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4:1-11
8/29/2021 주일 낮 예배
믿음 생활하다보면 시험에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시험, 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시험, 육신적인 연약함으로 인한 시험등 각양 시험으로 인해 믿음에서 흔들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에서 시험이라고 하는 단어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는 시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시험, 영어로는 test, trial 로 표현하는 시험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시험(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예가 욥이라는 인물이었죠.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는데 사탄이 하나님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그의 풍성한 소유물을 치시면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하여금 욥의 재산과 가족을 빼앗아 가게하고 그의 몸도 상하게하는 엄청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욥은 그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내었습니다. 그의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고통 가운데서도 ‘그를 단련하셔서 순금 같이 만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시험을 잘 통과하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며 흔들림없이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일꾼이 됩니다.
야고보서에는 시험을 이긴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시험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욥처럼 믿음으로 시험에서 승리하여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두 번째 시험은 영어로 유혹, 미혹을 의미하는 ‘temptation’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에서 받으신 시험은 바로 두 번째 시험, ‘유혹’이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두 번째 시험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3-15)
1)하나님은 시험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아무도 죄에 빠지도록 미혹하지 않으십니다. 죄에 빠지도록 미혹하는 자는 ‘사단’입니다. 사단의 이름의 의미가 ‘미혹하는 자’(tempter), ‘고소하는 자’(accuser)입니다.
2)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악(사단)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신 본문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미혹되지 않으셨습니다. (시험에 빠지도록 마귀가 시도했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3)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험’은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test, trial)이라기 보다 우리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시험’(유혹, temptation)이라는 말입니다. 인간들안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탐욕)은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고 죄가 자라나서 결국 사망에 빠뜨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하며 하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원자(메시아)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귀에게 시험 받으심과 그 시험을 물리치심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자 사단의 궤계를 파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또한 첫번째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함으로 실패한 인생이 되었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시고 이기심으로 모든 인류의 구원자의 자격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 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히 4:15)가 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들처럼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심으로 시험 받는 이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시험 받을 때에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살면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귀에게서 3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한가지씩 살펴 보면서 시험의 의미와 시험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 육신의 정욕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에서 성도들에게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성도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요소들입니다.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것은 이 세가지 시험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육신의 정욕”에 대한 시험입니다. 3절 말씀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매우 허기진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참 인간이셨기에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육체의 모든 한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피곤함, 허기짐, 슬픔, 십자가의 고통)
마귀는 예수님의 약한 부분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가장 필요한 육신의 문제, 원기를 회복시켜 줄 빵을 가지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원래의 의미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돌을 명하여 빵이 되게 할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이것은 마귀의 교묘한 전략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더군다나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허기지고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 때문에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빵으로 그들의 허기를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심을 전하기 위해 행하신 이적이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약점을 간파하고 예수님을 미혹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류의 조상 하와가 어떻게 마귀의 시험에 속아 넘어가게 되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사단이 간교한 뱀의 모양으로 나타나 하와에게 속삭입니다. (창 1:1-6)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의 대답입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원래 하나님의 명령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1:16-17))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약점을 사단은 교묘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사단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는 사단의 꾐에 넘어가고 맙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자리 잡게 되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 스럽게 보이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금단의 열매가 탐스러운 열매로 바뀐 것입니다. 죄가 자리 잡은 하와의 마음속에 세 가지 죄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었습니다.
1)먹음직 스럽게 보임(육신의 정육) 2)보암직하게 보임(안목의 정욕) 3)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임(이생의 자랑)
사단이 예수님께 던진 첫번째 시험은 “육신의 정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돌을 명하여 빵이 되게 하여 너의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사단이 예수님께 던진 첫번째 시험은 우리 크리스찬들을 유혹하는 강력한 시험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물질이 제일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Money matters, Show me the money!
성경은 우리에게 물질이 악하다거나 살아가는데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악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이 더 중요한 가치, 우상이 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맘몬을 너의 주인으로 삼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 청년) (예화. 물질적으로 성공한 이민자의 실패)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4)
예수님은 떡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먼저 채우는 것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물질 중심의 삶을 살라는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으심을 받은 연약한 육체를 가진 존재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코에 생기(하나님의 영)를 불어 넣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육적인 필요가 다 채워져도 영적인 필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지 아니하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영적 양식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살리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고 책망과 교훈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등이요 빛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예수님은 신명기 8:3 말씀을 인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인생의 주인되심과 공급자 되심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의 존재 근원은 떡이 아니요 하나님 말씀, 하나님 자신 되심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물질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라 그리하면 우리의 모든 필요들(먹을것, 마실것, 입을것)을 채워주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생의 자랑
두번째 마귀의 시험은 “이생의 자랑”의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합니다. 마귀도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왜곡되게 해석합니다. 시편 91:11-12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보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들을 명하여 너를 보호하여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한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릴 때 천사들을 보내 죽지 않게 하실 것이다라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고도 마실 물이 없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출 17:3)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출 17:6)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시험한 행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6)
그래서 예수님은 사단의 궤계를 꿰뚫어 보시고 신명기 6:16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두 번째 사단의 유혹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생의 자랑”(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과 같은 유혹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릴 때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보호하여 몸의 상함이 없이 사뿐이 지상에 내렸다면 사람들은 박수치며 환호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며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웅적 행동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입증하는 예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베푸신 이후에 사람들이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세울려는 줄 아시고 무리들을 피하여 조용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고 내 이름을 내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명예를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명함에 각종 직함을 넣기를 좋아합니다. 감투를 얻을려고 합니다. 하지만 허영과 권력을 쫓는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살면 안됩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겸손함으로 나를 낮추는 삶, 나의 유익을 먼저 구하기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 무엇보다 나를 자랑하기 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안목의 정욕
마귀의 세번째 유혹은 “안목의 정욕”에 해당하는 유혹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이르되 만일 네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미혹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통치권, 소유권)이 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께 속삭이기를 지금 네게 엎드려 경배하면(절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을 손쉽게 얻게 해주겠다는 유혹입니다.
마귀는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소유한 자도 아닙니다. 마귀에게 경배한다고 해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단지 거짓말로 유혹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에 궤계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영광을 얻기 위해 지름길을 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신명기 말씀(6:13)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섬김의 대상, 경배의 대상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우상들을 내어 던져 버리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마귀의 유혹은 “안목의 정욕”(보암직스럽게 보이는)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후 5:7) 보암직스럽게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면 살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안목의 정욕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것에 미혹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귀는 순간 순간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아라라고 미혹합니다.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의 마귀의 시험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운데 지켜 행함으로 ‘성령의 검’ 말씀으로 무장하여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욕구을 채우는 것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애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신 세상의 영광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사탄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