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6-10)

Posted on 12월 27,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12-27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6-10)

“와서 우리를 도우라”
•본문: 사도행전 16:6-10
12/27/2020 주일 낮 예배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 보며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정리하는 언론 보도를 보곤 합니다.

올 한 해를 규정 지을 수 있는 사자성어로 “적막 강산”(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답답한 지경)이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2020년을 시작할 때 희망을 담은 사자 성어로 제일 많이 뽑힌 것은 “만사 형통”이었다고 합니다. “만사 형통”을 바랬던 한 해가 “적막 강산”으로 바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 한 치 앞조차 내다 볼 수 없는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한 해였습니다. 허리케인과 산불과 같은 자연 재해 앞에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셧다운 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8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감염되었고, 170만명이상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전무후무한(전례없는, unprecedented) 대 전염병(Pandemic) 시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를 떠올리게 됩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는 돋는 풀같으니이다”(90:4-5)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밤의 한 순간 보다 짧은 인생이며, 잠깐 자는 것 같고 아침에 돋는 풀과 같은 인생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덧없고 짧은 인생을 헤아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셔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에 경험한 “마게도냐 환상”(Macedonian Vision)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여 형제들을 권면하고 격려하기 위해 두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마가 요한의 동행 여부로 인해 바나바와 다투게 되어 그 결과 피차 갈라서서 실라와 함께 전도 여행을 시작합니다.

루스드라에서 신실한 믿음의 형제인 디모데가 전도팀에 합류하여 힘을 얻게 되고 세 사람은 여러 성으로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전하여 주고 그들에게 지키게 합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성도의 수가 날마다 늘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의 복음 전도를 막으시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원래 계획은 더베와 루스드라, 이고니온을 거쳐 동남쪽에 있는 에베소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한 이후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여 비두니아 지역까지 복음을 편만히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지금의 터키 지역 전체에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기에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통과하여) 무시아 앞에 이르러 방향을 바꾸어 북쪽 지역 비두니아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지도 참조)

하지만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성령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6),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로 가는 것도 막으셨습니다(7). 왜 성령께서, 예수의 영이 그들의 계획을 막으셨는지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3명의 전도팀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 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막으시는 것일까?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마게도냐와 소아시아을 잇는 주요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미리 보여 주실 때 ‘환상’을 보여 주신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주께서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직가에 위치한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는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게 하나님은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사람을 욥바에 있는 시몬 베드로에게 보내어 그 사람을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던 베드로에게 황홀한 중에(환상 중에)나타나신 하나님은 신비한 동물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이방인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드로아에서 밤에 바울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다 건너 마게도냐(그리스 반도 북쪽 지역) 사람 한 명이 서서 바울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합니다.

그 신비한 환상을 본 바울은 “우리가”(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드로아에서 합류) “곧”(즉시로)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들을 부르셨음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하다”라는 동사는 “확실히 추측하다” “결론을 내리다” “확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모으다” “함께 의견을 올려놓다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어떤 것을 추론해 내다”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세 사람의 의견을 함께 모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로 부르시는 것이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데 중요한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은 “막으실 때”도 있고 “여실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계획은 두 번씩이나 성령에 의해 막혔습니다. 아시아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비두니아 지역으로도 가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바울은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갔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계획했던 대로, 소망하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경험을 하곤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계획한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되는데 나는 하는 일마다 방해를 받고 진척이 안 될때가 있습니다.

저의 짧은 인생 가운데도 여러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두 가지만 생각해 본다면, 대학 졸업하고 친구들은 모두 안정된 직장을 얻어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저는 대학 4학년 여름때 인턴 생활을 통해 미리 합격 통지를 받은 기업을 들어가지 않고 캠퍼스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며 전도하는 ‘캠퍼스 사역자’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1년동안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전도자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년의 시간이 다 지나갈 무렵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활짝 여실 것 같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개월간 기도하면서 이전에 합격한 기업으로 재입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때 일년 가량의 시간은 보람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이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 7년 8개월간 사역을 정리하고 교회를 나섰지만 2여년간은 저에게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교회 개척과 선교에 대한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구하며 하루 하루 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활짝 여시길 원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지 시간은 더디게 지나갔습니다.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본격적으로 전도자로서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은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라비아에서 3년간의 시간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의 시간, 안디옥 교회에서의 훈련의 시간이 그에게 필요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내가 계획했던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무의미한 시간처럼 여겨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 때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막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막기도 하시지만 더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앞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쪽이 막히면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열어 주시는) 다른 길을 찾으면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사로 평생을 살았던 리빙스턴(David Livingston)도 원래 중국으로 갈려고 계획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프리카로 보내셨습니다. 근대 선교의 문을 열었던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도 처음에는 남태평양 폴리네시아로 가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인도로 이끄셨습니다. 미국 침례교 최초의 해외 선교사인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은 먼저 인도로 선교를 떠났으나 하나님은 그를 버마(현재 미얀마)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는 버마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성경을 번역하였고 영어-버마어 사전을 편찬했고,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서 왜 아시아에서 복음을 더 이상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지역에는 복음을 들어야할 사람들이 아직 수 십만명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왜 복음 전파를 막으시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럽에 먼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의 부르는 손짓은 유럽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calling 이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서 2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유대로 돌아가는 길에 아시아의 수도였던 에베소에 잠시 들렀고, 이후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2년 3개월을 머물면서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도의 우선 순위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해와 상식으로 납득하여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기에 유럽 선교 여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선교의 문을 닫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여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계시록 3장에서 사도 요한은 성령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시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계 3:7)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선교를 주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복음 사역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영, 성령께서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영 성령께서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뜻과 계획과 달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선하고 최선임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할때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마게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본 바울 혼자서 기도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0) “우리가” 4명(바울, 디모데, 실라 + 드로아에서 합류한 누가)이 함께 기도하며 의견을 모아 결정을 내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선교 사역을 위해 우리를 팀으로 부르셨습니다. 리더에게 하나님의 뜻을 환상으로, 기도 중 확신으로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교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며 지혜를 모아 확신 가운데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한 사람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선교를 위해 기도로 동참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두번째 교훈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입니다.

드로아에서 칠흙같이 어두운 밤, 바울은 기도 중에 생전 보지도 못한 “마게도냐 사람 한 명이 서서 그에게 청하여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도우라”라는 단어는 헬라어 “보에쎄오”인데, 이 단어는 ‘울음소리’를 뜻하는 ‘보에’와 ‘달리다’를 뜻하는 ‘쎄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가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갈급한 마게도냐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저희도 진리에 굶주려있습니다. 영적으로 갈급합니다. 오셔서 저희에게도 생명의 복음을 전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요청하는 한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꿈과 환상을 통해, 기도 중 깨달음을 통해, 말씀의 사역자들을 통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에 굶주린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듣게 하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십시오” 외치는 자들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의 부르짖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고, 기도하며 순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곧”(immediately)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10)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거나 미루면 안됩니다. 핑계를 대면 안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나를 보내소서”(Lord, Here I am. Send me now)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사단과 그의 졸개들이 성도들의 신앙생활 방해 공작을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습니다. 젊은 엘리트 출신의 마귀가 크리스천을 죽이자고 제안할 때에 늙은 마귀가 순교는 교회의 씨가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때리면 매 한 대에 예수 믿는 자가 열도 더 생긴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감옥에 가두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가두면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므로 손해라고 했습니다. 그 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에 늙고 지혜로운 마귀가 지혜를 짜내었습니다. “열심히 전도도 하고 사랑도 하자. 그러나 내일부터 하자”라고 속삭이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이 마귀의 최대 성공전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미루지 말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제를 보내소서’ 하지 마시고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먼저는 기도로 도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선교의 시작이요 마지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의 문을 열어 주시고, 사역자를 세워 주시고, 교회가 세워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악한 영의 권세를 결박하여 주시고 복음에 굶주린 영혼들을 예비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중보 기도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2021년도에는 선교 사역을 위해 개인적으로, 새벽 기도회로, 금요 중보 기도회로 모여 더 많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는 물질 후원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물질의 후원없이 사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먹이시기도 하셨지만, 수넴에 사는 부유한 여인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음식과 머물 방을 예비함으로 아들을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올 한해 어려운 중에도 우리 교회를 통해 선교사님들을 꾸준히 후원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길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올 해 부터 시작된 “Snack In a Pack” 사역을 통해 지역에 거주하는 10명의 학생들에게 도움(주말 식사 제공)을 주게 되었고, Samaritan Purse 기관을 통해 55명의 고아들을 돕게 하셨고, 또 올 해 부터 저희가 속한 SBC 국제 선교부(IMB)를 통해 전세계 165개국에서 사역하는 3,700여명의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기 위해 Lottie Moon 선교 헌금에 동참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10분의 선교사님들과 3개 기관에 약 5만 4천불의 재정 지원을 하게 하셨고, 개별 성도님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페루의 아이들과 목회자, 신학생들을 지원하는데 만 3천불과, 우물 사역에 4천 5백불을 지원하게 하셨습니다.

지난주 SBC 총재이신 Ronnie Floyd 목사님이 보내오신 편지를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요약: 4억 6천 7백만불 협동 선교 헌금, 1억 5천 9백만불 라티문 선교헌금(역사상 두번째 높은 금액), 암스트롱 부활절 헌금 4천 9백만불, 모두 6억 7천 5백만불 헌금 동참. 416명 선교사 파송, 남침례교 구호 단체 (적십자와 구세군에 이어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재난 구호 단체)통해 국가적 재난 당한 분들 위해 753,977끼니 제공, 7,975개 복구 작업, 6,813건 복음 전파, 875명 영접, Send Relief(해외 구호 단체) 통해 77개국 700개 이상 프로젝트, 23만개 N-95 마스크 전달, 30만 끼 식사 제공, 6개 신학교 통해 25,023명 학생 유치, 3,287명 졸업)

우리의 작은 헌신들이 모아져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들이 전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시간과 재능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올 해는 중단이 되었지만 선교 바자때 음식 준비와 배달등을 통해 사역에 동참하며, 앞으로 가능하다면 선교지를 방문하여 이발, 건물 보수, 여름 성경학교, 의약품과 의류 전달등의 사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건강, 재능을 드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길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0년 한 해는 Covid-19 팬데믹으로 어려운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선교 사역에 적극 동참케 해 주셔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님이심을 인정하고, 성령께서 선교의 문을 열어 주시고 꿈과 환상으로, 말씀으로 보여 주실 때 겸손히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년에도 우리 모두가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영혼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기도와 후원, 시간과 재능을 드려 선교 사역에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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