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믿음안에서 더 견고해지는 교회 (사도행전 15:30-16:5)

Posted on 12월 13,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12-13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믿음안에서 더 견고해지는 교회 (사도행전 15:30-16:5)

믿음안에서 더 견고해지는 교회
• 본문: 행 15:30-16:5
12/13/2020 주일 낮 예배

우리는 지난 주에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이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최초의 기독교 종교회의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회의’의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출신의 유대 주의자들의 주장, 즉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이 무효화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진리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도록 결정하여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 교회에 대표단으로 파송하여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진리는 고수하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36절부터는 바울을 중심으로 한 2차 전도여행의 일정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도 참조)

2차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 루트와는 달리 수리아 안디옥에서 육로로 서쪽으로 진행하여 갈라디아 남부 지역, 즉 1차 전도여행시 복음을 전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을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 지역을 재방문하여 성도들을 격려하고, 이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 마게도냐 지역과 아가야 지역(지금의 그리스도 반도)까지 복음을 전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거쳐 유대 지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행 1:8 )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복음의 확장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극심한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빌립, 스데반 집사,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헌신된 주의 종들을 통해 중단없이 증거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의 주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사도들과 전도자들에게 담대함을 주시고 열정을 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장애물을 뛰어넘는 믿음을 주십니다.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십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의도적으로 사도행전 중간 중간에 사역의 중간 보고서와 같은 구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도 그러한 중간 진행 보고서 중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중간 보고서 내용의 공통점은 복음 사역이 확장되어가고 있으며, 사역의 결과로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며, 교회가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세워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시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회심한 이방인들이 세운 교회(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들이 왜곡된 교리를 전하는 ‘거짓 형제’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혼란함을 겪었으나,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으로 회복되어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성도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중에 기록된 몇 구절을 통해 우리 교회도 초대 교회처럼 어떻게 하면 믿음안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교회가 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 권면과 위로의 말 (30-33)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파견한 대표 두사람의 이름은 바사바라하는 유다와 실라였습니다.(22) 교회의 중요한 결정 사항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는 두 사람은 예루살렘 교회내에서 영적 지도자로, 선지자로(15:32)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사바(부친의 이름)라 불리우는 유다는 맛디아와 더불어 가롯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도를 뽑기 위해 추천된 두 사람 중 한명인 바사바 요셉과 형제지간이었을것으로 짐작됩니다. (1:23) 그리고 실라는 바울처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고(16:37),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동반자였고, 헬라어에 능통하여 후에 베드로 사도의 대필자로, 동역자로 쓰임받은 인물입니다.(벧전 5:12)

이 두사람은 선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2) 구약 시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택하신 인물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내에도 선지자들이 사역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고전 12:28)

초대 교회 선지자들도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중요한 사역중 하나는 위로와 권면의 사역이었습니다. 고전 14:3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들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기에 혼란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안디옥 교회를 찾아가서 했던 사역은 바로 위로와 권면의 사역이었습니다.

위로와 권면은 교회에 힘을 주고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혼란 가운데 있었던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편지를 “읽고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The people read it and were glad for its encouraging message)(3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의 위로와 격려는 이방인 교회 성도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래전 출간된 책 중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개인과 단체에 활력을 주고 건강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반면 비난과 질책은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듭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현명한 양육 원칙중의 하나도 한 마디 책망하기 전에 여덟 번 칭찬하라고 합니다.

리더십 분야의 대가인 존 맥스웰 목사도 말하기를 “잘못하고 있는 순간을 잡아내면 사람들은 방어적이 되고 변명합니다. 반면에 잘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하면 긍정적인 면이 강화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큰 영적 전투를 치르고 잠시 승리의 기쁨을 누렸으나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신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브엘스바 광야로 도망합니다.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며 음식을 공급하여 주심으로 그를 회복시키십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를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어루만지심으로 탈진한 그의 육체와 영혼을 회복시켜 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열상 19장).

하나님의 영, 성령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인데 이 단어는 ‘파라’(곁에서)와 ‘클레오’(부르다, 간청하다, 훈계하다,격려하다,위로하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성령(파라클레이토스)는 ‘위로자’ ‘변호사’ ‘상담자’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우리 옆에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변호하시고 상담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성령의 위로로 말미암아 평안하게 되었고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행 9:31).

바울과 동역한 바나바의 별명은 ‘위로의 아들’이었습니다. 성품이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는 많은 성도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은사를 가진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회심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적극 추천한 인물이었고, 다소에 칩거 중인 사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동역하는 기회를 줄 정도로 긍휼의 마음, 관대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것처럼 1차 전도여행때 중도하차한 마가 요한을 2차 전도여행에 다시 동참시킬것인가하는 문제로 바울과 심히 다투고 갈라서게 될 정도로 바나바는 한 영혼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사람이었습니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로 말미암아 사울이 바울로 쓰임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비난하고 질책하기 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의 위로로 말미암아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며 더욱 견고한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 주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전파됨 (35, 41)
성령의 위로로 말미암아 초대 교회는 평안함 가운데 성장하게 되었고, 또한 전도자들이 전한 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교회들은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35절 말씀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는 2차 전도여행을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말씀으로 성도들을 세우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41). 바나바와 바울, 바울과 실라의 동역은 ‘말씀의 동역’이었습니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다소에 숨어지내던 사울을 직접 가서 안디옥을 데리고 와서 동역하게 되는데 둘이서 일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무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받은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처음으로 ‘그리스도인’(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의 파트너로서 바울과 바나바는 가는 곳마다 진리의 복음을 전했는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에 가서도 담대히 은혜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두 사도가 오래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행 14:3)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거짓 형제들이 전한 거짓 복음으로 말미암아 진리에서 떠나 흔들리는 교인들을 향해 눈물로 호소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을 재차 강조합니다.(갈 2:16) 그러면서 구약 성경을 인용함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그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말합니다(갈 3:6-7). 성경으로서 거짓 복음을 배격하고 있고 진리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딤후 3:15)하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등이요 빛이 됩니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왜 많은 성도들이 믿음이 약하여 지고 믿음에서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쫓고 심지어 이단에 빠지게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진리의 말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벧전 2:2)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지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모서 선지자의 한탄처럼 이 시대 또한 먹을 양식이 없어서 기갈한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진 ‘영적 기근’의 시대입니다(아모서 8:1). 하나님의 말씀은 인터넷이나 책이나 설교등을 통해 차고 넘치지만,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올바른 지식, 건건한 교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값싼 복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대신 감정을 부추기는 ‘신비주의, 은사주의’가 판을 치고 있고, ‘기복주의’ 설교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혼돈한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가져할 자세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갈급함’입니다. 좋은 예가 앞으로 공부할 행 17장에 기록된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간절한 마음’(great eagerness)으로 받았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하였습니다(행 17:11). 말씀을 들을 때에 진지하게 말씀을 들으십시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러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receive).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십시오(examine, meditate). 마지막으로 그 말씀을 삶 가운데 지키십시오(obey, apply). 이렇게 할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할 줄 믿습니다.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열매 맺을 줄 믿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갈급함 없이 형식적으로 듣기도 합니다. 늘 듣는 말씀이니까 그 말씀이 그 말씀이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우리 교회 ‘김집사가’ ‘이집사가’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 중에는 바울이 아테네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늘 ‘새로운 말’을 듣는데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 17:21) 그들의 관심은 ‘새로운 지식’이지 ‘영원한 진리’가 아닙니다. 세상은 변하고 지식도 변합니다. 어제의 지식은 하루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하-25상)

우리 웨인즈빌 교회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건전한 가르침으로 인해 믿음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말씀의 순종 (16:4-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믿음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될려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16:4-5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 요한 문제로 크게 다투게 됩니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중에 밤빌리아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고, 바나바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데리고 가자고 합니다. 결국 둘은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갈라서게 되어 두 팀이 각각 다른 루트로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바나바와 마가는 배타고 구브로고 가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받는 선지자요 신실한 일꾼인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바울의 고향 다소 포함)을 거쳐 1차 전도여행시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더베와 루스드라 이고니온 지역을 재방문합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무리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아픈 상처가 있는 지역을 다시 방문하게 된것은 참으로 담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위로하시기 위해 루스드라에서 선물을 주시는데 바로 바울의 신실한 제자요 동역자가 될 디모데를 선교팀의 일행으로 붙여주십니다. 고난의 열매라 할 수 있겠지요. 디모데는 이후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바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여 초대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됩니다. 노 사도 바울이 두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죽음을 바라보면서 유언처럼 그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가 바로 사랑하는 아들과도 같았던 디모데에게 쓴 두번째 편지, 디모데후서입니다.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남부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에게 전해 준 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성한 ‘규례’(‘도그마타’, 교의들)였습니다. ‘규례’(도그마타)는 흔히 권력자가 발표한 훈령이나 생활 규범을 의미했으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마련한 기독교인들의 신앙 기준과 삶의 원칙을 말합니다. 이 ‘규례’는 훗날 기독교의 교리(dogma)로 정착됩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와 모세 율법 준행을 주장한 ‘거짓 형제’들의 왜곡된 가르침으로 혼돈 가운데 빠져있었던 이방인 지역의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전해듣고 기쁨으로 지켰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편지를 읽고 전해 듣고도 의심하여 믿지 않았거나, 사도들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 규례들은 효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전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소위 성장하는 교회, 은혜가 넘치는 교회, 전도의 열매가 있는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제자훈련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차고 넘쳐도 순종의 열매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왜 성경공부를 하고 제자훈련을 하고 많은 예배를 드립니까? 지식을 쌓기 위함도 아니고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함도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주일 낮 예배 빠지면(주일 성수!) 하나님께 벌받는 줄 알고 꼬박 꼬박 주일 마다 하나님께 얼굴 도장 찍으러 교회 나오시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우리(예배자)의 마음 상태가 중요한 것이요, 예배의 자리를 떠나서 삶의 자리에 가서 듣고 배운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 초대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울 뿐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웨인즈빌 침례교회가 믿음 안에서 더욱 더 견고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다.

첫째로, 서로 권면과 위로가 넘치는 교회가 될 때 가능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진리의 말씀을 잘 배우고 말씀 안에 거하는 교회가 될 때 견고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때 믿음 안에서 굳건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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