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행 27:27-44
7/25/2021 주일 낮 예배
오늘은 ‘영혼의 작가’로 불리는 켄 가이어(Ken Gire)의 책 ‘폭풍속의 주님’(원제:At Peace in the Storm)에 나오는 St. Patrick에 관한 글을 인용함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아일랜드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St. Patrick은 4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십 대 때 아일랜드에 노예로 잡혀 가서 목동으로 일했습니다. 노예 시절 패트릭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주님과 기도에 대한 사랑이 날로 자랐습니다. 스무 살 때 패트릭은 꿈에서 바다를 통해 탈출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습니다. 해안으로 도망친 패트릭은 배를 타고 안전한 영국으로 탈출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평안한 삶을 살고 있던 패트릭에게 꿈을 통해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이 그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부탁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사제를 거쳐 주교가 된 패트릭은 결국 자신을 노예로 삼았던 땅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노예 시절에 알았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아일랜드 전역을 다니며 설교했습니다. 전생과 윤회의 교리를 믿고 있었던 드루이드교를 주로 믿었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대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패트릭은 가장 잔인한 폭풍을 기도로 이겨냈습니다. 패트릭은 에베소서 6장 14절에서 이름을 딴 호심경 기도를 거룩한 방패삼아 폭풍을 이겨냈습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breastplate, 가슴막이)을 붙이고”)
“내 곁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앞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뒤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밑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위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좌편에 계시는 그리스도, 요새에 계시는 그리스도, 전차에 계시는 그리스도, 갑판에 계시는 그리스도, 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계시는 그리스도, 나에게 말하는 모든 사람의 입술에 계시는 그리스도, 나를 보는 모든 눈에 계시는 그리스도, 내 말을 듣는 모든 귀에 계시는 그리스도”
패트릭은 그리스도가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노예선 갑판에서 쇠고랑에 묶여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떨고 있는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열네살에 납치되어 살붙이 하나 없는 땅으로 끌려 갔을 때에도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인생을 바꾼 항해에서, 인생의 폭풍속에서, 패트릭은 자신과 함께 하셨던 그리스도의 임재를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거친 폭풍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해도 보이지 않고 별도 보이지 않고 구원의 소망조차 없어질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또한 로마행 배를 타고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짐들도 바다에 풀어 버렸고, 배의 기구들도 내렸습니다. 오랫동안 먹지 못해 모든 사람들이 탈진하고 굶주려 죽기 일보직전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메세지를 듣고 그들은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전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27:24) 이 말을 들은 바울은 확신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십시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릴것입니다”(27:25-26)
하지만 그 약속의 말씀은 언제 어떻게 성취될지 알지 못합니다. 27절 말씀에 보면 열나흘째(미항을 떠난 지)되는 밤이 되도록 그들이 탄 배는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아드리아 바다(Adrian Sea, 이탈리아와 말타와 그레데, 그리스 사이에 있는 바다)에 이르렀을 때 사공들은 직감적으로 육지에 가까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수심을 재어보니 스무길(37미터), 열다섯 길(28미터)정도 되는 것을 확인하고 해안에 가까이 온 줄 알고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사공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들은 야밤에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다가 거룻배(구명선)를 바다에 내려 놓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구명선을 타고 도망하려는 것입니다. 계속 배에 있다가는 배가 파손되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 같으니까 안전한 구명선을 타고 야반도주를 계획한 것입니다.
큰 환난 가운데 처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낙심하는 모습입니다.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바를 모르고 자포자기 하는 반응입니다. 두번째는 현실 도피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공들처럼 내 한 목숨 살기 위해서 고난의 현장에서 빠져 나갈려고 애쓰는 모습니다. 세번째는 믿음으로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심한 환난으로 인해 낙심하지도 않고, 고난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현장에서 도피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는 사람들입니다. 고난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애쓰며,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땅히 세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엘라이자 휴윗(Eliza Hewitt)이라는 분은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한 분 중의 한 분입니다. 1887년 필라델피아의 어느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그녀는 문제 아동을 상담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조용히 타이르고 있었는데, 그 학생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휴잇을 널판지로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로 휴잇은 척추를 다쳐 평생 불구를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상반신에 석고붕대를 감고 있어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였고, 육체의 고통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자 주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던 자신에게 극심한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흑인 여성이 흥얼거리며 병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본 그녀는 짜증썩인 목소리로 “이봐요, 청소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다고 흥얼거려요!”라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청소하던 그 여성은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 환경과 형편은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불평을 찬송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즐거워요” 이말을 듣는 순간 휴윗은 수만 볼트의 전기에 감전되는 듯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불평으로 가득했던 휴윗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휴윗은 자신의 교만을 뉘우쳤습니다.
그 후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죽기까지 그녀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또 휴윗을 괴롭혔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떠 올리며, 휴윗은 사고 이후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했던 삶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 교만하여 문제 학생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을 뉘우쳤습니다. 휴윗은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찾고 원망에서 용서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휴윗은 그 심정을 이렇게 찬송시로 적었습니다.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 에게‘> (원문)
내가 믿는 맘으로 예수님께 매달리니, 내게 아무 걱정이 없네
(The trusting heart to Jesus clings, Nor any ill forebodes)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노래하네. 짐을 들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But at the cross of Calvary, sings, Praise God for lifted loads!)
삶의 길을 가며 난 노래하네. 주님을 찬양하고 찬양하네.
(Singing I go along life’s road, Praising the Lord, praising the Lord)
삶의 길을 가며 난 노래하네. 예수님께서 내 짐을 들어 주셨으니.
(Singing I go along life’s road, For Jesus has lifted my load)
휴윗은 ‘믿는 맘으로 예수님께 매달리니 내게 아무 걱정이 없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낙심하여 고난의 현장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갔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그의 짐을 대신 져주셨고, 그에게 참된 안식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기를 바랍니다. 그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들의 목숨만을 부지하기 위해 구명선을 타고 도망갈려는 선원들을 보고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당신들이 구원을 얻지 못할것입니다”라고 하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버립니다. 선원들이 없이는 남은 항해를 무사히 마치기 불가능한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백부장과 군인들은 이제 선장과 선주의 말보다 ‘죄수 바울’의 말을 더욱 신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선원들의 태도와 바울의 모습이 크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선원들은 자기 목숨만 건지기 위해 몰래 도망가려고 하였으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환난 가운데 처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폭풍우 가운데 요동하는 배의 키를 잡은 선장의 모습입니다. 폭풍우를 두려워하기 보다 배가 나아가야 할 목표점을 바라보며 배를 운전하는 강인하고 용감한 리더의 모습입니다.
배에 탄 사람이 모두 276명(37절)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날이 새어가자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합니다. 그들은 폭풍우를 만나 미항을 떠난 지 열나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여 심히 굶주린 상태였습니다.
배멀미로 토할 것 같았기에 음식을 먹지 못하였을 것이며, 심리적으로 심히 낙담되었기에 먹을 기력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메세지를 듣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조만간 육지에 닿게 되고 구조될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34) 바울의 확신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4) 그들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배는 상하겠지만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육체의 고통이 심해지면 식욕 또한 사라집니다. 그런데 마음의 고통과 근심이 가득할 때도 식욕이 없어집니다.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면 밥 맛이 좋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데, 마음속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하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면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밥맛이 없어 못먹습니다. 건강한 식욕, 맛있게 식사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음식을 먹기 전에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합니다.’ ‘축사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케리스테오’인데 성찬(주의 만찬)과 관련해서 사용되기도 하고, 음식 주심에 대한 감사나 일반적인 감사에도 종종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도 빵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미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음식을 나누어 먹기 전에 먼저 ‘축사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대해 미리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감사는 미리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의 미래에 행하실 일들에 대해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서로 간에도 미리 감사를 표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성도님이 나에게 베풀어 준 사랑에 감사하듯이, 성도님이(집사님이) 앞으로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도님이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겨 주시고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피스 메이커로서 가는 곳 마다 평화를 심고 위로를 전하고 기쁨을 전해주니 감사합니다. 미리 감사할 때 나에게도 매사에 감사와 기쁨의 복이 충만할 줄 믿습니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밀을 바다에 버리고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가다가 배가 드디에 해안가에 걸리게 됩니다. 배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갈 때 군인들이 죄수를 모두 죽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죄수가 헤엄쳐 도망하게 되면 자신들이 나중에 책임을 물어 사형에 처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모든 죄수들을 구하시기 위해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백부장은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며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들을 의지하여 나가게 합니다.
선원들, 바울에 이어 세번째 사람 백부장에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부장은 가이사랴에서부터 로마까지 죄수들의 이송을 책임진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바울이 탄 배가 미항에 도착하였을 때 항해하기 위험한 시기이니 미항에서 겨울을 나면 좋겠다는 바울의 의견을 무시하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서쪽 뵈닉스라는 항구로 가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친 풍랑으로 인해 죽을 고생을 하고 있을 때 바울이 전한 메세지를 듣고 그는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담대함과 확신에 가득찬 모습은 항해에 경험이 많은 선장이나 다른 뱃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그의 마음 속에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제안대로 밤에 도망갈려는 선원들을 보고 군인들을 시켜 거룻줄을 끊게 합니다. 그리고 바울의 제안대로 모든 병사들과 죄수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어 먹게 합니다. 구원의 소망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배가 해안가 모래에 걸렸을 때 죄수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인들이 죄수들을 다 죽이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나, 백부장은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먼저 내려 육지에 나가게 합니다.
이방인 로마 장교인 무명의 백부장은 이제 바울을 돕는 ‘보호자’가 된 것입니다. 단지 로마 장교로서 죄수 호송의 책임을 다 하려는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로마행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곁에서 친히 말씀하시기도 하고, 천사를 보내어 말씀을 전해 주시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어 주시기도 하십니다. 천부장을 통해 바울이 유대인들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받게 하시고,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바울에 우호적인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갑판에서나, 감옥에서나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하시며, 음성을 들려 주시기도 하시며, 동역자를 보내 주셔서 위로 받게 하시며 기쁨을 나누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도 나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 사역에 헌신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빌 1:6) 우리 안에 시작하신 착한 일은 ‘구원의 사역’입니다. 시작하신 구원은 재림 주로 오시는 주님 앞에 다시 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완성된 구원을 이룰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사야 43:1b-3a)
인생의 항해 중에 배가 파선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물 가운데 지날 때에도, 강을 건널 때에도,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는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배는 손상되었지만 한 사람의 생명도 상하지 않고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항해 중에 파선하는 것과 같은 환난을 당할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선원들처럼 내 혼자 살기 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고난의 현장에서 도피할려고 하지 않고, 바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항해 중에 하나님께서는 로마 장교 백부장과 같은 도움의 손길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한 것처럼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우리의 인생 여정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온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