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예수님의 삼중 사역(마태복음 4:23-25)

Posted on 9월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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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 예수님의 삼중 사역(마태복음 4:23-25)

• 본문: 마 4:23-25
9/12/2021 주일 낮 예배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3년간의 공생애 기간 중 행하실 3가지 사역을 요약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르치심(teaching), 전파하심(proclaiming), 고치심(healing)입니다.

23절.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사”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갈릴리 호수 인근에 204개의 도시와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2백개가 넘는 도시와 마을을 걸어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 가르치심 (teaching)
예수님은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회당(synagogue)은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로서 그곳에서 예배, 재판, 율법 교육등이 이루어졌습니다. 회당이 생기게 된 것은 포로기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 드릴 수 없게된 유대인들이 흩어진 곳에서 예배 드리기 위해 세운 모임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이 10명 이상 모여 사는 곳에는 회당이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회당을 찾으셨습니다. 이후 사도 바울도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았고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되심과 구주 되심을 전하였습니다.

‘가르치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디다스코’인데 ‘교훈적인 설교를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구약 성경 에스라서에 기록된 율법 학자요 제사장인 에스라는 2차 포로 귀환시에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영적 개혁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뛰어난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결심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에스라 7:10)한 것입니다.

3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로 쓰임받았던 총독 느헤미야도 성벽 재건 이후 제사장 에스라를 불러 예루살렘에서 큰 부흥 집회를 인도하게 합니다. 그 때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책을 읽었고, 백성들 사이에 선 레위 지파 사람들은 그들에게 율법서의 의미들을 해석하여 그 뜻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느 8:8) 이것이 바로 가르침의 사역이었습니다. 말씀의 선포와 더불어 가르침의 사역이 함께 이루어질 때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 8:9)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백성들의 마음속에 찔림이 있었고 눈물의 회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준 말을 밝히 앎이라”(느 8:12) 말씀이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니까 모든 백성에게 큰 즐거움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헬. ‘디다스코’는 헬. ‘다오’에서 유래된 동사입니다. ‘다오’는 ‘배우다’ ‘가르침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즉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워야함을 의미합니다. 잘 배우는 사람이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배우는데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give attention to the words of the Laws)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느 8:13-14)

공동체의 리더들이 솔선수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기를 원해서 학사 에스라를 찾아왔습니다. 배울려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사모함으로 에스라에게 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They found written in the Law) 그들이 오랫동안 율법서에 기록된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배울려는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눅 4장에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 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눅 4:14-15)

기독교 교육학자 루이스 쉐릴(L. J. Sherrill)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표현이 신약 성경에 47회나 나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칭호도 전도자나 설교자보다는 ‘선생’이라는 표현이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복음서 42회)

예수님은 탁월한 교사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Parables)를 통해 가르쳤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무려 28개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 비유: 눅 15장 탕자의 비유) 마태복음 13장은 흔히 ‘천국 비유장’이라 불립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비롯해 6가지의 비유를 통해 천국의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는 청중들이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고 진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데 사용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 방법의 핵심은 “삶을 통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가르침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주무시며 생활하면서 살아있는 지식을 전수하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우선 순위는 제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관계가 사역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율법학자들이나 서기관, 랍비들의 가르침과는 대조적인것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행하지 않으면서 율법과 전통을 지키라고 가르쳤던 반면에 예수님은 “내가~행한것처럼 너희도 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가르치신 주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본을 보여 주셨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은 십자가에서 로마 군병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포로 귀환 시대에 영적 부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안에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 많이 세워져서 진리의 말씀을 성도들과 불신자들과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지식의 전달 차원을 넘어서 삶을 통해 제자를 양육하는 “제자삼는 제자”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전파하심(Proclaiming)
예수님의 두번째 사역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선포)하심이었습니다. 선포한다는 것은 논증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확신을 가지고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파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케루소”입니다. 원래 의미는 전령관(messenger)으로서 왕의 공적인 명령을 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는 것은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 권위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입니다. 그 권위를 가지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였을 때 무리들은 서기관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권위로 인해 놀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 기간동안 쉬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4:23,24)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9:35) 예수님은 걸어서 온 갈릴리 마을들에 다시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세 번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여 로마에 가서 재판을 기다리며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1,2,3차 전도 여행의 총 거리를 합산해 보면 약 13,400 Km 가량 됩니다. 그 먼거리를 사도 바울은 걸어서, 배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구약 시대 선지자들이 주로 행한 사역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청중이 듣고 순종하든지 하지 않든지 상관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전한 메세지를 듣기를 싫어한 왕들에 의해서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거나 메세지를 왜곡되이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자들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기에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담대히 하나님의 메세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가 전한 메세지로 인해 사람들로 부터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말씀 선포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불붙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his word is in my heart like a fire)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 20:10)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힌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진리를 선포하기를 열망하는 “불타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불타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령(messenger)은 왕의 명령을 신속히 백성들에게 선포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망각한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 가운데 선포해야할 전령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전령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파수꾼(watchman)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파수꾼은 적의 동향을 살피다가 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알리는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흔히 “전쟁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계(파수)하는 일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깨어서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에스겔에게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겔 33:6-7)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삼으신 주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선포)해야할 메세지는 무엇이겠습니까?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이 시대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1:9)고 하였습니다.

죄악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그 아들의 영광스런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 고치심(healing)
전체 복음서의 약 1/5이 예수님의 치유와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모두 72회 기록되어 있으며, 그 중 27회는 개인의 질병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마태복음 5-7장 산상 수훈 이후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8-9장의 기록은 거의 대부분 치유 사역이었습니다. (나병 환자, 백부장의 하인, 베드로 장모, 귀신 들린자, 병든자, 귀신들린 두 사람, 중풍 병자, 혈루증 여인, 소경, 말 못하는 사람)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며 가르치시기도 하셨지만 사람들의 질병, 특히 불치의 병을 고쳐주셨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좇아 내어 주셨습니다.
23절.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튜 헨리는 예수님은 “신체적으로 가장 쇠약한 질병인 중풍병와, 정신적으로 가장 악한 병인 간질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큰 재난인 귀신들림을 고쳐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병, 모든 약한 것, 각종 병에 걸려 고통당함을 외면치 않으시고 친히 그들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전인적인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백성되도록 복음을 선포하셨고(영혼 구원), 사람들이 실존적으로 겪고있는 질병와 약한 것들을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육체 구원)

예수님은 굶주린 영혼들과 병든 자를 보실 때 긍휼의 마음(compassion)을 가지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이 말씀 이후 예수님은 저녁 먹을 시간이 되도록 먹지 못한 채 빈들에 모인 수 많은 무리를 보시고 그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셔서 그들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구한말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복음을 전한 서양 선교사들이 걸어서 말을 타고 한반도 방방곡곡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펼친 사역은 의료 기관 설립과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조선의 수 많은 백성들이 선교사들이 세운 근대식 의료 기관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으로 살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근대식 교육을 통해 계몽되어 수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배재학당, 경동학교, 경신학교, 이화학당, 연희 전문대, 세브란스 병원등)

지금도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 가서 하는 사역들 중에 교회 개척과 제자 양육과 더불어 고아원을 운영하고 유치원과 학교를 세우고 병원/클리닉을 세우는 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영혼의 구원과 함께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는 여호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출 15) 히브리어 “라파”는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수선하다’ ‘다시 세우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감싸 싸매시어 회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치유하는 광선”을 비추시어 우리의 질병과 약한 곳을 치유하셔서 건강한 원래 상태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든 것을 짊어지셨습니다.”((마 8:17. 사 53:4 재인용)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신 하나님은 무너진 우리의 인생을 다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허리케인과 지진과 같은 인생의 시련을 만나 절망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은 무너진 우리 인생의 집을 다시 세워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것은 육신의 질병에서 나음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의 노예됨으로 부터 벗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불치의 병에서 나음을 얻었더라도 예수님이 구원자되심을 믿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영원한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마 9장에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친구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온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시기 전에 죄사함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서기관들이 이를 듣고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였을 때 예수님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음을(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의 치유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그의 죄를 사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신 세 가지 사역,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시는 사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1)우리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 잘 배우며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 모두,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불러내어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메신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마지막으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여호와 라파)하나님께 나의 모든 연약한 부분을 내어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치유의 광선”을 비추셔서 우리의 모든 질병이 나음을 얻고 연약한 육체가 회복되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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