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항해 (사도행전 27:1-26)

Posted on 7월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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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항해 (사도행전 27:1-26)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항해
• 본문: 행 27:1-26
7/18/2021 주일 낮 예배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대략 80년 혹은 90년, 100년의 인생의 항해를 하다보면 순풍을 만나 평안한 여행을 할 때도 있지만 예기치 못한 광풍을 만나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직장 생활 할 때 97년말에 외환 위기(IMF 구제 금융)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가적인 위기 상황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직장인들이 구조 조정 명분으로 일자리를 잃고, 자영업자들이 폐업하고,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어서 전체 직원들의 30% 가량을 구조 조정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기도 했습니다. ‘금 모으기’등으로 온 국민과 기업이 힘을 합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위기를 극복하기는 했지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았습니다. 누가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예상했겠습니까?

미국도 2007-2008년에, 1930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이후 최대의 경제적 위기였던 ‘금융 위기’를 경험하였습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회사들의 도산으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서 전세계 금융 시장이 경색되고,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모기지 이자율이 치솟아 빚을 제 때 갚지 못한 집주인들이 집을 잃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중산층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야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Covid-19 팬데믹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의 광풍’과도 같은 혹독한 시련입니다. 어제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코비드에 감염된 사람의 누적 총수가 1억 9천만명이며, 목숨을 잃은 사람이 4백만명이 넘습니다. 미국에서만 62만 4천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염 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미국에서만 수십만명은 되리라 짐작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바람에 밀려 평안히 순항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은 예기치 못한 풍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행전의 마지막 부분인 27-28장은 사도 바울의 로마행 여정의 기록입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가는 긴 여정이었는데,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가이사랴에서 평안히 출발하였지만 얼마가지 못해 광풍을 만나 고생을 하게 되고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믿음의 항해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영적 도전을 주는 귀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믿음의 인생 항해를 하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영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는 배를 타고 출발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바울의 로마행 여정에 동행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한명의 이름은 2절에 기록된 마게도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입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데미 여신의 신봉자들이 소요를 일으켜서 주동자로 체포된 적이 있는데 그때 바울과 함께 체포된 사람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때 마게도냐로부터 바울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로 갈 때에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가면서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도왔던 신실한 일꾼입니다. 바울의 옥중 서신(골 4:10, 몬 1:24)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울이 옥에 갇혀 있는 동안 로마 감옥에서 그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네로 치하의 로마에서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1절에 “우리”라고 한 단어로 유추할 때 사도 행전의 기록자였던 의사 누가도 가이사랴에 있다가 바울의 로마행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몇달이 소요되는 기나긴 항해 가운데 바울에게 동행자가 있었다는 것이 바울에게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인생의 항해가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며 위로가 되는 동역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리스다고와 누가 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는 데 그 사람은 죄수들의 이송을 책임지고 있는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라는 사람입니다. 로마 군대의 장교인 그는 관대한 사람이어서 배가 시돈에 도착하였을 때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바울이 그곳의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나중에 타고 가던 배가 풍랑으로 파선하여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군인들이 죄수들이 도망하게 되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아 죄수들을 죽이고자 하였을 때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27:43)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합니다.

‘이방 사람 율리오’ 또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손길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무사히 도착하도록 하나님께서 로마 백부장 율리오를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여정 길목 길목 마다 도움의 손길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바울의 여정을 지도를 참조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이사랴(‘아드라뭇데노’로 가는 배에 승선)-시돈-구브로 해안-루기아의 무라(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배로 갈아 탐)-니도-살모네-미항-뵈닉스로 가고자 하나 광풍을 만나 가우다 아래 거쳐-멜리데 섬에 도착)

본문 말씀을 근거로 믿음의 항해를 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을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9-11)
바울을 실은 배가 그레데 섬 미항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시기는 ‘금식하는 절기’가 지난 때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에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양력으로 9월하순에서 10월 초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중해의 이 해역을 항해하는 일은 초겨울인 9월 중순이후에는 위험한 일로 여겨졌고,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1일 이후부터 겨울이 끝나는 3월까지는 항해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20여년동안 세 차례에 걸쳐 소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을 걸어서, 배를 타고 다닌 경험이 있는 바울은 자신의 경험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근거로 지금 미항을 떠나서 계속 항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장과 선주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미항이라는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가 불편하므로 북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보내자라고 의견을 제시합니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기”(11)때문에 뵈닉스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선장과 선주는 항해의 전문가라 할 수 있었기에 백부장의 선택은 이성적으로나 합리적으로 틀린 결정이 아닌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방인 백부장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지극히 인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은 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철저히 대비를 하고 준비를 한다고 할지라도 갑자기 몰아 닥치는 자연 재해 앞에 속수 무책인것이 현실입니다. (서부 산불, 동부 허리케인, 유럽 홍수)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사람의 경험과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다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고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도 고백하기를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고 했습니다.

만약 백부장이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바울의 말대로 했다면 죽을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항해를 하는 우리 모두, 사람을 신뢰하기 보다,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기 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향해의 선장되시는 하나님만 신뢰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는, 인생에는 ‘순풍’도 있지만 ‘광풍’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3)
13절 말씀에 보면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미항을 떠나 뵈닉스로 출발할 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었습니다. ‘순풍에 돛 달고서 배 떠나 간다’ 노래처럼 흥겹게 출항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Euraquilo)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라굴로’는 ‘북동풍’(Northeaster)을 의미하는 센 바람입니다. 엄청난 역풍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배가 갈려고하는 반대방향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치게 되어 배가 정처없이 떠밀려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십년간 뱃사람으로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선장과 선주도 예상치 못한 광풍이었습니다.

(예화: 2018년 7월, Table Lake at Branson에서의 Duck boat 전복 사고로 17명 목숨을 잃음, 현재 재판 중, 베테랑 선장이었지만 thunderstorm 예보에 주의 기울이지 않음)

우리의 인생 중에도 순풍처럼 평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유로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경험한적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배가 가지 않고 역풍을 만나 반대 방향으로 배가 떠밀려 가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탄 배가 광풍에 밀려 쫓겨 가고 있습니다. 가우디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배 뒤편에 매단 작은배,구명정, 배의 진행과 조종에 방해받음)를 잡아 끌어 올렸습니다. 태풍으로 배가 파선하지 않도록 줄로서 선체를 둘러감았습니다. ‘스르디스’(모래톱)에 걸리지 않도록 연장(돛)을 내리고 그냥(정처없이) 쫓겨 갔습니다.

하지만 풍랑이 잠잠해지지 않자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렸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절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뱃사람에게 별은 방향을 지시하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인데 날씨가 흐려 별마저 보이지 않으니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배는 이리저리 표류하며 금새라도 세찬 풍랑에 뒤짚힐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여망’ (살 소망)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을 잘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없이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사는 인생은 목적 없이 떠 다니는 배와 같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이정표가 되는 별도 보이지 않고 살 소망 마저 사라진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시편 107편에 혼돈에 빠진 인생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시 107: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순풍도 있지만 광풍도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하지는 않지만 인생의 항해 가운데 광풍도 찾아 오기 마련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풍만 주시지 않고 광풍도 허락하는 걸까요?

구원의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고통 가운데서 교만한 나의 죄를 회개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의 정욕을 구하며 살았던 나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만 붙잡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통중에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십니다.

시편 107편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안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28-30)

인생의 광풍 가운데 있으십니까?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광풍을 고요케 하시고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선장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안심할 수 있습니다. (22-25)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소망을 잃어 갈 때, 한 사람이 일어나 서서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죄수 바울이었습니다. 선장과 선주, 많은 선원들, 로마로 가는 죄수들을 통솔하고 있는 백부장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많은 죄수들에게 외쳤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라”(22)
‘안심하라’는 선포는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배는 이리 저리 흔들리고 배에 싣고 있는 많은 짐들도 던져 버렸고, 배의 기구들도 버린 상황에서 폭풍으로 인해 배는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금새라도 배가 뒤짚혀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바울의 담대한 선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자신의 경험과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롯된 것임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23-24)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바울은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가이사 앞으로 인도할 것이며 당신들을 제게 주셨습니다.”

바울이 마치 선장이 된 것 같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은 바울에게 달려 있다는 말씀이니까요. 주객이 전도되어 죄수 바울이 배의 모든 것을 책임진 사람이 되었고, 선장과 선주, 백부장은 두려워하며 바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바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위대하심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여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 16:33하 )

또 사도 요한은 권면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바울이 전한 메세지는 결국 하나님께서 로마로 가는 배의 선장되심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배의 키를 잡고 계시며, 배는 파손될지라도 선원들과 모든 죄수들의 목숨을 보존할 것이며, 바울은 결국 가이사 앞에 서게될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 항해의 선장은 우리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배의 키를 내어 드릴 때 주님께서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이것이 우리가 바울에게서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광풍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떨지 않고, 폭풍을 다스리시고 잔잔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날 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며 배에 물이 차 올라서 배가 금방이라도 뒤짚힐 것만 같아서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였습니다. 그런데 배에 타신 예수님께서는 배 고물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 라고 다급하게 외칩니다. 그랬을때 예수님은 잠에서 깨어 나신 후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였을 때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하시니”(막 4:40) 제자들의 문제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잠시 잊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았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서 제단의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였을 때도 그는 온전히 순종함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살려주심)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 11:17)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 그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과 여러분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바울과 같은 믿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풍랑이는 파도를 보고 무서워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는 믿음 가운데 굳게 서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인생의 항해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3가지 교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로,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인생의 항해에는 순풍도 있지만 광풍도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생 항해의 선장되시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인생 항해에서 승리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참고: 바울 로마 선교 여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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