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 (사도행전 25:1-27)

Posted on 6월 27,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6-27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 (사도행전 25:1-27)

* 본문: 행 25:1-27        6/27/202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고 잘 아는 성경 구절 중에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어떤 성경 사본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 기쁘고 즐거운 일들 뿐만 아니라, 슬프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온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면, 이 말씀이 진리이구나라고 깨닫게 되고 고난을 통해서 나를 연단하시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지만, 막상 내가 현재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 때는 감사와 기쁨 보다는 한숨과 원망,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 모든 것이 순탄할 때에 믿음 생활 잘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군인들이 평상시에 훈련을 열심히 해야 전쟁때에 실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믿음의 성도들은 평안의 시기에 기도와 말씀안에서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해야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고난과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을 찾아 오신 부활의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변화시켜 전도자 바울로 만드셨습니다. 그에게 주신 새로운 인생의 사명은 “내 이름(예수 그리스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는” (행 9:15)것이었습니다. “네가 그를(예수 그리스도)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되는” (행 22:15) 것이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전한 말)

그런데 복음 전도자 바울의 미래는 평탄하고 화려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미리 알려 주신대로 바울이 걸어가야 할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 9:16)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에 로마 선교의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후에 로마로 갈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피력하였습니다. (행 19:21) 그리고 고린도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 1:10 에서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인해 로마 수비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밤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하)

로마 선교의 비전은 그의 심장을 뛰게 하였을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있고,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지만 바울에게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로마로 인도하실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울은 로마 총독 벨릭스에 의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간의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결코 짧지 않는 2년의 시간은 바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바울을 안전하게 로마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울을 죽이기전에는 먹고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게 된다면 그들은 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바울을 살해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을 고려해 볼때 바울에게는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부(헤롯궁) 감옥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소요가 잠잠해 질 때 바울은 군사들의 호휘를 받으며 로마행 배를 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난의 시간과 환난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의 가이사랴 2년간의 감옥 생활처럼, 요셉도 억울하게 2년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갇힌 요셉은 함께 옥에 갇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정확히 해석했습니다. 요셉이 예언한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삼일만에 전직을 회복하였지만, 풀려나면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에게 전하여서 옥에서 풀려나게 해 달라는 요셉의 부탁을 잊어버립니다. 2년이 지난 후에 바로의 꿈을 해석할 사람을 찾자, 그 때 비로소 2년전 감옥에서 만난 히브리 청년, 요셉이 생각나서 요셉을 바로에게 꿈을 해석할 사람으로 추천합니다.

2년간의 시간은 청년 요셉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2년간의 시간은 요셉에게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군대에서 흔히 하는 말,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시편 기자의 기록처럼 요셉은 감옥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말씀으로 연단받고 있었습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9)

감옥에서 말씀으로 연단받은 요셉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큰 인물(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고난이라는 풀무불(용광로)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 시간들을 견디어 내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고난의 용광로를 거쳐야만 우리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제거됩니다. 우리안에 자리잡고 있는 미움, 시기, 질투, 교만, 조급한 마음, 염려, 불신앙의 지꺼기들이 말씀의 불로, 성령의 불로 태워집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신임 총독 베스도 앞에서 심문 받는 내용과 취임 문안 인사 차 방문한 아그립바와 버니게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베스도 총독이 죄수 바울의 사건을 소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 (25:1-12)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벨릭스는 가이사랴에서 유대인과 시리아인들 간에 발생한 분쟁을 잔인하게 진압한 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로마로 소환되었습니다. 벨릭스를 이어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으로 임명된 사람이 보르기오 베스도였습니다. 베스도는 2년 뒤 재직 중에 죽게 되지만, 당시의 여러 기록을 보면 전임자 벨릭스와 후임자 알비누스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공정한 지도자였습니다.

부임한 지 삼일 후에 신임 총독 베스도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지역 통치에 협조를 구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울에 대한 고소건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신임 총독에게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에 대해 유죄 판결을 끌어내고자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베스도에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바울을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공정한 베스도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자기가 멀지 않아 가아사랴로 떠날 예정인데, 유력한 몇 사람이 함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바울을 정식으로 고발하라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의 소송 절차는 세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로, 기소자가 고소를 공식화하고 인정해야 했습니다. 둘째로, ‘이해 당사자들에 의한 적절한 공식적 고소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통치권을 갖고 있는 사람 자신’이 그것을 들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총독이 소송을 심리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8-10일이 지난 후 신임 총독 베스도 심리로 정식으로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재판장 자리에는 베스도가 앉아 있고, 고소인(검사) 자리에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고석 자리에는 변호사 없이 바울 혼자 앉아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하지만 입증할 만한 증거를 대지 못하자, 바울이 스스로 변론을 시작합니다. 자신은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종교적인 이슈) 가이사에게나(정치적인 이슈) 아무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바울의 주장이 정당함을 알면서도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에게 되묻기를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겠느냐”라고 합니다.
베스도는 전임자 벨릭스에 비해서 비교적 지혜롭고 공정한 사람이기는 했느나, 그 역시 로마 정부의 관료요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정의와 진리를 따르기 보다 ‘유대인의 마음을 얻는데’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베스도나 벨릭스, 그리고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을 선고했던 빌라도 모두, 진리와 공의를 버리고 사람들의 호소와 여론을 따랐으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관심을 기울인 정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용기있는 지도자, 용기 있는 시민이 된다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명예와 권력, 부와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진리와 공의를 따라야함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의식하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세상속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부름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의 메세지를 던져 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핍박받더라도 진리와 공의를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진리와 세상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 나는 당당히 성경의 진리를 따르겠다는 다짐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 머뭇 거리거나, 두 다리를 걸치고 나에게 유익한 것만을 취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이 뭐라고 하던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가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언제나 복음 앞에서, 진리 앞에서 단호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바울은 베스도의 제안을 거절하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종교 법정에서 심문을 받느니 차라리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상소)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 시민은 지방 속주 법정에 가지 않고 상급 법원인 로마 법정에 호소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구체적으로 ‘provocatio’라는 것인데, 이 제도는 ‘로마 시민을 재판도 하지 않고 즉결 처벌이나 강제 집행이나 고문을 하는 것으로부터, 비공개적인 혹은 공개적인 체포로부터, 그리고 이탈리아 바깥에서 치안 판사가 실제적인 재판을 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인 바울은 자신이 가진 권리를 이용하여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겠다고 말합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말을 듣고 배석자들과 상의한 후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유부단하고 사악한 벨릭스가 통치하던 2년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바울에게 하나님의 때가 되자, 비교적 합리적이고 공정한 새로운 총독 베스도의 손을 빌어 로마 군인들의 호위 아래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일하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구약 에스더서에는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민족 멸절’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드드개와 에스더, 이방왕과 신하들을 사용하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열방을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를 인도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앞에 선 바울 (25:13-27)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헤롯 아그립바 2세)과 버니게가 신임 로마 총독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시사랴에 옵니다.

헤롯 아그립바 2세는 행 12장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증손자였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처음에는 작은 영토을 다스렸으나, 나중에 갈릴리 호수 북쪽과 북서쪽 여러 도시들까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글라우디오 황제가 그에게 성전을 돌보는 일과 대제사장을 임명하는 일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한 버니게는 그의 누이였는데, 그녀는 불과 13세에 자기 삼촌인 칼키스 헤롯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칼키스가 죽자 자기 동생 헤롯 아그립바 2세와 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이 인사하러 왔을 때, 그들이 머물고 있는 동안 베스도는 벨릭스로 부터 물려받은 바울의 소송 사건을 끄집어 냅니다. 유대 지역과 유대인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헤롯 아그립바 왕으로 부터 판결에 도움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 사건에 대해 세 가지로 정리하여 말합니다.
1) 바울은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소하여 넘긴 사람인데, 그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재판)하기를 청하였으나, 로마 시민인 바울을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피고인의 변명- 내어주는 것이 로마법에 합당치 않아 자신이 재판을 심리하게 되었다.
2) 원고들의 주장을 들어보니 피고의 범죄함을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고,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았 있다고 (부활 증거) 바울이 주장하는 것을 문제 삼아 고발함.
3)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 받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가이사에게 호소하겠다고 함.

베스도의 말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 중 한가지는 바울이 유대인들로 부터 고발당한 것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로마에 반역을 꾀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 즉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당시 중범죄자들의 사형틀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으나 구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삼일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한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제자들에게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한 말을 전해듣고,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하고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할까 두려워 경비병들을 고용하여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큰 돌로 입구를 인봉하여 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죽은지 삼 일째 되던 안식일 후 첫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 후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8:11-15에는 경비병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들이 계략을 꾸민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 소식이 가져다 줄 엄청난 충격을 예상한 그들은 장로들과 의논한 후,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말하기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자기들이 잘 때에 시신을 도둑질하여 갔다고 거짓말을 퍼뜨리라고 합니다.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28:15)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군인들이 퍼뜨린 거짓말을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주장은 사실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았다고 말하면 거짓이지만, 산 자를 살았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사람만 5백명이 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초대 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의 영원한 소망이요 믿음의 근거입니다.

바울이 고발당하고 목숨을 걸기까지 전했던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구원자)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성경의 모든 내용들이 진실함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 죽을 육체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셨을 때 약속하신 대로 바울을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로마 총독들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장차 로마에 가서 로마 관료들과 왕실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의 긴 시간을 보낸 이후 베스도 총독에게 심문을 받고,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마침내 로마로 가게 된 바울과 함께 하시고, 그의 삶의 여정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가 처한 모든 처지와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핍박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며,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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