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사도행전 22:22-23:11)

Posted on 5월 30,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5-30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사도행전 22:22-23:11)

• 본문: 행 22:22-23:11
5/30/2021 주일 낮 예배

믿음의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입성한 믿음의 열조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경에 기록된 수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후대에 본이 되는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족장들), 모세,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사사들), 다윗, 사무엘 처럼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도 있는 반면에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 않는 무명의 사람들의 행적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고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는”(히 11:33-34) 추앙받을만한 영웅적인 행동들도 기록되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진리를 전하다가 당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어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갖히는 시련을 받았으며(예레미야) 돌로 치는 것(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과 톱으로 켜는 것과 같은 시험을 당하고(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악한 왕 므낫세에게 이런 죽임을 당하였다고 함)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에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 11:35b-38)

초대 교회-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이후 시작된 오늘날 개신교 교회의 원형-성도들은 예수님 믿는 신앙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동족 유대인들로 부터,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문화 가운데 살고 있는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황제 숭배 사상을 강요한 난폭한 로마 황제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예수 믿는 다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명예와 재산을 잃게 되고 가족들과 이웃들로 부터 추방당하고 안정된 직장도 포기해야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로 부터 돌에 맞에 죽기도 하고 감옥에 갖히기도 하고 로마 당국자들의 핍박을 피해 오랫동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지하 동굴(카타콤)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의를 행함으로 고난 받는 1세기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기를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4, 17b)고 했습니다.

핍박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마음속에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고 권면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이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기”(벧전 1:7)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우는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2차 대전 중 조국 독일의 교회가 나치 정권에 의해 조정당하고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대항하는 교회 저항 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독일 고백 교회가 세운 ‘목사 후보생 교육 기관’의 책임자로 섬겼는데, 1937년 나치 정권에 의해 학교가 폐쇄되자 장소를 옮겨가며 1940년 3월까지 목회자 양성 교육을 계속했습니다. 그 후 잠시 미국에 갔을 때 자신의 신학교 은사였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eibuhr) 박사가 신학교 교수 자리를 마련해 놓고 미국에 망명할 것을 적극 권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독일로 돌아갑니다. 그 이유는 독일 국민들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치 정권하에서 고통받는 독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1943년 히틀러 암살 모의 혐의로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 나치 정권이 붕괴하기 3주전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말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함께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이교도들과 다른 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이 세상의 생활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이 환난 가운데서도 두려움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 천부장 앞에서 담대한 바울 (22:22-29)
바울의 증언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더욱 소리지르며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띠끌을 공중에 날립니다’ (22-23) 21절에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보냄을 받았다는 말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유대인들의 감정을 더욱 격노케 한 것입니다.

천부장은 사태가 더욱 심각하게 되자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고 명하고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유대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키게 되었는지 심문하기 위해 바울에게 채찍질하라고 합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채찍(라틴어. Flagellum)은 “울퉁불퉁한 금속이나 뼈를 달아 무겁게 만들었으며, 단단한 나무 손잡이에 붙어 있는 가죽끈들로 된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그 채찍에 맞아 죽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평생 불구자가 될 정도였습니다.”

로마 군인이 바울을 채찍질하기 위해 가죽줄로 바울을 매자, 바울이 곁에 서있던 백부장에게 로마 시민인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당시 로마 시민은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에는 고문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은 천부장에게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전합니다. 천부장은 로마 시민들의 권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만약 로마 시민인 바울을 적법한 절차 없이 고문한다면 그는 로마 법을 어긴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이 진실임을 확증하기 위해 그가 로마 시민인지 직접 묻습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천부장은 자신은 돈을 주고 시민권을 샀다고 말하자 바울은 자신은 태어나면서 부터 시민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많은 혜택과 특혜가 주어진 로마 시민권을 얻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로마에 뛰어난 공을 세운 보상으로 로마 시민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시민권을 살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로마 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의 부모가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로마에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심문하려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물러나고 천부장도 바울이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를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면서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문이나 학문, 경력이나 지식을 자랑하지 않았고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으로 많은 혜택과 특권을 누리며 살았지만 예수님 만난 이후에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부심보다는 ‘하늘 나라 시민’이 된 것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시민의 권리를 자랑하며 살았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빌 3:20)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그의 사역 중에 처음으로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로마 군인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그의 과거를 자랑하고자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복음 전파를 용이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세상 권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시민임을 당당히 밝힘을 통해서 부당하게 고문당하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믿음 생활하는 중에 부당하게 핍박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지위,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라기 보다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합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힘으로 부당한 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처럼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세상의 권리를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ex.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31개월만에 풀려난 캐나다 국적의 임현수 목사님의 간증)

• 공회 앞에서 담대한 바울 (23:1-6)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바울을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기 위하여 공회를 소집합니다. 천부장은 로마 시민인 바울을 직접 고문하여 그 이유를 알고자 했으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관을 통해서 진상을 파악하고자 한 것입니다.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를 의미합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존경받는 유대인 지도자들로 구성되었으며 공회원들은 70-100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공회 앞에 세우자 바울은 공회 앞에서 조금도 두려움 없이 증언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하나님을 섬긴 진실한 유대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나니아는 바울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여전히 평생동안(회심하기 이전 뿐만 아니라 회심한 이래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겨온 훌륭한 유대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그것은 아나니아에게는 교만의 극치이며 신성 모독의 극치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대제사장을 오히려 책망하며 담대히 맞섭니다.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23:3) ‘회칠한 담’은 튼튼하게 보이지만 바람이 불면 금방 무너지고 마는 벽을 말하는데 겉 모양은 그럴 듯하나 속은 불결한 것으로 가득차 있는 위선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대제사장 앞에서 두려움 없이 오히려 그의 악함을 꾸짖고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 조차 뛰어넘는 복음의 열정이 그를 사로 잡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권력자보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바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공회의 사람들이 바울에게 상대가 대제사장임을 알려주자 바울은 즉시 자신의 무례함을 인정하고 대제사장의 권위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출 22:28) 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바울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왜 바울이 대제사장을 알아 보지 못하였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는데, 존 스토트 목사님은 바울의 시력이 나빠서 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대제사장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공회가 일부는 사두개파 사람들, 일부는 바리새파 사람들로 구성된 점을 알고, 자신의 심문 이유가 부활 증언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이것은 바울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웃들과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빠뜨리지 말하야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죽은 자의 소망, 부활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혼란에 빠진 무리들 (23:7-10)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하자 공회를 구성하고 있던 두 그룹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납니다.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 천사의 존재를 믿고 있었지만 사두개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믿지 않는 현실 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 사이에 바울이 끼어 그들 간의 분쟁으로 인해 바울이 찢길까 염려하여 공회에 군인들을 투입하여 그를 구출한 다음 요새로 데려갑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부활의 성경적 의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부활 논쟁으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오히려 정죄하고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천부장을 통해서 바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은 바울과 늘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 혼란한 세상 가운데서 부활의 신앙 가운데 굳게 서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고 믿지 않을 지라도 부활의 믿음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욥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욥 19:25)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그 날 밤에 바울 곁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 (23:11)
혼란스럽고 힘든 하루를 보낸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11)

예상은 했지만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분노한 유대인들의 적대감과 폭력으로 인해 바울은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날 밤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그의 앞에 펼쳐질 그 심한 핍박을 그가 이겨 낼 수 있을 지, 로마에 까지 복음 전하고자 하는 그의 비전이 이루어 질 수 있을 지 염려하는 마음으로 그는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 그 밤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곁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염려하지 말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나의 일(복음)을 증언한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고린도에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로마로 가는 배 안에서(“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위기에 처한 바울에게 용기와 담대함을 준 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에게 천군만마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고난을 이기고 로마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환난과 고난 중에 주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설교 초두에 언급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 목사님이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성탄절에 약혼자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 내용 중 일부를 가사로 하여 독일 교회 음악가 지그프리트 피에츠(Siegfried Fietz)가 곡을 붙여 만든 찬양곡이 있는데, 곡의 이름은 “선한 능력으로”입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죽음의 공포가 그를 휘감고 있는 차디찬 형무소 감방에서 그는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능력이 그를 다스리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 모두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기를”,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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