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복음을 거절하는 이들 (사도행전 26:24-32)

Posted on 7월 11,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7-11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복음을 거절하는 이들 (사도행전 26:24-32)

• 본문: 행 26:24-32
7/11/2021 주일 낮 예배

바울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모두 5번에 걸쳐서 유대인들과 로마 총독, 헤롯 아그립바 앞에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형식은 죄수(피고인)의 신분으로 심문을 받으면서 스스로 변론하는 형식입니다.

첫번째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군중 앞에서, 두번째는 유대 입법,사법 통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세번째는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네번째는 신임 로마 총독 베스도 앞에서, 마지막으로는 아그립바 왕(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들 앞에서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언할 때,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자신의 삶이 극적으로 변화되었는지 상세하게 간증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바울이 로마로 떠나기 이전 가이사랴에서 마지막으로 로마 총독 베스도와 분봉왕 아그립바 왕에서 복음을 전한 이후 그들의 반응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복음에 대한 거절’이었습니다. 탁월한 복음 전도자인 사도 바울의 변증과 설득에도 그들의 마음은 닫혀 있었고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의 마음문을 닫게 하였는지 살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벨릭스: 탐욕의 노예
총독 벨릭스에 대해서 2주전에 짧게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노예였는데 형의 도움으로 로마 총독의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성격이 포악해서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를 ‘노예 근성과 폭군의 힘’을 갖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유대 지역에 일어난 소요를 잔인하게 진압한 책임을 물어 로마 황제에 의해 로마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리고 벨릭스는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인 드루실라와 결혼하였는데, 드루실라는 그의 세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유대 분봉왕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을 한 것입니다.

행 24장에 보면, 바울이 벨릭스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증거하지만, 재판을 연기하고 천부장 루시아가 오기까지 바울을 감옥에 구류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수 일 후에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에 대해 듣게 됩니다.

바울이 부부에게 전한 메세지는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과거의 부도덕하고 사악한 죄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의롭게 되어 장차 올 심판을 면하라는 메세지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복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벨릭스의 반응은 바울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24:25)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메세지를 듣고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지만 복음 앞에 겸손히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만 되었으니(That’s enough for now!) 가라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너를 부르겠다는 말입니다.

이말은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거절입니다. 복음의 내용을 듣고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주님으로 영접하기로 결단하여야 하는데 결정을 미루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벨릭스는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는 나누었습니다.’(24:26)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메세지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나중에 틈이 나면 부를 것이라고 해놓고는, 바울을 자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에게서 돈을 받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태어나면서 부터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았기에 바울 가문이 부자라고 생각하였을 수 있고, 아니면 바울이 이방 교회들로 부터 거둔 구제 헌금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상당한 뇌물을 받고 그를 풀어 줄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해 듣고도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그의 마음속에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 물질에 대한 욕심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예 출신으로 고위 관직에 오른 그였기에 어쩌면 그는 물질과 권력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 상태는 영적인 노예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거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벨릭스처럼 탐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그들의 삶의 목표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보면, 열매맺지 못하는 3종류의 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말씀(복음)의 씨앗이 뿌려지지만, 길가 밭, 돌 밭, 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맺지 못합니다. 이 중에 가시떨기 밭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말씀(복음)은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 자’ (마 13:22)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은 복음을 막는 장애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왜 복음을 듣고도 마음문을 열지 못했습니까? 그의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육체의 정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재물의 유혹’ ‘세상의 염려’가 있지 않은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없애어 주셔서 말씀을 받을 때에 아멘!으로 받고,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 결실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 베스도: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
벨릭스에 이어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으로 임명된 베스도는 전임자인 벨릭스에 비해서 훨씬 지혜롭고 정직한 관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임한지 2년만에 재직중에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베스도가 어떤 사람인지 행 25장부터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스도가 신임 총독으로 부임하였을 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하여 가이사랴 감옥에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지나가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자신도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갈 예정이니 바울에게 옮지 않은 일이 있으면 유력한 자들이 함께 내려가서 바울을 고발하라고 말합니다.

로마 관리로서 그는 로마법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기를 원했던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심리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인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로마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였을 때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결정을 내립니다.

그로부터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신임 총독 베스도를 문안하러 가이사랴를 방문하였을 때 바울 사건에 관해 아그립바 왕에게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왕가의 자손으로 유대인의 관습과 법률을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의 판단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대해서 말할 때에 유대인들의 고발의 부당함과 그의 무죄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25:24-25)) 그리고 그가 황제에게 상소하였기에 그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는데, 문제는 황제에게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어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를 찾기 위하여 심리를 진행한다고 말합니다. 죄목도 밝히지 않고 죄수를 보내는 일이 무리한 일인 줄 그는 판단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러한 말로 미루어 보건대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발건에 대해 공정한 재판관의 자세로 로마법의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관습을 잘 알지 못하는 초임 관리로서 경험이 많은 아그립바 왕의 도움을 얻어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재판을 할려고 애쓰고 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정치인인지라 그가 통치하는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5:9 에 보면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임 총독 벨릭스도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24:27)둔 것처럼, 베스도도 유대인의 마음을 얻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26장 1절에서 23절에 걸쳐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변론하고 자신의 회심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상세히 설명하자 베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26:24) 여기서 ‘미쳤도다’라는 단어 헬. ‘마이네’는 ‘미치다’ ‘헛소리를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이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당시 대학자였던 가마리엘 아래에서 고등학문을 공부한 학자임을 알게 된 베스도는 그의 ‘많은 학문’(great learning)이 그를 미치게 하였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words of sober truth)을 하나이다”(26:25) 원어로 말하면 ‘진리와 맑은 정신으로 말하는 사실의 말들’을 하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베스도 역시 바울의 복음 전도의 메세지를 듣고도 마음문을 닫고 바울을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베스도의 마음문을 닫게 한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지성과 합리성입니다.

그는 로마 관리로서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이사랴로 부임하기 전에 여러 곳에서 지방 관리로서 통치 경험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합리성과 객관성, 지성과 경험을 갖춘 훌륭한 로마 관리였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복음을 들었을 때 마음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메세지를 진지하게, 겸손하게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신흥 사이비 종교를 추종하는 무리의 리더가 내뱉는 ‘헛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지성과 합리성이 복음의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닐 때에도 이와 같은 일들을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그리스 철학에 심취한 아덴 사람들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심이 많은 그들은 각양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며 숭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관심을 가지고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바울을 조롱하며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당시 지성인중의 지성인이요, 교양인중의 교양인이었던 아테네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듣기 원했고, 바울과 더불어 논쟁하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 방문한 아테네에서는 전도의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게 기록한 고린도 전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들과 논쟁하는데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논쟁과 변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음을 그는 깨닫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18, 21)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십자가의 도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자기 지혜’ ‘세상의 지혜’로 무장한 지성인이었기 때문에, 더 높은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메세지를 어리석은 이야기, 허황된 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성의 한계를 알고,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마음문을 여는 사람입니다. ‘더 높은 지혜’와 ‘측량할 수 없는 지식’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발견한 지식은 우주 만물에 대한 알지 못하는 지식에 비하면 얼마나 미천한 것입니까? 태양계에 속한 몇개의 행성들중에 인간이 탐구한 행성이 몇개나 됩니까? 최근에 화성에 인류 최초로 탐사 로봇을 착륙시키고 사진을 찍고 화성의 암석들을 캐내어 조금 가져 왔다고 하여 온 세상이 환호하였지만, 이 우주에 존재하는 셀수도 없는 별들 중에 인간이 탐사하고 있는 별은 고작 몇개에 불과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였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훨씬 더 광대함을 깨달으며 우리는 겸손해져야 합니다.

이곳에 모여 예배 드리는 분들 중에,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여 성경의 진리를 믿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한 분이라고 계신다면, 오늘 이 시간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요 나의 주님으로 모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아그립바: 교만한 정치인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그는 주후 44년에 그의 아버지(헤롯 아그립바 1세)가 죽었을 때 17살이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여 로마 총독들이 그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러나 18년 뒤에는 점차 영토를 확장하여 갈릴수 호수 북쪽과 북서쪽 영토, 여러 갈릴리 도시와 베레아의 몇몇 도시까지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성전 통치권, 헌금 관리권, 대제사장 임명권등을 가진 권력가였습니다. 그는 로마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모든 관습과 규례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26:3))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자기 누이인 버니게와 살고 있을 정도로 부도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고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with great pomp)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25:23)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은 변명할 기회를 얻어 자신이 유대인들로 부터 고발당한 것이 부당한 일임을 변론합니다.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 즉 구약 성경에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때문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강한 빛으로 자신을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전도자의 사명을 전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전도 설교는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그립바는 다음과 같이 반응했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짧은 시간에)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6:28)
총독 베스도의 반응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네가 짧은 시간에 전하는 말을 듣고 내가 설득당하여 그리스도인 될 줄 아느냐? 나는 네가 무슨 말 하던지 설득 당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아그립바의 마음속에는 교만이 가득 차 있었기에 복음이 자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권력을 사랑하고 권세 행사하기를 즐기는 자였기에 복음 앞에 그의 마음은 돌처럼 딱딱한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기독교, 아니 종교를 믿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광신도들이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도 읽어 보았고 교회도 다녀보아서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오해 때문에 믿음을 갖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회에 가면 헌금을 강요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다, 교회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되어 간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교회는 맨날 싸우기만 한다.)

교회의 본질은 놓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연약한 모습, 교회의 어두운 모습들로 인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반응들입니다.

아그립바도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고 조롱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아그립바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나의 지혜로 설득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꺾어 주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초청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복음을 거부하는 세 명의 인물을 통해서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세가지 장애물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벨릭스 총독에게는 탐욕이, 베스도 총독에게는 지성과 합리성이, 마지막으로 아그립바 왕에게는 교만이 복음을 막는 장애물이었습니다.

*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탐욕과, 하나님 보다 높아진 지성과 합리성, 그리고 교만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것들이 믿음의 길을 걷는데 방해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또한 내가 기도하고 있는 전도 대상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러한 장애물들이 사라지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능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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