실천은 주위 사람들의 환영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이웃 농장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웃 농장주들은 떼를 지어 넬슨을 죽이려고 했고, 넬슨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미시시피 강둑으로 도망쳤습니다. 추격자들을 피해 강가 숲속에 숨어 밤을 지새면서 멀리 강 너머 그를 맞이할 친구의 집을 바라보며 시를 적었습니다. 그 찬송시가 새 찬송가 485장 ‘세월이 흘러가는 데’의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농장을 운영하며 편안한 일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한 사람의 연설은 그에게 전해진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가 목사였지만 비성경적인 노예제도의 틀안에서 안주하며 풍요로운 삶만을 추구하였다면 그는 영적으로 불행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유와 기존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3막 :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다 (10:17-23)
베드로는 기이한 환상을 본 후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묵고 있는 시몬의 집에 찾아 옵니다.
‘마침’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시간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룻기 2장에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이 먹을 식량이 없어 궁핍하여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으로 부터 와서 이삭 줍는 모압 여인 룻을 만나게 됩니다. 이 극적인 만남은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의 음모로 모든 유대인이 전멸당하게 되었을 때 ‘마침’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여 역대 일기를 읽다가,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가 나라를 구한 영웅적인 스토리를 읽게 되고 그를 높이게 됩니다. 나중에 결국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하였던 나무에 자신이 매달려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확한 시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베드로가 만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그 사람들이 찾아 오기 전에 미리 베드로에게 알려 주십니다.
“두 사람(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0)
그들을 베드로에게 보낸 사람은 사실 고넬료였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연출자요 감독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형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은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된 이후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요셉은 자신이 당한 고난조차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사건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경건한 이방인 고넬료에게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사람을 보내어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대교의 전통에 매여있던 베드로에게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인정하신 이방인 고넬료를 구원 하시기 위해 그의 편견과 관습을 깨뜨리십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의 의미를 생각할 그 때에 성령께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주신대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목적없이 방황하며 살아가던 우리를 찾아 오신 하나님은 지금도 길 잃은 한 영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이방인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길 잃고 방황하는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나의 편견과 전통, 관습을 버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받은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