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딤모데전서 6:11-12)

Posted on 1월 3,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1-03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딤모데전서 6:11-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 본문: 딤전 6:11-12
01/03/2021 신년 주일 낮 예배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길 기도합니다.

작년에는 엡 5:8-9 말씀을 가지고 우리 교회의 목표를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고 정해 보았는데요, 2021년 올 해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기초로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지켜 행하기를 원하는 주제 성구를 정하여 보았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함께 따라 해 보시겠습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쓴 목회 서신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디모데는 바울의 요청으로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였는데, 선배 목회자로서 바울은 후배 목회자 디모데에게 당시 에베소에 만연한 영지주의와와 퇴폐적인 유대교, 거짓된 금욕주의등과 같은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하고, 목회자로서 명심해야할 교회 행정에 관한 교훈과 목회자로서의 본분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기를 원합니다.

 

• 악한 것들을 ‘피하라’(Flee from)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먼저 ‘피해야 할 것’들에 대해 권면합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내에는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서 떠나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딤전 1:3-11에 기록된 대로 그들은 신화와 족보 이야기(하나님의 용납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숨겨진 지식을 발견해야 하고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는 가르침, 구원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 구약의 역사나 족보를 토대로 신화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수도)에 몰두하였으며, 변론을 좋아하였고, 구약 율법의 선생이 되고자 하였고, 금욕적인 행위를 강조하였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지도자의 지위를 이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체하였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10절에 걸쳐 믿음의 사람들은 마땅히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6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됩니다.”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그러므로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디모데) (But, a man of God) 이것들을 피하고”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피해야 합니까?

a)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닌 ‘다른 교훈’을 피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사들(이단, 사이비)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늘 주의 해야 합니다. 영원히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하며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하며,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해석할려고 하다가 진리에서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오류를 범치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b) 변론과 언쟁을 버려야 합니다. 거짓교사들은 지적인 교만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화려한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하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특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을 유혹하였습니다. 변론과 언쟁은 투기와 분쟁, 비방과 악한 생각을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로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고 변론으로 영혼들을 주께로 이끌 수 없습니다. 오직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한 관한 교훈”(6:3)을 따라야 하며 “바른 지식” “건전한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c) 마지막으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합니다. 돈이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니요 돈을 벌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물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하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지 물질이 섬김(예배)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기록된대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선을 ‘따르라’(Pursue)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땅히 피해야 할 것들을 언급한 이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추구해야할 덕목 6가지를 소개합니다.
a) 먼저는 “의”(righteousness)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의’을 언급하지만 여기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이고 고결한 행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우리들은 의로운 자에 신분에 합당한 정결한 모습을 추구해야 합니다.

b) 두번째 덕목은 “경건”(godliness)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경건에는 내적인 경건(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랑함)과 외적인 경건(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지키는 삶, 약 1:27)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c) 세번째 덕목은 “믿음”(faith)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과 그를 찿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딤전 6:15) 또한 믿음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실함, 정직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d) 네번째 덕목은 “사랑”(love)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독생자를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시기까지하신 무조건적인 ‘아가페’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입은 우리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고전 13장 ‘사랑장’에서 바울은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생 추구해야할 영원한 덕목입니다.

e) 다섯번째 덕목은 “인내”(perseverance)입니다.
인생의 어떠한 불행과 고난, 역경에도 불구하고 도망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킨 자들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의 인내를 본받은 우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히 12:2)

f) 마지막으로 “온유”(gentleness)입니다.
인내와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인내가 어려운 상황을 참아내는 것이라면 온유는 더 나아가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가져다 주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온유의 원래 의미는 ‘사나운 짐승을 다스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분노하는 옛 사람의 모습, 시기와 질투하는 육신의 습관을 성령으로 다스리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의 덕목을 겸비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Fight)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악을 버리고 선을 좇으라고 권면한 이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Fight the good fight of faith)라고 촉구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의 책 “살아있는 교회”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바울의 권면을 세 가지로 규정합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좇으라’ 라는 권면은 “윤리적 호소”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라는 권면은 “교리적 호소”이고, 마지막으로 ‘영생을 취하라’ 라는 권면은 “경험적 호소”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진리를 위해 싸우라 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치열한 영적 전투에 부름받은 군사들입니다. 우리의 싸움(전투)은 “혈과 육(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단 마귀는 믿는 자들을 삼키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사단 마귀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려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며, 믿음을 굳게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벧전 5:8-9)

또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엡 6:10-17) 방어용 무기들(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로 자신을 무장하고 유일한 공격용 무기(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를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 믿는 자들을 시험에 빠뜨리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진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허탄한 것들을 좇게 하는 악한 영들과 맞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언 6:10) 이 말씀은 우리의 ‘영적 게으름’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영적 나태함과 싸워야하며, 영적 무기력증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새해에도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불안감과 두려움이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활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적 침체”입니다. 환경은 어렵지만 우리의 영혼이 잠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며, 예배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3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날이 가까이 온 줄을 깨닫고 차디찬 로마 감옥에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유언과도 같은 편지인 디모데후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2021년 한 해, 저와 웨인즈빌 침례 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사도 바울처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킴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영생을 ‘취하라’(Take hold of)

존 스토트 목사님의 글에 의하면 마지막 사도 바울의 권면은 “경험적 호소”입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경험되어져야 할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을 취하라” “영생을 붙들라”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였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고(요 1:12),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속에 모시고 있으므로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요일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의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여기에 서술된 ‘영생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입성할 때 받는 미래적인 영광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혹자는 이것을 현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생은 무엇보다도 미래적이거나 현재적으로 규정되어지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생은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죽음 이후의 영원 불멸의 삶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인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증거하신 영생의 개념이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삶 그것이 영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한 우리에게는 영생이 선물로 주어졌고, 현재 영생을 누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지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영생을 “취하라” “붙잡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취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에필라부’는 원래 ‘폭력적으로 붙잡다’(로마 군인들이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다, 예루살렘의 폭도들이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다)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꼭 붙잡다’라는 뜻을 가진 ‘에필람바노마이’의 명령형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너가 이미 얻었고 지금 누리고 있는 영생을 놓치지 않도록 굳게 붙잡으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삼아라는 뜻입니다.
영생의 삶을 소유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즐기고 최대한 누리라는 권면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무언가를 소유하되 그것을 충분히 받아들이거나 향유하지 않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말로 우리가 영생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나의 것으로 확실히 인식하고 그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며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목사님은 책에서 한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 ‘루이 델쿠르’(Louis Delcourt)라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휴가 후 귀대시간을 넘기게 되어, 불명예 제대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탈영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자신을 다락방에 가두고 문을 걸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거기에 아들을 21년이나 숨겼습니다. 그러다 1937년 8월 그의 어머니가 죽게 되어 그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백하고 초췌한 몰골로 비틀거리며 가장 가까운 헌병대로 가서 자수했습니다. 헌병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그를 자세히 보면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길래 듣지 못했죠?” 루이는 “듣지 못했다니, 뭘 말씀이죠?”라고 되물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탈영병을 위한 사면법이 통과되었다네”

루이 델쿠르에게는 자유가 있었지만, 그것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에게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를 향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1년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영생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감으로 영생의 풍성함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453장 가사처럼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4가지 영적 권면의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1) 우리는 악한 것들, 거짓된 가르침과 변론과 언쟁,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2) 우리는 선한 것들, 의와 경건/믿음과 사랑/인내와 온유를 추구해야합니다.
3)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합니다.
4) 우리는 영생을 굳게 붙잡으며 누리며 살아야합니다.

2021년 한 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순종함으로 개인과 가정이 복을 누리는 한 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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