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다 (사도행전 28:1-15)

Posted on 8월 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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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다 (사도행전 28:1-15)

• 본문: 행 28:1-15
8/1/2021 주일 낮 예배

지난 7월 20일에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마존 창업자의 회사인 Blue Origin이 개발한 상업용 발사체가 지구 상공 100마일 우주에 다녀온 일이었습니다. 파일럿 없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발사체에 민간인들만 4명이 탑승하였고, 우주에서 몇 분간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고 캡슐을 타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7월 20일을 상업 우주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잡았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달에 최초로 발을 내딛은 날이 1969년 7월 20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거대한 로켓 새턴 V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3명의 우주인들이 탄 아폴로 11호는 발사한지 4일만에 고요의 바다(Sea of Tranquility)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3명의 우주인들 중에 최초로 달 표면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Neil Armstrong이었습니다. 닐 암스트롱이 귀환 후 방송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한 사람이 내딛은 하나의 작은 발걸음, 인류를 위한 하나의 거대한 도약)

저는 사도 바울의 로마행이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수개월의 거친 항해 끝에 로마에 도착합니다.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하며 소망하였던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 마침내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로마 입성은 너무나 초라한 입성이었습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인채로, 초라하게 로마 땅을 밟습니다. 그를 주목하는 세상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도착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로마 입성은 장차 세상을 뒤흔드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이 위대해서라기 보다 바울이 그토록 전하기 원했던 복음의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복음은 문화와 종교, 언어, 국경의 장벽을 뛰어 넘습니다. 신분을 초월하고 인간의 지식과 경험과 관습을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전염병처럼, 산불처럼 급속하게 전파되어 복음을 믿는 자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실제로 바울의 로마 선교로 시작된 작은 발걸음(small step)이 어떻게 세계 선교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사건이 되었을까요?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로마에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로마로 가기를 원하는 자신의 염원을 담아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기록한 서신서가 로마서입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된 유대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이끌어 가는 탁월한 영적인 지도자는 없었지만 그들은 사도 바울의 편지나 다른 사도들의 서신등을 서로 돌아가면서 읽고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하며 주의 만찬을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여러곳에 퍼졌습니다. 롬 1:8 말씀입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들의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어서 온 세상에 전파되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일행이 탄 배가 시칠리아 섬 수라구사를 거쳐 이태리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레기온에서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을 타고 보디올이라는 항구 도시에 도착하였을 때, 로마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바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백부장의 배려로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일주일간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바울은 로마에 셋집에 거하면서 찾아 오는 로마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였을 것이며 그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온 세상에 계속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셋집에 거주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별히 그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 1:13)

사도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낸 2년 동안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결과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이미 복음이 시위대 안에 들어갔고 로마 황실 사람들 중에도 회심자가 나왔으리라 짐작됩니다.
이후 로마 황제들에 의한 핍박이 있었지만 복음은 로마 제국 전역에 소리 소문없이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면 핍박할 수록 복음은 더 강력하게 전파되었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의 로마 입성 이후 약 250년이 지난 A.D.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에 대한 모든 핍박과 차별을 금지하는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 합법적인 종교로 공인받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A.D. 392년에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포하였습니다. 로마 정부와 황제로 부터 핍박받던 기독교가 로마의 심장부를 점령하고 모든 사회에 영향을 미쳐 로마의 국교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살았던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Voltaire)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100년이 지나면 이 지구상에 성경은 단 한 권도 남아 있지 않고 기독교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런 말을 한 지 25년이 지난 후, 그는 죽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의 집은 성경을 인쇄하는 인쇄소와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 같았던 기독교는 더욱 번창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종교가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한 사람의 작은 헌신, 작은 발걸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부분은 멜리데섬에서 일어났던 일이며 두번째 부분은 멜리데섬에서 로마에 도착하기 까지의 여정입니다.

멜리데 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1-10)
파선한 배가 도착한 곳은 멜리데(현재 몰타 공화국)라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멜리데는 시칠리아 남쪽 100 킬로미터 해상에 있는 섬으로서 로마로부터는 510킬로미터나 떨어져있었습니다. 그 섬의 주민들은 페니키아 혈통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는 폭풍을 만나 2주간 표류한 끝에 그레데의 미항에서 서쪽으로 약 7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문자적으로는 ‘야만인들, 그리스 말을 사용하지 않는 모든 민족을 그리스인들이 일컫는 말)이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특별한 동정, unusual kindness) 추운 날씨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을 피워 몸을 녹이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에 불에 넣자 나무 가지 사이에 있었던 독사 한마리가 불의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이것을 본 원주민들은 이제 바울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죽게 되는 것은 살인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독사를 불에 떨어 버렸는데 그의 몸은 원주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 상함도 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현장을 목격한 원주민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을 일으켜 걷게 하자 주민들이 바울을 헤르메스, 바나바는 제우스라고 믿고 숭배할려고 함)
하나님은 멜리데에서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는데 첫번째 이적은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아무 상함도 없게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두번째 이적은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총독/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의 질병을 고쳐준 사건입니다. 보블리오의 초대로 바울과 그 일행들이 사흘동안 그의 집에서 환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자 그가 나음을 얻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섬에 있는 다른 병자들도 와서 고침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표적과 이적은 사도 행전에 반복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 사도 바울의 손을 통해서 이러한 초자연적인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표적과 기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증거되었고 그 결과 수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죄의 노예됨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표적과 이적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7-18)

그런데 이러한 초자연적인 기적은 과거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전세계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교에 전념하고 있는 북가주에 있는 한 한인 교회는 일년에 두 세차례 교인들을 훈련하여 선교지로 파송합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이상 현지에 머물면서 현지의 선교사님들과 현지 교인들과 함께 짝을 지어 동네에 들어가 믿지 않는 현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언어도 안 통하고 현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평범한 성도들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현지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선교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빌어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복음을 듣지 못한 원주민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마침내 로마에 입성하는 바울 (11-15)
멜리데 섬에서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세 달을 머문 뒤, 항해 하기에 적당한 시기인 2월 말 혹은 3월초가 되었을 때 260여명의 일행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항한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여정:멜리데-시칠리아 수라구사(3일)- 이태리 반도 최남단 레기온(하루)-보디올(7일)-육로로 압비오 광장-트레이스 타베르네(삼관)-로마)

시칠리아 섬을 경유하여 이태리 반도 보디올에 도착하였을 때 그 인근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3년전,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그는 로마 선교를 꿈꾸며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었습니다.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성도들이었고, 로마 교회와 바울과는 직간접적으로 관련은 없었지만 바울은 로마를 향한 불타는 마음과, 로마 성도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로마를 방문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롬 1:9-10)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 1:13)

바울이 기도 중에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던 형제와 자매들을 얼굴을 맞대고 보니,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가득하였을 것이며,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로마 땅에도 존재하고 있음으로 인해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백부장의 배려로 바울은 일주일 가량 보디올에서 형제 자매들의 환대를 받으며 교제하면서, 길고도 거친 항해의 피로감에서 회복되었고 영적으로도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육로로 로마를 향해 걸어 가다가 로마로 부터 약 70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압비오 광장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리고 그곳으로 부터 약 14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트레이스 타베르네에 이르렀을 때, 바울 일행을 맞기 위해 로마 교회 형제 자매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지체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입니까? 며칠을 걸어서 바울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 헌신한 형제 자매들을 만났을 때 바울은 감격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was encouraged)”(28:15b)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번에 걸친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바울 곁에는그와 동역한 수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선교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고, 자신의 삶을 드려 선교 사역에 직접 동참하는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6장 전체를 할애해서 선교 사역에 동참한 소중한 동역자들을 로마 성도들에게 소개하며 그들의 헌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선교의 동역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교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습니까? 먼저는 기도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기도 편지를 읽으며 구체적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정한 시간을 내어 정기적으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물질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와 정성을 담아 드리는 물질은 선교의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물질을 드림으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는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려서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일입니다. 선교 바자에 시간을 내어 동참하고, 건강과 여건이 허락 한다면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사님들을 격려하며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함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선교만큼 소모적이고 비효과적인 일도 없습니다. 자신의 교회의 성장을 위한 것도 아니요, 교회에 속한 교인들을 위한 것도 아니요,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순종/복종해야만 합니다. 의무감에서 한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우리는 선교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로마 교회 형제들이 바울을 맞이하러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나왔는데, 본문에 기록된 ‘맞으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판테시스’인데요, 이 단어는 단순히 ‘만나다’라는 의미라기 보다 도시의 대표단, 또는 왕이나 장군을 맞이할 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 바울의 로마 입성이 갖는 상징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바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로마 개선문을 지나 입성하는 ‘개선 장군’과 같은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울은 세상의 유명한 장군들이나 왕들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려 주일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주로 입성하셨을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왕, 영원한 왕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누가가 가졌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사역을 이해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고후 5:7) (보는 것->세상의 관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안개처럼 사라질 인생 가운데 무엇을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잠깐 있다 사라지는 눈에 보이는 것을 주목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보이지 않는 것에 포커스하여 살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로마 입성은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one small step’ 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one giant leap’(하나의 위대한 도약)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하고 헌신할 때, 우리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 나라에 ‘큰 발걸음’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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