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사도행전 19:21-41)

Posted on 3월 14,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3-14
sermon manager 박성환

주일 설교 –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사도행전 19:21-41)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본문: 행 19:21-41
3/14/2021 주일 낮 예배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소동들이 일어납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고침을 받고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은혜를 나누었던 본문의 마지막 구절 말씀대로 주의 말씀에는 파워가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19:20)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그런데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긍정적인 현상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현상, 즉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로 인해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할 때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대적하던 무리가 있었는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사,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율법에 정통한 자들이었고 율법을 준행하기에 스스로 의로운 자들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의로 자신을 포장하고 교만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믿었고,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그들의 기준과 통념과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갖은 계략을 꾸몄고, 결국 백성들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로마 군병들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전도 여행 중에 유대인들로 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1차 전도 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위협을 당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습니다. 2차 전도 여행 중에도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으로 부터 귀신을 내쫓은 일로 인해 주인들로부터 고발을 당해 매를 맞고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베뢰아에서도, 고린도에서도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당했고, 또 고발을 당하여 법정에 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1-3차 전도 여행 중에 발생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의 중심도시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의 중심 도시인 에베소 사역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3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두란노 서원으로 사역지를 옮겨 2년 동안이나 날마다 주의 말씀을 전하여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장기간 사역을 통해 신실한 제자들이 훈련되었고 그 인근에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에서 말씀 사역을 통한 변화와 더불어 초자연적인 이적들을 바울을 통해서 행하셨습니다.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쫓겨나가는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상이 가득한 에베소를 가득 덮게 되자 수 많은 마술사들이 비법이 적힌 주문 책들을 모아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 값이 은 오만(오만 드라크마)이나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사건에 이어서 일어난 엄청난 소동(disturbance) 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 소동의 시작 (23-27) 데메드리오
소동이 일어난 것은 23절 말씀에 의하면 “이 도로 말미암아”(about the Way)일어난 것입니다. “이 도”는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도, 진리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으로 인해 에베소에 큰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소동의 중심 인물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으로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은세공업자(silversmith)였는데, 다른 장인들과 함께 결정한 조합의 지도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직공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을 선동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전한 메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풍족한 생활은 이 생업에 달려 있습니다. (아데미 신전이 고대 세계의 일곱 기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방팔방에서 그것을 보러 왔습니다. 방문객들이 은감실과 은신상을 사 갔기 때문에 그것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2)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권유하여(전도하여)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3) 그래서 우리의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었습니다. 4)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숭배하는) 아데미의 위엄(divine majesty)도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아데미 신전은 높이 19m, 간격 1.2m 남짓의 27개 대리석 기둥이 있는 길이 130m, 너비 67m의 거대한 신전이었습니다. 신전 내부에는 하늘로부터 떨어졌다는 젖가슴이 많이 달린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기 위해 방문하는 방문자들에게 은신상을 판매하여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었던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울이 그들의 생업을 망하게 하였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의 호소가 교묘한 것이 실리를 얻기 위해 거짓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 관심사는 재정적인 수입이 감소한 것인데, 그것만을 내세우지 않고 거짓 명분, 즉 바울의 전도로 인해 온 아시아와 천하의 사람들이 숭배하는 아데미의 위엄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씀 드리자면 바울 때문에 사업이 망하게 되었으니 그를 내쫓자라고 말하지 않고, 바울의 전도로 인해 우리의 직업도 천하게 되고 우리가 섬기는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아데미의 신성함에 손상을 입게 되었으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선동합니다. 데메드리오의 연설은 에베소에 거주하는 무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교묘한 연설이었습니다.

대중 연설을 잘 하는 정치인들이나 선동가들은 데메드리오처럼 실리를 얻기 위해 명분을 내세웁니다. (일본 가미가제 특공대, 신처럼 여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순교라고 믿음)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속이는 자들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합니다. 사람을 속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려는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의 왜곡되게 해석하여 건전한 믿음에서 떠나도록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과 사이비 종파들의 거짓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특별히 비성경적 종말론을 퍼뜨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불안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 사람의 가르침에 빠지게 하는 집단에 빠지지 않토록 분별의 영을 가져야 합니다.

• 소동의 절정 (28-34) 분노한 무리들
데메드리오의 말을 들은 에베소의 수 많은 사람들은 분노가 가득한 군중으로 변합니다. 그들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며 온 시내가 요란하게 되고 바울의 일행 중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갑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당시 연극장은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시설물이었다고 합니다. 연극장은 에베소의 동맥 구실을 하는 아카디안 대로(Arcadian Way)의 동쪽에 있던 커다란 노천 극장이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울의 손을 통해 행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들를 보고 두려워하며, 마술을 하던 값비싼 책들을 사람들 앞에서 불태울 정도로 회심의 증거를 보여 주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분노에 가득한 무리(폭도)로 변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군중의 심리가 쉽게 돌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종려 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며칠 뒤 빌라도의 관저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외친 무리로 변하였습니다.

32절에 보면 연극장을 가득 메운 무리들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견의 일치도 없고, 심지어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도 알지도 못한 채 모여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군중 심리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장점 중 하나가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이 다 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수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이 택하신 선지자/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사에 하나님께 물어야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합니다. 사람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여론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분별의 영을 가지고 시대를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연극장에 들어 갈려고 할 때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아시아의 관리 중-이 들어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아시아의 관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이며 가장 부요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로마 황제의 신전이 있는 각 성을 위하여 해마다 아시아에서 선임되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권세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로마 황제와 로마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여 로마에 유익을 도모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의 후원자 중에 당시 사회 지도층에 있는 유력한 사람들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만약 바울이 연극장에 들어갔다면 분노한 무리들에 의해 큰 해를 입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예비해 주십니다.

• 소동의 진정 (35-41) 서기장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내세워 에베소 군중들에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변명할려고 했지만 그들의 계획은 군중들의 함성에 묻히고 맙니다. 알렉산더는 구리 세공업자로서 그 역시 데메드리오와 마찬가지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딤후 4:14-15에서 알렉산더가 자신에게 해를 많이 입혔다,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유대인들을 대변해서 유대교는 바울이 전하는 종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바울을 공격하는 말을 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연극장에서 발생한 소동을 진정하기 위해 일어난 사람은 익명의 에베소 ‘서기장’(city clerk)이었습니다. 서기장은 제일 중요한 지방 공무원이자, 회의의 행정 실무자로서 에베소와 로마 당국의 중재자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서기장은 무리를 진정시킨 후 말하기를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운 우상의 신전지기(guardian of the temple)임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자부심을 부추깁니다. ‘신전지기’(헬, 네오코로스)라는 명칭은 ‘신전과 특별한 신을 섬기는 의식을 담당한 수호자’라는 명예로운 명칭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치하에 있던 도시들은 저마다 로마 황제에게 신전을 봉헌하고 그 대가로 ‘신전지기’라는 호칭을 얻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서기장은 무리들이 붙잡아온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에 대하여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차분히 권면합니다. 4가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합니다.
1) 이 사람들은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아데미)을 비방하지도 않았는데 당신들이 붙잡아 왔다고 말합니다.

2) 만약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고발을 할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라고 합니다. 이 적법한 절차란 총독의 주재하에 실시되는 정규적인 순회 재판 일에 소송을 심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매달 3회씩 개최되는 에베소 시민 민회에 그문제를 제기하라고 권고합니다.

4) 그러면서 서기장은 결론적으로 그의 제안에 따르지 않는다면 이 소요 사건 때문에 로마 당국으로부터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또한 아무 명분도 없는 이 불법 집회 때문에 로마의 호감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연극장에 모임 군중들을 흩어지게 합니다.

행 18장에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발하였을 때,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바울의 보호자 역할을 합니다. 바울의 행동이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라면 내가 판단하겠지만 유대인들의 언어와 명칭과 법에 관한 것이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니 너희 스스로 처리하라고 하며 모든 사람들을 법정에서 쫓아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말씀으로 환상으로 위로해 주시고, 곳곳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비하셔서 바울을 돕게 하십니다. 바울이 회심 직후 다메섹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하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일려고 공모한다는 계교가 알려지자 다메섹에 있던 바울의 제자들이 밤에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려 탈출하게 합니다. 2차 전도 여행 중 베뢰아에서 복음 전하고 있을 때 데살로니가로 부터 추격해 온 유대인들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형제들이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아덴으로 이동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전도 사역이 중단되지 않도록 믿음의 제자들과 형제들을 사용하기도 하시고, 로마 총독이나 에베소 서기장과 같은 이방인 관리들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보호하시고 지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 28장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가로챈 이후 형의 보복을 피해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먼길을 떠나게 됩니다. 홀로 외롭고 위험한 광야길을 걸어가다가 벧엘에 이르러 밤에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 꿈은 예수님게서 한 제자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고 하실 때 언급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약속의 증거입니다.

꿈과 함께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4-15)

첫번째 약속-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야곱이 잘나서, 자격 조건이 있어서 그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야곱의 생애 가운데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약속-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은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 연약한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를 지키고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사명)을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이었겠습니까?

야곱의 일생 가운데 지팡이가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 하나님께서 그가 사명을 이루기까지 동행해 주신것처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을 지키고 보호해주십니다.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예비한 손길을 만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복음으로 인해 소동이 일어났고, 전도자들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대적하는 무리들이 바울을 고발하고 백성을 선동하고 동역자들을 붙들고 갔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보고 계시며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까지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하다가,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을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지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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