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행 22:1-21
5/23/2021 주일 낮 예배
인생에는 중요한 세 가지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만남은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과의 만남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재벌가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부모의 부와 명예를 상속 받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며, 학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면 뛰어난 학자나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나기 마련입니다. 경건한 믿음을 가진 부모로부터 양육받은 자녀들은 많은 경우 부모로부터 믿음의 유산을 상속받게됩니다.
두번째 만남은 평생 혹은 오랫동안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갈 배우자와의 만남입니다. 부모와의 만남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만남이지만 배우자와의 만남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만남입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인해 결혼 생활이 불행하게 마치는 경우도 많이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가지 만남으로 인해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세번째 만남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가치있는 삶을 결정할 뿐 아니라 영원한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만남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없이는 우리의 인생은 결코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프랑스 출신의 물리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 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상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유명한 장군이며 문학적인 천재였던 루 웰리스(Lew Wallace)라는 사람이 그 중 한 명입니다. 그와 그의 친구 잉거솔(Ingersoll)은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도말해 버릴 책을 쓰자고 약속했습니다. 이 두사람은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에서 기독교를 파괴할 자료를 찾으면서 2년 동안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루 웰리스는 책의 2장을 쓰다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하며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격이 어쩔 수 없이 확증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사기군으로 폭로하려고 결심하였던 그분이 그를 사로잡고 말았던 것입니다. 후에 웰리스는 지금까지 쓰여졌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가장 위대한 소설 중의 하나인 <벤허>를 썼습니다. (<예수의 유일성>)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불리우는 어거스틴(Augustine)도 방탕한 생활 중에 하나님을 만나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의 관원이며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태어난 어거스틴은 10대 시절에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이단인 마니교에 심취하기도 했으며, 카르타고의 흑인 노예를 첩으로 삼아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인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어 마침내 그는 긴 방황의 시간을 끝내고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30세가 지나서 밀란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중에, 386년 그는 어느 정원에서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때 울타리 밖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책을 들고 읽으라”(라틴어.tolle, lege, 영. take and read)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탁자에 놓여있던 성경책을 펼쳤는데 로마서 13:13-14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주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경험하게 되었고 추악한 과거의 모든 삶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어거스틴은 히포의 감독이 되었고, ‘고백록’ ‘하나님의 도성’과 같은 저술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는 위대한 신학자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흔히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합니다. 지식과 이성으로 믿는 종교라기 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기도 응답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고백하며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인격적 만남’입니다.
왜 제가 ‘인격적 만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느냐고 하면, 예수님과의 만남은 다른 종교나 명상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초월적 만남이나 신비적 만남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처럼 인격의 3요소인 지.정.의가 동반되는 만남입니다. 지적인 면에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고, 정적인 면에서 나의 감정의 끌림이 있어야 하고, 의지적인 면에서 더 많은 만남을 결정하고 더 많이 교제하기로 헌신하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을 핍박하기 위해 모인 유대인들에게 전한 ‘신앙 간증문’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간증하는 내용이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기록은 행 9:1-19 이며, 두번째 기록은 오늘 본문이며, 마지막 기록은 아그립바 왕에서 간증한 행 26장 내용입니다. 내용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큰 흐름은 동일합니다.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님->눈이 멀게된 사울->아나니아를 예비하신 하나님->사명을 주신 하나님)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바울은 천부장의 개입으로 로마군 수비대 영내로 들려들어가게 됩니다.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영내의 높은 층대 위에 서서 분노한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아람어)로 변증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1. 참 유대인임을 변증하는 바울 (3-4)
먼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임을 말합니다.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고(출생), 예루살렘에서 성장하였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성장과 학문),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임을 증거합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의 대표적 학파중 하나인 힐렐 학파의 창시자 힐렐의 손자로서 당시 탁월한 율법 학자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기에 그 누구보다도 율법에 탁월하였을 뿐 아니라 율법을 준행하는데 열성적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까지하였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고,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끌고 오기 위해 대제사장으로 부터 공문(위임장)을 받아 가는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2. 핍박자 사울을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5-11)
살기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청년 사울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치게 되자 그는 땅에 엎드려지고 말았습니다. 어디에선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은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대답합니다.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는데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 충만했고, 율법에 흠이없는 자라고 할 만큼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 사울은 강한 빛으로 다가오신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땅에 거꾸러뜨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 중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은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진리를 찾아 헤메는 수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던졌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문과 철학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은 선한 행위를 통해서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땅에 뭍히고 말았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오직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진리를 찾아 헤매었지만 진리를 찾지 못한 채 목마른 인생을 살았던 한 사마리아 여인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참 목적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을 마시기 원하십니까?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은 “주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바로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거듭난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의 질문에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셨고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사울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었겠습니까? 사울이 일생의 목표로 삼고 열심을 다해 매진한것은 기독교(교회)를 이스라엘 땅에서 멸절하는 것이었는데,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핍박자 사울을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기 위한 목적을 갖고 계셨습니다.
강한 빛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된 사울은 두번째 질문을 하나님께 합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그가 박해하는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리게된 사울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길위에서 극적인 회심을 경험합니다. 그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며,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그가 핍박하던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기다리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하는지 질문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순간 순간 이 질문을 주님께 해야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 믿기 이전에는 우리 모두 내가 인생의 주인으로 살았습니다. 내가 하기를 원하는 것들을 하였고, 내가 계획하고 꿈꾸는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그리스도인들은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면 안됩니다. 내 인생의 주인되신 예수님께 물어야합니다. “주님 오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사소한 일을 행할 때에도 예수님께 물어야합니다.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사람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사울은 주님께 이 질문을 던졌고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10)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9:6) 사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를 위해 주님은 한 사람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3. 아나니아를 예비하신 하나님 (12-16)
그 사람의 이름은 아나니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9장에 보면 아나니아에게 주님께서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는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라고 하였을 때 그는 처음에 사울에 대한 좋지 않는 소문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주저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거듭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가 형제 사울로 그를 부르고 그에게 안수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예수 그리스도)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14-15)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신 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유대인과 이방인) 그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 복음의 증인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위하여 경건한 주의 제자 아나니아를 예비해두셨습니다. 아나니아의 순종을 통해서 사울이 다시 보게 되었고 침례를 받고 주님의 제자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아나니아’와 같은 순종의 사람들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나 주님 뜻에 순종하며 헌신할 때 주님께서는 돕는 손길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의 길, 믿음의 길로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아나니아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기를 힘쓰며 경건하며 칭찬받는 주의 제자 아나니아와 같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높은 권위를 두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의 작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쓰임받으시기를 원합니다.
4. 사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신 하나님 (17-21)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약 3년이 지났을 때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행 9장에서도 아나니아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라고 말씀하심으로 그가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받은 자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행 26장에서는 다메섹 도상에 엎드린 사울에게 주님께서 직접 새로운 사명을 음성으로 들려주십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26:16-17)
핍박자 사울은 이제 전도자 바울이 되어 땅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쓰임받게 됩니다. 사울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이방인 선교의 위대한 사명을 허락하십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을 도망쳐 나와 광야에서 40년동안 목자로 지낸 이후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호렙산 불이 붙은 떨기 나무 앞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영적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 선지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에 이제 자신이 죽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숯불을 그 입술에 대시며 그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주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할때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선지자에게 주님께서는 선지자로서 백성에게 전할 메세지를 전해주십니다. 영광 가운데 이사야를 만나신 하나님은 순종하는 그에게 선지자의 사명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핍박자 사울을 찾아오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택받을 만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으로 인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14-15)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게 하신 것은 우리고 보고 들은 것에 증인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장’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라”(요15:16)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택하신 것은 열매 맺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영혼 구원)를 의미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2:9)고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명은 이 세상속에서 주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하나님의 탁월함을 선포하는’,NASB)사명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의 개인 신앙 간증 설교를 통해서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만나셨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주님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이 두가지 질문을 기억하시면서 주님을 더욱 알아가고,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기를 원하시는 사명을 깨닫고 날마다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