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사명과 성령과 말씀에 매인 삶 (사도행전 20:22-24, 32)

Posted on 4월 18,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4-18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사명과 성령과 말씀에 매인 삶 (사도행전 20:22-24, 32)

사명과 성령과 말씀에 매인 삶
• 본문: 행 20:22-24, 32
4/18/2021 주일 낮 예배

오늘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문에서 읽은 예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기를 지망했습니다. 수속절차를 거의 끝내고 마지막으로 출발을 확인하려고 뉴욕에 갔는데, 거기서 그만 선교사로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합격된 것입니다. 이유는 그의 부인이 아프리카의 기후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체질임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부인과 함께 고향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헌신의 각오를 했는데 이루지 못하니 실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선교사로 가지는 못하지만, 돈을 열심히 벌어서 선교사의 일을 돕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청년의 아버지는 치과 의사였는데 부업으로 교회의 성찬식에 사용하는 포도즙을 만드는 사업을 했습니다. 청년은 자기 아버지의 그 사업을 인계받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돈을 쓰겠다는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사업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결심한 대로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정성껏 헌금하였습니다. 그는 한 영혼이라도 먼 이국에서 주님께 인도되는 것을 기뻐하며 거액의 선교비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이 바로 Welch이었고 그가 만든 포도즙이 그 유명한 Welch 포도즙입니다. 지금도 그의 가족들은 좋은 포도즙을 계속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Welch 라는 청년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는 길이 막혀 선교사로 갈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주 주신 사명(calling)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과 순종을 기쁘게 받으셨고 음료 사업을 통해 벌은 돈으로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사역을 하게 하심으로 그의 사명이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의미있게 보람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사명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꿈을 성취하기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이 가장 가치있는 삶입니다.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는 소명에 대해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것(소명)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진정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참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며, 내가 그것을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는 이념을 찾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내가 그것을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는 하늘의 부르심’이 있습니까? 나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헌신할 가치가 있는 소명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았던, 소명에 충실했던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인물은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데 앞장 섰던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 종교 엘리트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말살하는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기독교를 이 세상에서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찬란한 빛 가운데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 앞에 그는 꼬꾸러뜨려졌고 그의 눈은 멀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6-18)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평생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수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불평하기 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그의 앞에 놓인 수 많은 장애물들이 그의 앞길을 가로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24절 말씀에 그의 인생 사명 선언서와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늘 기억하였습니다. 그의 사명은 주님께 받은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그는 경주자처럼 결승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고,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도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그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스프린터처럼 뒤의 것은 잊어 버리고(자신의 옛 모습)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소명)을 늘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깨닫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경주자처럼 목표점을 향하여 전력질주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을 발견한 사람은 고난과 핍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 너머 있는 기쁨을 위하여 고난을 인내함으로 극복합니다.

모세의 일생도 바울의 일생과 비슷합니다. 그는 40세가 될 때까지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로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지식과 학문, 교양과 무예를 익힌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핏속에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그는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동족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고통받고 있음을 잘 알았기에, 40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히브리 사람 중 하나가 애굽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죽였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히브리 백성들을 구원할려고 시도하였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고, 그는 살인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결국 멀리 미디안 광야로 도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평범한 목자로 살았습니다. 은둔의 40년의 시간이 마치고 그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불이 붙은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나이 많은 노인인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압제에서 고통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이끄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주저하였으나 그는 마침내 순종함으로 바로 앞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 40년의 여정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어려움이 그의 앞을 가로 막았지만 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 평지 느보 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그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집의 충성된 사환처럼 주인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사명과 성령과 말씀에 매인 삶”이라고 붙여 보았는데요,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붙인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에 매인 삶, 말씀에 붙잡힌 삶입니다.

먼저 성령에 매인 삶입니다.

22절.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 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라기 보다는 ‘성령에 매인’ 즉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 지 그는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성령께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과 환난에 대해 미리 알려 주셨음을 짐작케 하는 구절이 23절에 이어집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박과 환난임을 그는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령에 매인’ 주님의 종이었기에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전도자 사도 바울의 생애는 성령의 사로잡힌 삶이었습니다. 그의 회심부터 시작하여 전도 여정의 고비 고비마다 성령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행전은 성령 행전이라 할 만큼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시작부터 베드로와 빌립과 스데반, 사도 바울의 사역의 핵심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말씀합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이 구절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Be filled with the Spirit)은 원어로 보면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 성령에 의해 다스림을 받으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현재 시제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은 우리가 구원 받은 것처럼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합니다. 세상의 욕심을 따라 지내던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날마다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죄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전 것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존재이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나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늘 고백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충만을 술취함과 대비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배력과 영향력 때문입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는냐가 중요합니다. 술취하는 사람은 술의 지배를 받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길을 걸을 때 갈 지 자로 걷습니다. 불필요한 말을 계속하고 했던 말을 반복합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거리에 쓰러져 잠을 자기도 합니다. 술이 그의 사지를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술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술 중독이 되어 가족과 이웃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술로 인해 음주 사고나 폭행, 살인, 가정 파탄과 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기적인 욕심과 분노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변화되어 온유하고 희생적이고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평소에 부끄러움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이웃들에게 담대히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로 인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었고, 지금도 전파되고 있고, 죄악이 가득한 사회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자신의 의지를 죽이고 성령에 매여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다스리심 받는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고린도에서 전도하던 바울에게 마게도냐로부터 실라와 디모데가 내려오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행 18: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붙잡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쉬네이케토’인데, ‘결합하다’ ‘열중하다’ ‘강권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합류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기 이전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할 때 함께 있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더러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4)라고 합니다. 정말 바울은 복음에 미친 사람처럼 담대하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 5:13)
사도 바울이 미친 사람 취급 받기까지 복음 전파에 매진한 것은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고,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한 복음은 모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24절에서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까지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사모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구하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때로는 초대 교회 때처럼 이적과 기적의 방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지금도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 마음 속에 온갖 더러운 것들을 잘라내며 우리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감찰하고 판단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로 세 가지에 매인 삶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사명에 매인 삶, 성령에 매인 삶, 말씀에 매인 삶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가치있는 삶, 목적있는 삶을 살아 갑니다. 고 옥한음 목사님은 그의 책 제목에서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은 환난과 핍박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며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성령에 매여, 말씀에 붙잡혀,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일꾼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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