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오랜 제자, 나손

Posted on 5월 7,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5-02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오랜 제자, 나손

•본문: 행 21:15-16
5/2/2021 주일 낮 예배

오늘은 말씀을 나누기 전에 한가지 퀴즈를 내겠습니다. 오래 될 수록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술(와인), 된장, 고추장, 고대 유물, 유명한 예술 작품, 친구…

와이오밍/몬타나/아이다호 주에 걸쳐서 위치한 옐로스톤 국립 공원은 화산 지대의 진귀한 현상들을 경험할 수 있는 자연의 보고인데요, 가장 큰 볼거리는 일정한 시간마다 거대한 물줄기(간헐천, Geyser)를 분출하는 “Old Faithful”이라는 가이저입니다. 매 40-80분마다 쉬지 않고 뿜어대는 물줄기는 높이가 50-60미터나 되어 장관 중의 장관입니다.

오랫동안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있는 지구의 한 모습과,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Old Faithful”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Old Faithful”처럼 우리의 신앙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신실한 신앙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나손이 바로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 때 사도바울과 함께 동행한 사람들은 가이사랴의 몇 제자와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이었습니다.

‘나손’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본문에만 등장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입니다. 그는 단지 구브로(Cyprus)출신이며 오랜 제자라고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동행한 이유는 자신의 집을 바울 일행의 거처로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집이 예루살렘 성내에 있어나 예루살렘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일행이9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이었으니 상당히 규모가 큰 집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손이라는 이름은 ‘권고자’ ‘회상가’ ‘부지런한 구도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나손은 헬라식 이름이고 유대인들은 그를 야손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의 출신지가 구브로라고 했는데,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1차 전도 여행시에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 변함없는 신앙(Old Faithfulness)
나손이 언제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랜 제자”(old disciple, early disciple)라고 불리운 것으로 보면 복음의 초기에 제자가 되어 오랫동안 주님을 섬긴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회개한 사람들 중 하나였거나(11:20), 바나바와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최초의 열매였을 수 있습니다. (13:4)
만약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설립 멤버 중의 한명이었다면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누가에게 전달하였을 것입니다.

짐작컨데 그는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서 살면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의 메세지를 직접 들은 사람 중 한명이었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들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경험한 사도들과 12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멤버로 그는 교회를 섬겼으리라 생각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설립 직후에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큰 핍박을 당해 성도들은 대부분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남은 제자들도 기근과 박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20 말씀에 보면,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기에 기록된것처럼 안디옥에게 가서 복음을 전한 구브로 사람 중에 한 사람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는 오랜 기간동안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을 섬긴 신실한 제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서부 오리건 주부터 시작하여 캘리포니아 중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존재하고 있는 거대한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는 높이가 최대 100미터가 넘는 것도 있고 부피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오래된 나무의 수명이 3천년이 넘는 것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다윗, 솔로몬 시대때 부터 존재한 나무라는 말입니다. 3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병충해나 산불이나 가뭄, 홍수, 지진과 같은 수 많은 자연 재해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처럼 변함없이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몰아치고 지진으로 세상이 흔들려도 주님만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바로 나손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나손처럼 한결같은 신앙이 되면 좋겠습니다. 비 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고 꿋꿋하게 자기 자리에서 수천년을 버티어 온 세콰이어 같은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7교회 중 에베소 교회는 인내함과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게으르지 않은 것에 대해 칭찬을 받았지만, ‘처음 사랑’(first love)을 버렸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첫 사랑’이 결혼으로 까지 이어진 분도 계실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리라 생각되는데, ‘첫 사랑’의 추억은 오래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첫 사랑’은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때로는 무모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의 ‘첫 사랑’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입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과 은혜는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 받은것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 경험한 ‘첫 사랑’을 잃어 버리지 말고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Once upon a time’ (‘옛날 옛적에’) 과거의 경험으로 여기지 말고, 주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의 그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잊어 버리지 말고 평생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시므온과 안나라는 두 노인이 등장합니다. 두 명 모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메시아를 소망하며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평생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았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시므온은 성전에서 정결 예식을 치르기 위해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온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자신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안나 할머니도 결혼한 후 7년만에 과부가 되어 84세가 될 때까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로 섬겼습니다. 안나 할머니도 성전에서 메시야를 만난 이후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 모두 평생 변함없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기도와 금식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던 경건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나손도 이들처럼 평생토록(아마도 70세이상된 노인) 주님의 제자로서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나손처럼, 시므온과 안나처럼 환난이나 핍박 중에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 변함없는 헌신(Old Sacrifice)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4KM로 걸어서 이틀 이상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여행객들을 노리는 강도들이 곳곳에서 출몰하였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이방 교회으로 부터 모은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강도로부터 습격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9명의 일행들과 더불어 가이사랴의 몇 제자들과 나손이 그들과 동행합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여행하였기에 바울은 훨씬 마음 편하게 예루살렘으로 걸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손은 바울 일행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가리사랴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집에서 걸어서 미리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바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의 길잡이가 되어 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는 기쁨으로 복음 전도자들을 위해 섬겼습니다.
그는 바울 일행을 위해 먼거리를 동행하였고 자신의 집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 자신의 집을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던 사람들이 여러명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함의 기적의 현장이었던 집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집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또 빌립보에서 처음으로 회심하고 자신의 집을 바울 일행의 숙소로, 교인들의 모임장소로 제공한 사람은 여성 사업가 루디아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 일행을 위해 처소를 제공한 사람은 야손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큰 소동을 일으켰을 때 그는 그것으로 인해 고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혼자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왔을 때 머물렀던 집은 아굴과와 브리스길라 부부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부로서 바울과 동일하게 장막 만드는 일을 하였으며 바울의 사역을 도왔고 바울로 부터 잘 훈련되어 귀하게 쓰임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한 장로님은 사업가이신데, 북한 선교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섬기는 선교회에서 시내에 작은 원룸 하나를 마련하여 그 지역을 방문하는 선교사님들의 숙소로 제공하고 계십니다. 관리하는 스탭을 통해서 선교사님들이 며칠간 머무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손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제자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몸과 물질을 바치는 제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 ‘땅에 떨어져 썩어짐으로 열매맺는 한 알의 밀알같은 존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5장에 보면 ‘잇대’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은 급히 신하들과 함께 왕궁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때 가드 사람 육백명도 함께 동행합니다. 가드는 블레셋에 속한 한 지역을 의미하는데 다윗의 사병 부대에 합류한 육백명의 블레셋 군인들의 우두머리가 ‘잇대’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잇대에게 정처 없이 떠도는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너의 무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잇대는 위험에 처하여 피난길에 오르는 다윗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니”(삼하 15:21)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얼마나 위대한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으로서 다윗에 대한 절대 충성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어려운 시절 광야에서 동거동락했던 주군을 버리지 않겠다는 잇대의 고백은 희생을 동반하는 헌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홀로된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압 여인 룻의 고백을 떠오르게 합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룻 1:16-17상)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헌신은 곧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었고, 그 아름다운 헌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됩니다.

우리 모두, 나손처럼, 잇대와 룻처럼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의 귀한 것을 희생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변함없는 제자(Old Disciple)
신약 성경에 ‘제자’라는 단어는 269회나 등장하는 흔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제자’는 원래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약 성경에서 제자라는 말은 스승되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라는 말이지요.

나손은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평생토록 실천하며 살았던 ‘오랜 제자’였습니다.

‘오랜 제자’( old disciple)라고 하면 ‘나이많은 제자’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본문 맥락상 오랫동안 제자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나손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 평생토록 ‘배우는 자’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평생토록 배우는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셨는데 말씀을 배우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도 선교도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실천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나 선교는 그냥 하면 되지 배워야하나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도 배워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 중보 기도의 능력,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는 교회에서 선교에 관심있는 몇명이 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성도 모두가 선교의 일꾼이 되어 기도와 물질로, 시간과 몸을 드려 동참해야하는 지상 최대의 과업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동기, 선교 전략, 선교의 역사, 지역 교회와 선교에 대해 계속 배우고 훈련되어져야합니다.

평생을 ‘제자 훈련’에 헌신한 사랑의 교회를 설립하고 담임하신 고 옥한음 목사님은 스스로를 ‘광인’이라고 했습니다. 제자 훈련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옥 목사님이 한국에서 제자 훈련을 교회 평신도들에게 도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제자 훈련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캠퍼스 선교 단체들의 전유물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옥 한음 목사님은 ‘제자 훈련’을 지역 교회에 접목하여, 성도들을 ‘교인’에서 ‘제자삼는 제자’로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습니다. 교재를 개발하고 목회자들과 평신도 리더들을 훈련하였습니다. 직접 수 많은 제자 모임을 인도하며 제자를 양육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KAL 세미나를 통해 목사님이 시작한 ‘제자 훈련’이 계속되어 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수천 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 리더들이 ‘제자 훈련’을 받았고 그 시스템을 교회에 적용하여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 옥한음 목사님의 일대기를 다큐멘타리로 제작한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그 영화의 제목은 “제자 옥한음”이었습니다. 이 타이틀이 그의 삶을 잘 요약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인’과 ‘제자’의 가장 큰 차이는 받은 은혜와 가르침을 내가 품고 있으면 ‘교인’이고, 받은 은혜와 가르침을 불신자들과 초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제자’입니다.
‘교인’은 끊임없이 받기를 원하지만 ‘제자’는 할 수 있는데로 나누기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교인’입니까? ‘제자’입니까?

한국에 있는 대학중에 기독교 정신으로 다시 세워진 우수한 학교 중에 한동 대학교라고 있습니다. 한동 대학교의 초대 총장님이셨던 고 김영길 박사님의 모토는 ‘배워서 남주자’였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자는 의미겠지요. 김영길 박사님은 KAIST에서 인정받는 교수였고, 탁월한 연구 실적으로 해외에도 알려진 석학이셨는데, 세상의 성공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 삶을 드려 그리스도의 제자를 육성하는데 일생을 바친 존경받은 교육자이자 참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나손, 그의 이름은 오늘 본문에만 기록되어 있는 무명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오랜 제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수식하는 이 짧은 단어가 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토록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Old Faithfulness)
그는 오랫동안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의 귀한 것을 드린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Old Sacrifice)
그는 오랫동안 변함없이 배우는 자였고 배운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그리스도의 참 제자였습니다. (Old Discipl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오랜 제자 나손’처럼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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