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3:13-17
8/22/2021 주일 낮 예배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 4권을 ‘복음서’(Gospel)이라 부릅니다. 그 중에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 3권을 ‘공관 복음’(Synoptic Gospel)이라 부르는데, 같은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 본다는 의미입니다.
마태 복음이 다른 복음서인 마가, 누가, 요한 복음과 다른 특징을 몇가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태 복음은 주 독자층이 유대인들이어서,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 유대인이 오랫동안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야로 선포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가장 먼저 쓰였기 때문에 제일 앞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구약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약속과 성취’로서 두 시대(구약과 신약)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래서 마태 복음에는 구약 성경을 다른 신약의 책보다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거의 130번) 마태 복음에 자주 사용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졌다’라는 구절은 9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다른 복음서에는 한 번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3. 마태 복음은 다섯 개의 위대한 강화 (discourses)를 중심으로 짜여있습니다. (5-7장 산상 수훈, 10장 제자들을 가르치심, 13장 천국 비유들, 18장 제자도, 24-25장 감람산 강화(종말)) 마태가 의도적으로 배열한 것인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라는 구절로 매 설교(강화)가 마무리되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마태 복음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것은 마태가 모세 오경의 구조를 모델로 했음을 암시합니다. 마태는 복음서를 새로운 토라(율법)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더 위대한 모세’로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4. 마태 복음은 ‘교회’를 언급한 유일한 복음서(16:18, 18:17)이며, ‘하늘 나라’라는 구절이 32회나 등장하는데-‘하나님의 나라’는 4회-이는 유대인들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불경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마태 복음 뿐 만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서도 동일하게 침례 요한이 유대 백성들에게 외친 첫 복음의 메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전한 첫 메세지도 동일하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은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theology of the Kingdom of God)은 구약 성경 창세기 부터 신약 마지막 성경 요한 계시록까지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사상입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파괴와 구속,회복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생을 누리며 살도록 창조되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빠져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는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 많은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여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죄의 속박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이땅에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죄와 사망과 고통과 눈물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그 날을 소망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 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하늘 나라, 천국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 복음을 공부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흔히 국가를 이루는 세가지 요소를 주권, 국민, 영토라고 합니다. 1)주권은 국가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주체, 권력의 힘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2)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3)영토는 한 국가가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정립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즉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모든 곳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 나라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할 사실은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며,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곳 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됩니다.
천국의 주인은 그리스도시며 우리는 그 왕국의 시민들입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첫 메세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멀리 보이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죄로 부터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함께 읽은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공생애 부분부터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기 이전에 공생애의 첫 사역으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의 제목을 ‘왕의 즉위식’이라 붙였습니다.
‘즉위식’은 요즈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요 새로운 왕이 왕권을 이어받고 왕정을 시작함을 모든 사람 앞에서 선포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대관식’이 있습니다.
대관식(戴冠式)(Coronation)은 기독교 문명을 근저로 하고 있는 유럽 황실에서 왕이나 여왕이 즉위할 때, 기독교의 사제가 그 머리에 왕관을 씌어주는 의식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왕관을 머리에 얹어 준다고 하여 영어로 Coronation, 한자어로 대관식이라 칭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중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대관식 대신 즉위식 (卽位式)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황제는 천제(天帝)라 생각했기에 그 머리에 누군가가 왕관을 씌어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는다고 하여 즉위식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하신 일은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마치 유럽 황실의 왕이, 중국의 황제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모든 백성에게 공포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되심과 그 아들의 구속 사역이 시작됨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왕의 즉위식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켜 보시며 인정하시는 왕의 즉위식이요 왕의 출정식과 같은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침례의 의미에 대해 상고해 보기를 원합니다.
1. 모든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세례(침례)에 대한 성경적 기원은 구약의 결례(정결 의식)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자신의 몸을 정결케 하는 ‘정결 예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전통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개종하여 유대교인이 될려면 할례를 받아야 했는데, 할례 받은 후 상처가 아물면 그 사람을 데리고 강으로 가서 흐르는 물에 씻게 하고 물 가운데 세워 율법을 읽어 주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많은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의 침례는 회개와 죄사함을 상징하는 의식이었고 불과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메시아를 대망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기 위해 갈릴리로부터 요단강까지 친히 내려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 받으려 하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기에 침례 주기를 꺼리며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침례 요한은 스스로 말하기를 “너희로 회개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예수님)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11)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으로 부터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자신에게서 침례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여기서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의 삶을 의미합니다. 침례 요한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은 구원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침례를 주는 순종의 행위가 결국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던 것 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순종함으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생각과 이해력으로는 합당하지 않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라면 겸손히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인간의 죄를 대신할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한 분이시기에 회개나 죄 씻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할 구원자로 오셨기에 인간의 죄와 실패와 완전하게 동일시하시기 위해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오신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인간들과 동일한 존재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말씀에 기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종의 형제를 가지셨고, 십자가에서 죽기 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높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스스로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셨고, 죄 없으신 주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침례받으심은 예수님의 대속 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3. 메시아의 도래와 사역의 시작을 공적으로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1:31에서 침례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침례를 베풀므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구원자)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침례 요한은 또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 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 1:33-34)고 말합니다. 침례 요한은 침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령이 비둘기 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 앉는 것을 보고- 확실히 알았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침례 받으심은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왕의 출정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지도 않았던 소박한 의식이었지만,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음으로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자로서의 위대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4.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은 침례를 통해 회개와 죄사함의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친히 침례를 받으셨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되는 성도들이 지켜야할 의식으로 침례를 명령하셨습니다. (마 28:18-19) 그 명령을 주신 분이 스스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침례의 의미는 나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공중에게 증거하는 예식입니다. Baptism (수침례)을 지키는 우리는, 물 속에 들어갈 때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물 속에서 나올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침례는 구원의 방편이 아니라 구원의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 6:4-5)
침례 받을 때 나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침례 받을 때에 예수님께서 주신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되며,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6-17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왔을 때 나타난 기이한 현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현상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린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형상이 비둘기 형상을 하였습니다. 비둘기는 온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온 지면에 물이 감한 것을 전하여 준 동물이 비둘기였습니다.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임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증하는 현상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사 61:1-2 인용)
두번째 현상은 하늘로부터 음성(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증거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은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기독교 이전의 메시아를 가르키는 말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을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는데, 예수님을 우리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시고 죽으실 종으로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사 42:1-7 말씀은 인간을 대신하여 속죄의 사명을 담당하실 ‘고난 받는 종’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례 현장을 하늘에서 지켜 보고 계셨고, 성령을 비둘기처럼 보내셨고, 친히 음성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구원자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1년 이상의 시간을 통해 마태 복음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번째 일로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침례 받으심의 의미는: 1)모든 의를 이루는 것 2)우리 죄를 대신할 구원자이심을 증거 3)메시아의 도래와 사역의 시작을 알림 4)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심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겸손하게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룬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침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의 옛 사람이 죽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 거하며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