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더둘로의 고발과 바울의 변론 (사도행전 24:1-23)

Posted on 6월 13, 2021

Exemple
sermon date 2021-06-13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 설교 – 더둘로의 고발과 바울의 변론 (사도행전 24:1-23)

• 본문: 행 24:1-23
6/13/2021주일 낮 예배

오늘 본문은 가이사랴 헤롯 궁에 머물고 있는 바울을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무리들이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통해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송사하는 장면과 이에 대한 바울의 변명(변론)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40명 유대인 결사대가 자신을 죽일려고 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카를 통해 천부장에게 알리고,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의 안전을 고려하여 군사들을 동원하여 급히 밤에 바울을 로마 총독이 있는 가리사랴로 호송케합니다. 무려 470명이나 되는 많은 군사들이 바울 호송 작전에 투입됩니다.

바울의 로마 선교의 비전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무리들과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제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로마 총독 본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로마 총독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아시아와 헬라 지역(그리스 반도)에 복음을 편만히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속에 로마 선교의 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행 19:21)

로마 선교의 비전은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더욱 분명해 졌습니다. 동역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1차적으로는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이방인 교회의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로마 선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로 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되었지만 부활의 주님께서는 밤에 바울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로마 선교의 비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더라”(23:11)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매여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에서, 결국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의 육체는 쇠사슬로 인해 제한을 받고 고통을 받았고, 그의 신분은 자유인에서 죄수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그를 통해 복음이 당시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까지 전파되도록 하나님께서 놀라운 섭리 가운데 그를 인도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분은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고용한 변호사 더둘로(Tertullus)의 바울에 대한 고발 내용입니다. (24:1-9) 두번째 부분은 이에 대한 피고인 바울의 변론의 내용입니다. (24:10-21)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고용한 변호사 더둘로는 아마 당시 최고의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바울에게 유죄 판결이 나게하고 궁극적으로 바울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도록 할 참이었습니다.

더둘로의 고소는 당시 로마 법정에서 하는 변론 형식을 따라서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서언(exordium): 총독을 칭송하는 것으로 서론을 시작합니다. 3절.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으로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더둘로는 온갖 미사 여구의 말로서 벨릭스 총독에게 아부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벨릭스의 통치 시기에 소요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정국은 혼란스러워 무정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과 시리아인들에게 공정하지 못했고, 그의 군대는 그의 비호아래 유대인 부유층을 약탈했습니다. 이 일로 그가 해임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했습니다.”(인용)

2) 진술(narratio): 더둘로는 두 가지 이유로 바울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전염병과도 같은 소요 조장자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바울이 성전을 모독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일컫기를 ‘전염병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전염병’(헬, 로이몬)은 콜레라나 장티푸스, 천연두, 페스트등을 의미하는데 그 특징은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Covid-19가 위험한 것이 바로 바이러스의 전염 속도는 독감에 비해 빠르지는 않지만 전염력이 몇배 강하고, 감염자의 치사율(사망율)이 높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의 바이러스보다 전염력도 더 강하고 전파 속도도 빠르고 치사율도 높아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라고 한 것은 바울이 전염병을 퍼뜨리는 악성 바이러스처럼 가는 곳 마다 소요를 일으켜서 사회를 혼란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더둘로는 또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난 고향 마을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나사렛’이란 말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 적용되었고, 이차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적용된 말이었습니다. 즉 ‘나사렛 이단’이란 말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 신흥 사이비 집단처럼 여겨진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경멸과 조롱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을 ‘노쯔리’( 나사렛 사람 )라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그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을 드러낸 말입니다. 당시 로마는 유대교는 정식 종교로 인정하였지만 다른 종교-예를 들면 기독교-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둘로는 이단 종교인 기독교가 번성하도록 내버려두면 사회 혼란만 가중된다고 총독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고발 내용은 바울이 ‘성전을 더럽게 하는자’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변론 형식의 세번째 부분인 3) 증명/확증에 해당하는 ‘Confirmatio’입니다. “여기서 더립히다’라는 말은 세겜이나 앗수르와 같은 이방인이 범한 악한 행동이나 성전에 이방인들이 침입한 것등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미 예루살렘에 있을 때 유대인들로 부터 성전을 더럽혔다는 오명을 쓰고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오해한 것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더둘로는 유대인들의 거짓된 소문에 근거하여 바울을 ‘성전 모독죄’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4) 확인 요청(peroratio): 더둘로는 이렇게 바울을 고발한 이유를 제시한 이후 총독에게 “우리가 그를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도 “이 말이 옳다”하며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더둘로의 고발 이후 바울의 변론이 이어집니다. 그의 변론 형식도 더둘로의 고발 형식과 유사합니다.
1) 서언(exordium): 총독의 허락을 받고 바울이 변론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총독에 대해 간략히 언급합니다.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합니다.” 더둘로의 아부와 과장된 칭송의 말과는 대조적입니다. 간략하게 유다 지역을 오랫동안 다스리는벨릭스 총독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2) 진술과 확증(narratio & confirmatio): a) 소요를 조장하는 자라는 고발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12일 밖에 되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바울이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이나 시내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고발하는 내용에 대해 증거를 내세울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b)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고발에 대하여->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습니다. 즉 나도 유대인으로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과 선지자의 글(구약 성경)을 믿는 자 입니다. 나도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입니다라고 변론합니다.
c) 성전을 모독 하였다는 고발에 대하여->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유대 전통에 따라)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유대인들이 다 보았다고 말합니다.

3) 역고소(refutatio): 19-20절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고소해 놓고 재판에 출두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이것은 고소를 포기하거나 취소하는 것으로 ‘데스티소치오’(destitutio)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 고소자들이 법정에 출두하지 않는 것은 고소 철회를 뜻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소요죄와 성전 모독죄로 고소 당했는데, 고소인은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소송을 철회했을 때, 바울은 확실히 제시할 수 있는, 법률상 성립하는 반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역고소입니다.”

4) 바울 변론의 요약: 바울은 자신이 심문 받는 이유가 죽은 자의 부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산헤드린 앞에서도 자신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심문을 받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의 변증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소망인 부활이었습니다.

바울의 변론은 정정당당하고 논리 정연한 것이었습니다. 더둘로의 근거없는 고발에 대해 조목 조목 반박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변론은 총독 벨릭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기 까지 재판을 연기하게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들 돌보아 주도록 배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 총독이 주관하는 재판정에 서게 하시고, 바울로 하여금 변론하게 하심으로 더둘로와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하시고,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바울이 믿는 것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며, 죽은 자의 부활로 인해 심문 받는 것을 증거케 하심으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토대위에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 위에 초대 교회는 설립되었고, 그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며, 땅 끝까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펼쳐진 법정 공방, 즉 더둘로의 고발과 바울의 변론을 통해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경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설교 앞 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여 있으나 복음을 전할 기회는 더 많이 주어집니다. 유대인들에게,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고발로 인해 로마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하심으로 당시 지역 최고 권력자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증언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배를 타게 하심으로 성취되어 집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쇠사슬에 매인 죄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는 로마 총독 앞에 서지 못하였을 것이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도 동일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형들로부터 시기와 모함을 받아 깊은 웅덩이에 갇히게 되고 결국 애굽에 종으로 팔리고, 바로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아 가정 총무의 역할을 맡았으나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105편의 말씀처럼 “그의 발은 차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나”(18) 그는 인내하며 감옥에서 2년이상의 시간을 견디었습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19)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으로 연단받았기에 요셉은 하나님의 쓰임받는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던지, 평안한 삶 가운데 있든지, 불편한 상황 가운데 있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일을 깨닫고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는, 영향력있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일컬어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들 소요하게 하는 자요”라고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울이 전염병처럼 복음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세번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아시아와 마게도냐, 아가야 지역에 편만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소동이 계속 되었지만 복음의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병고침의 역사도 일어났고 귀신을 쫓아 내었고 감옥의 문이 열리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다락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리기도 했고, 수많은 이방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 일행이 떠나 간 이후에 이방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세움 받은 사역자들을 통해 전도와 양육이 계속되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에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일컬어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17:6)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천하를 소동케하는 전염병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향기”(고후 2:14-16)라 하였습니다.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나타내는 향기가 그리스도인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라 하였습니다. 먹으로 쓴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쓴 편지이며 마음 판에 쓴 편지라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삶을 읽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전염병이 된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영향력있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바닷물이 짠 것은 그 안에 3.5%의 염분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5%의 염분 때문에 바닷물이 짠 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세상 속에서 영향력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3.5%만 된다고 한다면 세상은 달라 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양보다 질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천명의 영향력보다, 복음을 깨닫고 온전히 거듭나서 변화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냄새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삶으로 적어 내려가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영향력있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이며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더둘로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자신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조상의하나님을 섬기며 성경을 믿으며 하나님께 대한 소망, 즉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심문 받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았기에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롬 1:4)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죽을 몸도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다시 부활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썩어질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 뿐이라면 우리는 불쌍한 자입니다. 우리의 바라는 것은 없어질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심판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10:27)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고후 5:7)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영생을 믿으며,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결정이 믿음으로 되어 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더둘로의 고소에 대응하여,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논리 정연하게 변론을 펼쳤습니다. 그의 변론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3가지 교훈을 살펴 보았습니다.

1. 우리도 바울처럼 어떠한 환경 가운데 처하든지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우리도 바울처럼 ‘천하를 어지럽게 하고’ ‘생명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복음의 전염병’과 같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우리도 바울처럼 부활 신앙을 소유하며,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23 6월
 123
45678910
11121314151617
18192021222324
25262728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