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제자의 삶 (누가복음 9:57-62)

Posted on 5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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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 제자의 삶 (누가복음 9:57-62)

제자의 삶
5/24/2020 주일예배
• 본문: 누가복음 9:57-62

갈릴리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더러는 침례요한이라 하고 엘리야, 옛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합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자, 즉 메시야(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비로소)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명확히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을 준비시키십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의 큰 전환점이 되는데 이전에는 대중(무리)을 중심으로 사역하셨다면, 이 사건이후 예수님은 제자들, 소수에 집중하시고, 이 사건 이후에 제자의 삶, 제자도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흔히 사용하는 크리스찬 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 3번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제자라는 단어는 아주 흔히 사용되는 단어임을 알수 있습니다.
크리스찬이란 이름은 행 11:26 최초로 안디옥에서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이후 사도행전에 한번더 나오고 베드로 전서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받은 자들을 칭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 당시에서는 그 이름이 영광스러운 이름이었다기 보다는 고난과 핍박을 자초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제자는 배우는 자,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의 의미가 내포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12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제자,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제자 선택은 예수님께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시고 기적의 현장에 있게 하심으로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시고 자비와 사랑, 용서와 긍휼을 지닌 참된 제자의 성품과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또한 권능을 주셔서 둘 씩 짝지워 복음을 전하도록 위임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면 제자의 삶, 제자도(Discipleship)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시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을 따르겠다는 무명의 3사람이 등장합니다.

1) 어떤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교훈: 제자의 삶에는 커다란 대가 희생이 따른다.

예수님은 쉴만한 집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기쁨과 즐거움만 있는 것 아닙니다. 핍박이 있고 고난 있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고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때문에 순교의 제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당국자들의 극심한 박해아래 있었기 때문에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물고기 그림을 통해 그리스도인임을 서로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들만의 약속)

왜 그들은 물고기 그림을 그렸을 까요” 헬라어로 물고기를 의미하는 ‘익투스’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이 고백을 표현하는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모으면 ‘익투스’라는 단어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고기 그림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미로처럼 생긴 수키로 수십키로의 지하 동굴 카타콤에서 생활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임을 고백하며 지냈습니다.

그들중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와 희생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좁은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넓은 길, 편한 길은 그 길을 찾는 사람이 많지만 결국 사망의 길, 멸망의 길이지만, 좁은 길, 고난의 길은 찾는 사람이 적지만 생명의 길, 구원의 길입니다.

희생없이 열매는 없습니다. 고난없이 영광은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주님께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막 8:33)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죄인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물과 가족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처럼 내가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내가 움켜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때 주님이 쥐어 주시는 풍성한 천국 보화를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많이 가질려고 애쓸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1956년 1월 8일, 중남미 에콰도르에 있는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른 4명의 선교사들과 그 부족에 들어갔다가 해변에서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짐 엘리옷 선교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명문 휘튼 대학에서 지도력있는 학생이었고 글을 잘 썼고 재능있는 연설가였고 레슬링부의 챔피언이자 스타였습니다.

라이프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무려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를 할애하였는데 “아우카족은 수백년동안 외부인들은 모두 다 죽여왔다. 다른 인디언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였으나 선교사들은 아우카족에게 가기로 결심하였다.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What a unnecessary waste!)라고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멀리 남미까지 가서 제대로 일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한 기자가 짐 엘리옷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또 다시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낭비라니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내 남편은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 뿐입니다.”

짐 엘리엇이 남긴 명언 중에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젠가는 놓아야 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놀라운 사실은 이후 순교한 5명의 선교사들의 아내들은 어린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아우카 부족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그 부족에 교회가 세워졌고 성경이 번역되었고, 자기 남편을 죽인 인디언들중 3명이 부족마을 교회의 담임목사와 지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신을 드리고 희생할 때에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예수님: 나를 따르라
또 다른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예수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교훈: “삶의 우선 순위”를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는 것은 고대 사회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문맥상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면 그는 이미 장례식에 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장자의 의무 다하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 유산을 물려받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몇년이 걸릴지 수십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고 너는 하나님 나라 사역에 먼저 헌신하라는 의미입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 봉사의 삶 먼저해야지 미루거나 세상의 일 다하고 시간 남을 때 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추수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같이 들어 드리라” (민 15:18-20)

그리고 이것을 영원한 절기로 삼아 해마다 첫 열매를 맺게 되면 그것으로 맥추절을 지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 23:16)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은 첫 열매가 가진 대표성때문입니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모든 수확물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감사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첫 아들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어떻게 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칩니까? 민수기 8장 14-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레위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초태생 곧 모든 태어난 자 대신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장자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은 가정의 기업을 주시고 자녀를 허락하신 분 또한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율법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교훈은 내 삶의 귀한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물질이 내 삶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녀가 내 삶의 보물이 아니라 그 자녀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삶의 보물임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너희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마 6:33)

중요한 단어는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제자의 삶은 내 삶의 우선 순위를 잘 정립하여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이 내가 추구해야할 삶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그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부모가 소중했고 어쩌면 부모의 유산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302장 “주님께 귀한 것 드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1.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진리의 싸움을 할 때 열심을 내어라
2. 주님께 내 귀한 것과 내 맘과 내 생각도 주 위해 온 몸을 바쳐 힘 다해 섬기면
3. 우리의 귀한 것 모두 주님께 바치어도 단번에 생명을 주신 그 사랑 못 갚네 하늘의 영광을 버려 우리를 구했으니 그대의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우리의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우선 순위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또 다른 사람: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교훈: 단호한 결단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온전히 순종해야합니다. 성경에 보면 부르심을 받은 자가 -아브라함, 모세, 선지자들- 가족과 의논하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고 결정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선지자)

가족, 친척, 환경에 좌우 될 것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순종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 고별 설교의 주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22)
– 이방신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이방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
–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제자들이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 9:9)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눅 5:11)

모든 것에는 자신의 직업, 재물, 가족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본회퍼: 나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히틀러 암살 모의 가담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옥사함. 값싼 은혜, 희생없는 구원의 위험성을 경고한 그는 ‘나를 따르라 ‘라는 책에서 고난과 순종의 삶을 사는 제자의 삶에 대해 강조합니다.

“살아있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는 분명 헌신 없는 기독교와 같다. 또한 헌신이 없는 기독교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나 마찬가지다.”

• 막 10:17-22 결단하지 못한 한 부자 이야기
–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부자에게는 재물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였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로 산다는 것은 : 내 중심->하나님 중심으로 가치관의 radical 변화 가져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의 속성 중 하나는 ‘자아 중심의 삶’ (self-centered life)입니다. 이 세상, 우주의 주인은 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복음이 들어가면 가치관의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God-centered life)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하며 자녀됨의 축복을 누리며, 영혼을 구원하는 삶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사명이기도 합니다.

제자란: 1) 희생, 포기하는 사람, 2)삶의 우선순위를 주께 드리는 사람,
3)단호히 결단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고 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의 ‘팬’이 아닌 ‘제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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