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총독 벨릭스와 유대 여자 드루실라 (사도행전 24:22-27)

Posted on 6월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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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date 2021-06-20
sermon manager 박성환목사

주일 설교 – 총독 벨릭스와 유대 여자 드루실라 (사도행전 24:22-27)

• 본문: 행 24:22-27
6/20/2021 주일 낮 예배

지난 주, 성도님들의 기도 덕분에 목회자로서 처음으로 미주 한인 침례교 총회에 잘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두 4분의 강사님들을 통해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4분의 강사님들 중 한 분인 워싱턴 D.C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임 용우 목사님(워싱턴 성광 교회 담임)의 간증을 잠간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시작할려고 합니다.

임 목사님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불신 가정에서 태어나서 결혼하고, 미국에서 회계사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세상에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살다가, 30대 후반에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목회자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린 분입니다.

14가정과 함께 교회 개척한 지 1년이 지나서 성도들이 2백여명 되었을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하심으로 본당이 6백석 가량되고 Room 이 57개나 되는 미국 교회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초창기 부터 선교에 올인하여, 개척한 지 5년째 부터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 개척한 지 20년째 되는 올해 현재 50개국에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후원하고 있습니다.
교회 재정의 50% 이상을 선교비에 지출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목사님이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 받고 목사가 될려는 계획을 가지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예상한대로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서 7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7년만에 아내의 허락을 받고 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딸이 아빠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를 할려고 하나 잔뜩 긴장하고 들어갔더니 딸이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 앞으로 목회 할려면 돈하고 여자를 조심해!” 딸의 당돌한 조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딸의 얘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유명하고 존경받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명예를 잃고 지탄을 받고 심지어 범죄자가 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정치인, 교육가, 예술가 뿐 아니라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일들의 근원을 살펴보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물질), 성(쾌락), 권력(명예심)의 문제들입니다.

돈. 섹스. 권력” 은 ‘리차드 포스트’라는 분이 저술한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돈과 섹스와 권력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이것을 오용하고 남용하면 하나님의 성스러운 것을 더럽히는 일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 외에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유대 총독 벨릭스와 그의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입니다. 두 사람은 당시 기독교 최고의 선교사 바울을 통해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여러차례 복음을 전해들었지만 구원받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에게 믿음의 결단을 가로막고 있었는지 살펴 보면서, 우리의 믿음 생활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벨릭스와 드루실라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벨릭스는 지난 주에 간단히 언급한 것 처럼 형 Pallas 의 도움으로 로마 총독의 자리에 오르게 된 사람입니다. 두 형제는 원래 노예였는데, 로마 정부가 노예 해방령을 발표하게 되고, 해방된 노예 출신들을 관직에 등용할 때에 그의 형제 Pallas가 등용되어 큰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신임을 받던 형의 영향력으로 인해 그는 A.D 52-59동안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역대 총독들 중 가장 악독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는 노예의 마음을 갖고 왕의 권세를 행사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 명의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모두 왕족의 딸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드루실라는 유대 여자로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여러명의 헤롯 왕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 베들레헴 인근에 있는 영아들을 살해하도록 명령한 왕은 헤롯 대왕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7명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인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님의 재판을 주관한 사람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롯 대왕의 손자로서 사도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투옥했던 사람인데 하나님의 천사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두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큰 딸이 25장에 등장하는 버니게이며 둘째 딸이 드루실라입니다.

드루실라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유대 여인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콤마게네의 왕자 아피파네스와 약혼하였으나 아피파네스가 할례를 거부하여 혼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후에 드루실라는 시리아 에메사의 왕 아지주스(Azisus)와 결혼하였는데, 벨릭스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미모의 드루실라를 아내로 삼을 욕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벨릭스는 아토모스라는 마법사를 보내어 드루실라를 설득하여 아지주스 왕과 파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도록 만듭니다. 이것은 유대인 여자가 이방인과 결혼한 것이므로 유대 율법을 크게 어긴 일이었습니다.

드루실라는 벨릭스가 총독에서 물러난지 20년후, 아그립바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과 함께 휴양지 폼페이에 살다가 폼페이 화산 폭발 때 (A.D. 79) 용암에 묻혀 죽었다고 전해 집니다.

벨릭스는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고용한 변호사 더둘로의 고발 내용과 사도 바울의 변호하는 말을 들은 이후에 천부장 루시아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하면서 바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허락합니다.

수일이 지난 이후 벨릭스는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습니다. 22절에 벨릭스는 이미 바울이 전하는 ‘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바울로 부터 ‘예수 믿는 도’를 자세히 듣게 됩니다. 말하자면 전도자 바울로 부터복음을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접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본문은 간단히 한 줄로 적고 있습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바울이 전한 복음의 메세지는 의와 절제와 심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6:8 기록된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convict)하시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인간들의 죄에 대하여, 의로우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불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심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전한 메세지는 불의하고 사악한 삶을 살고 있던 두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의’는 벨릭스의 잔인함과 압제의 죄와 관련시키고, ‘절제’는 드루실라에게 이끌려 그녀와 결합하도록 만든 억제 할 수 없는 욕정에, 그리고 ‘장차 오는 심판’은 그들의 불의와 부도덕으로 인해 그들이 불가피하게 받게 될 처벌과 관련시킵니다.”(존 스토트, 사도행전)

하지만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도 결단하지 못하였고, 바울을 2년간 가이사랴 감옥에 구금시킵니다. 벨릭스는 이후 소요와 유대인과 시리아 거주민 사이에 일어난 폭동을 난폭하게 진압한 일로 인해 로마로 소환되고, 보르기오 베스도가 유대 총독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근거로 벨릭스와 드루실라가 복음을 듣고도 마음문을 열지 못하게 된, 복음의 장애물이 무엇이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물질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25-26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는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를 통해서 구약 성경과 유대교에 대해서, 새롭게 전파되는 기독교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풍부한 지식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의 가치관과 사상 체계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메세지였습니다.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한 메세지를 듣고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울을 보내면서 지금은 가라(결정을 미룸)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더 자주 불러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목적은 복음을 더 자세히 듣고자 함이 아니라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목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벨릭스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이방 교회들이 헌금한 거액의 후원금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의 결례 의식 비용을 대신 지불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가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자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진 벨릭스는 바울로 부터 뇌물을 챙길려는 목적으로 만남을 가졌던 것입니다. 뇌물을 받으면 바울을 풀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노예 출신이었던 벨릭스는 몸은 자유로운 자가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물질의 노예였습니다. 로마 정부의 고위 공무원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양심도 버린 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불의를 일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한 탐욕이,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 13장 “씨 뿌리는 자의 비유” (4가지 땅의 비유)에 기록된 것처럼 열매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이 의미하는 것은 ‘말씀은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내 삶 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을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재물의 유혹이 없는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돈/재물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재물을 선하게 사용하면 칭찬받게 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회개하고 변화되어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나누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수산나와 요안나와 같은 여인들은 자신들의 소유(물질)로 예수님의 사역을 섬겼습니다. 부자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하였습니다.

큰 다락방이 있었던 마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다락방을 사도들과 성도들의 기도 모임 장소로 제공하였고, 빌립보의 직물 사업가 루디아는 바울로 부터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 받은 이후 자신의 집을 오픈하여 예배와 기도 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유럽 최초의 가정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물질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드리는 자들의 헌신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 6:24)고 말씀하셨습니다. (You cannot serve God and mommon. KJV) 그런데 예수님은 돈을 말씀하실 때 아람어로 ‘맘몬’(momm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맘몬은 재물과 탐욕의 신을 의미합니다.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 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맘모니즘의 노예’라고 합니다. 맘몬은 비인격체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영적인 실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벨릭스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벨릭스처럼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믿음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물질도 주의 것이요 시간도 주의 것이요 재능도 주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소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그들은 욕정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벨릭스는 세번 결혼하였는데 모두 왕족의 딸들과 결혼하였습니다. 권력과 명예, 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번째 결혼, 즉 드루실라와의 결혼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미 한 남편의 아내가 된 드루실라를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 아토모스라는 마법사를 보내어 그녀를 설득하여 남편과 이혼하도록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불법을 자행한 것입니다. 드루실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가문은 악명이 높은 가문이었습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 베들레헴 영아들을 모두 살해하도록 명령한 왕이었고, 그의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도 사도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투옥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언니 버니게는 삼촌 칼키스 헤롯과 결혼하였다가 남편이 죽자 자기 동생 헤롯 아그립바 2세와 같이 살았습니다. (근친상간의 죄, 행 25:13)

사악한 부모 아래서 자라서 그런지 그녀 또한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벨릭스가 보낸 마술사에 계략에 넘어간 것도 쾌락과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절제되지 못한 성 생활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육체의 쾌락을 즐기며 가정의 가치를 소홀하게 여긴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절제’에 대해서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벨릭스)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으나’ 복음 앞에 마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번 결혼에 실패하고, 지금 사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요즈음 표현으로 하면 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 여인은 진리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 샘물이 되심을 깨달았을 때 그 여인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성(sexuality)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성경적인 방법대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누리게 되면 축복이 되지만 자신의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게되면 죄악이 됩니다. (다윗의 예)

‘성은 영성의 적이 아니고 친구이다’(도날드 괴르겐)

요일 2:16-17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 모두 벨릭스와 드루실라처럼 육신의 정욕과 쾌락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자신을 쳐 복종하며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7절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벨릭스는 공의와 진리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영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법에 비추어 볼 때 위법한 행동을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바울을 계속 구금하여 둡니다. 바울은 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2년동안이나 가리사랴 감옥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벨릭스의 관심은 유대인들의 환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을 풀어주게 되면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킬 것이 뻔하였기 때문에 그는 ‘지역의 치안 유지와 평화’를 위하여 무죄한 바울을 감옥에 감금해 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비겁한 행동은 이전 총독 빌라도의 행동과 비슷합니다. 빌라도 총독도 예수님께서 무죄한 것을 알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외침을 듣고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무리 앞에서 자신의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자신은 무죄하니 너희들이 당하라고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군병들에게 내어 줍니다.

벨릭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로 무죄한 자를 석방시켜 주어야 했지만,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진리를 따르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였기에 비겁하게 행동하였습니다.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권력과 명예를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 앞에 결단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도 빌라도와 벨릭스처럼, 진리를 따르기 보다 사람들의 소리와 여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요? 내가 손해를 보고 핍박을 당한다 할지라도 진리를 따르겠다는 결심과 결단이 매일의 삶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 29:25)

우리가 두려워 할 분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갈 때 우리의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고 우리의 삶은 안전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유대 총독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 관해 살펴 보면서, 복음을 받아 들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 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두번째는 육체의 쾌락/정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삶 가운데, 이러한 장애물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만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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