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베뢰아 성도들의 신앙 (사도행전 17:10-15)

Posted on 2월 7,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2-07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베뢰아 성도들의 신앙 (사도행전 17:10-15)

“베뢰아 성도들의 신앙”
행 17:10-15
2/7/2021 주일 낮 예배

지난 주에 우리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 전파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관례대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몇 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하여, 예수가 그리스도(구원자)되심을 증거할 때에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성을 소동하게 하고 야손의 집에 쳐들어가 야손과 형제들을 끌어내어, 그 도시 통치자들인 읍장에게 고발합니다.

빌립보에서도 매맞고 감옥에 갖히는 핍박을 당한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도 대적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박해를 받고 형제들의 도움으로 급히 베뢰아로 피하게 됩니다.

핍박 가운데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데살로니가의 사역은 그 이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위 모든 교회와 믿는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살전 1:7-8)

또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살전 1:9-10) 그리고 그들은 유대에 있는 형제들이 동족 유대인들에게서 고난을 받은것처럼 그들도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지만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살전 2:14)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지였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뢰아에서 오랜 시간 머문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핍박 가운데서 뿌린 눈물과 헌신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듣고 믿게 된 소수의 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 본이되는 아름다운 초대 교회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와 물질과 시간을 드려 섬길 때, 금방 열매가 보이지 않고 큰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뿌려지고 심겨진 복음의 씨앗은 언젠가-하나님의 때에-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루매 거두리라”(갈 6:9)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선을 행하고 헌신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뢰아 선교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가 대학교 다닐 때 학교 내에 ‘베뢰아 선교회’라는 Club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베뢰아 선교회는 ‘귀신론’으로 알려진 김기동 목사(성락 교회)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정통 교단으로부터 사이비/이단으로 판단된 단체입니다. 그래서인지 베뢰아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타 지역에 있는 사람들보다 훌륭한 인격과 본이되는 신앙인의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베뢰아 성도들의 인격과 신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베뢰아 사람들은 고상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핍박을 피해 형제들의 도움으로 남서쪽 80Km에 위치한 작은 도시 베뢰아로 내려온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 비해서 베뢰아 사람들은 더 ‘너그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너그러운’이라는 단어는 개역 성경에서는 ‘신사적이어서’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유게네스트로이’인데, 의미는 ‘고결하다, 기품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NIV에는 ‘noble character’(고상한 인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또 ‘편견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대도시 사람이어서 그런지 성격이 급하고 사나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시기하여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바울 일행을 붙잡아 쫓아 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베뢰아 사람들은 성격이 온순하고 젊잖은 성품을 가졌던것 같습니다. ‘신사적’이라는 말은 교양이 있고, 약자에 대해 배려하고, 말과 행동이 올바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과거의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의 옷을 입게 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며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믿고 나서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 육신에 속한 자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고, 미움과 다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되어서 사랑과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의 인격은 예수님 믿기 이전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호소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1,3)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인격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아이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시기와 분쟁, 분열과 다툼입니다. 사람을 자랑하는 것, 교만한 마음, 편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고상한 인격’ ‘성숙한 인품’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존중의 마음, 다른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살피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급히 말하고 판단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며 온유함으로 품는 마음, 편견을 버리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 이러한 고상한 인격을 개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베뢰아 성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11절. “…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여기서 “간절한”이라 번역된 헬라어 ‘프로디미아스’는 직역하면 ‘준비되어 있다’ ‘선입견없이 경청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열려 있었고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 13장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좋은 땅’(good soil) ‘옥토’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열매맺는 땅은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마음에 새기고 지키어 열매맺는 ‘옥토’입니다. 동일한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길가 밭’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덮힌 땅’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길가 밭은 사단이 와서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가고, 돌밭은 마음이 굳어 있어 씨앗이 마음 속으로 심겨들어가지 못하고, 가시덤불 밭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씨앗이 심겨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우리의 자세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진정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말’로 받는 성도에게는 강단에서 전해지는 메세지가 마음속에 아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영적 성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할 줄 믿습니다.
“…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하나님 말씀을 듣는 성도 중에서 발견하는 좋지 못한 3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비판적인 자세: 사람의 말로 받기 때문에 설교자의 어투, 제스처, 예화, 본문 해석, 설교 시간의 길고 짧음.. 이 모든 것들이 비판거리가 됩니다.
비교하는 자세: 다른 설교자의 설교와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장점을 보기보다 단점을 찾아냅니다.
비몽사몽^^: 마음문을 닫고 설교를 듣습니다. 형식적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베뢰아 성도들 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마음밭에 심기어 집니다.

그러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예배를 위해서, 강단에서 선포되어 지는 말씀을 위해서, 설교자를 위해서 주중에, 예배 시작전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 마음 속에 간절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설교자의 입술을 다스려 주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질때 성령께서 친히 그 뜻을 풀어주셔서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루디아의 마음을 주께서 열어 주셔서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 것(행 16:14)처럼 주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말씀을 듣게 되면 마음문이 닫히게 되어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할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나사렛의 목수 요셉의 아들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전하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야)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말씀, 나에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으로 기대하고 들을 때 깨달음이 있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적용하여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베뢰아 성도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1절. “…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상고하다’(examine)는 헬라어로 ‘아나크리노’인데요 ‘자세히 조사하다’ ‘찾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사법적인 조사에 사용되는 법률 용어입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심문할 때, 의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벨릭스가 바울을 심문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진실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검증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의 깊게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였다는 뜻입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듣고 그들은 집에 가서 구약 성경을 펼쳐 놓고 사도 바울이 전한 메세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그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을 것입니다.

진실로 바울이 인용한 구약의 성경 구절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구절인지를 깊이 상고하였을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진지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들은 성경으로서 진리를 찾기에 애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1편에 기록된 것처럼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묵상은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머리에 새겨진 말씀을 꺼내어 그 의미를 생각하고 그 말씀을 기뻐하는 행동입니다.

베뢰아 성도들처럼 우리도 진리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그러한지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깊이있게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수동적으로 말씀을 듣는데에 머물지 말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성경을 효과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을까요? 간단하면서도 적용 가능한 제안을 드립니다.

주일 낮 예배 뿐 아니라 성경을 주제별로, 권별로 배우고 묵상하는 주일 오후 예배나 수요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예배때 마다 깨닫는 말씀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은 표시해 두었다가 다시 읽고 공부하거나 목회자에게 질문하여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해설 성경(단권 주석, Study Bible)을 구입하여 성서학자들의 해설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목회자에게 자료를 추천받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베뢰한 사람들의 인격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세는 영혼 구원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유대인들 뿐 아니라 헬라인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간절함과 진지함 뿐만 아니라 복음 사역에 헌신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13-1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베뢰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와서 무리를 움직여 그 지역을 소동하게 하자, 14절 “형제들이 곧 바울을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베뢰아 성도들이 바울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아덴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항구로 데리고 갔을 뿐 아니라, 15절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아덴까지 동행합니다.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그 믿음의 형제들은 바울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바울의 ‘명령’을 받고 실라와 디모데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베뢰아로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베뢰아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대해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받았습니다.

먼저 베뢰아 사람들은 ‘고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뢰아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뢰아 성도들은 받은 말씀을 묵상하며 ‘날마다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저와 웨인즈빌 침례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베뢰아 성도들처럼 ‘고상한 인격’을 소유하며, 말씀에 대한 간절함과 진지한 연구 자세를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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