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28:16-31
8/8/2021 주일 낮 예배
우리는 작년 1월부터 사도 행전 말씀을 통해 초대 교회의 설립과 확장의 생생한 스토리를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교회에게 주시는 영적 도전과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행전의 마지막장 마지막 내용입니다.
사도 행전의 주제 구절은 행 1:8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 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이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다에 전파되었고, 빌립 집사를 통해 유대인들이 상종조차 하지 않던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전해졌고, 사도 바울을 통해 온 아시아와 그리스 지역,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 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셋집)에 일차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이후 자유의 몸이 되어 4차 전도 여행을 갔는데, 그 당시 땅끝으로 여겨졌던 서바나(스페인)까지 갔으리라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복음은 강력한 생명력이 있기에 극심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인종과 문화, 종교와 신분, 사회 경제적 상황과 국경을 뛰어 넘어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듣고 깨닫고 믿는 자마다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발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되었고, 로마 시민권자인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신분으로 수 개월의 거친 항해끝에 로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 제국의 수도요 제국의 중심지로서,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정교하게 건설된 도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사방 팔방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도시처럼 로마도 이방 신전이 가득한 도시여서 카피툴린 언덕 위에는 주피터와 주노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여 로마의 남쪽에 위치한 압비아 가도를 따라 로마에 입성하였습니다. 자신을 마중나온 로마 교회의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격려를 받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바울이 머물게 된 곳은 실제 감옥이 아니라 자신의 비용으로 세를 얻은 집(28:30)이었습니다. 바울은 중범죄자도 아니고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인물이 아니어서 자신이 살 거처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 같습니다. 가택 연금 상태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제한된 자유를 누리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군인들(시위대)이 24시간 교대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셋집에서 2년간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이 먼저 복음을 전한 대상은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다닐 때 먼저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교육, 문화, 종교의 센타였기에 회당은 유대인들을 전도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거부하고 오히려 분노하고 바울을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동족 유대인들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하였습니다. 로마서 9-11장에 걸쳐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영적 무지)되겠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큰 근심과 끊임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고 하였습니다.
로마에서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기 원했기에 유대 공동체의 리더 몇 사람을 자신이 갇혀있는 셋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셋집에 거주한지 ‘사흘 후에’ 유대 지도자 몇명을 초청한것으로 미루어 바울의 선교 열정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길 정도로 힘든 여정을 보내었기에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디올에서부터 로마까지 여러날을 걸어서 왔기에 몸은 많이 피곤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루라도 빨리 복음을 전하기 원했기에 도착한지 삼일 후에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한 것은 그들이 유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셋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는데 유대 공동체 리더 몇 사람을 먼저 만나 그들과 교제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기 원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변화된 그들을 통해 복음이 로마에 있는 유대 사회에 급속토록 전파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부터 20절까지는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소망’에 대한 복음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유대인들이 자신을 로마 당국에 고발하여 죄수가 되었고, 로마인은 자신을 심문하여 무죄함을 알고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여 자신이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것은 이스라엘의 관습이나 법을 어기거나 로마법을 어긴것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증할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으로 인해 심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것,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구약 성경에서 반복해서 예언하고 있는 오실 메시아(구원자)에 대한 것입니다. 영원한 왕, 평화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년동안 메시아를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모든 고통에서 해방하여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이스라엘의 소망’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시골 동네 나사렛 출신의 목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유일한 소망임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말을 듣고 유대 지도자들은 중립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당신의 고발과 재판에 관해 유대에서 온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바울에 대해 나쁜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단지 바울의 사상이 어떠한지 듣기 위해서 왔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전도 활동과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마음 문을 열지 않은 채 자신들은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도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유숙하는 집에 찾아오는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였는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믿는 사람도 있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셋집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뿐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먼저는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군인들(시위대, palace guard)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자신을 지키고 황제의 궁전을 호휘하는 수 천명의 시위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로마의 중심부, 로마 황실에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 셋집에 있을 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변화된 사람중에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의 영적 리더였던 빌레몬의 노예였으나 주인의 물건을 훔쳐 도망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로마 셋집에 있던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바울의 심복(심장)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 보내면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서신서가 신약 성경 빌레몬서입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기꺼이 용서해 주었고 그를 종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형제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초대 교회 역사 자료에 의하면 그로부터 약 50년 이후에 오네시모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대표적 교회인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몬 1:10)이라고 칭합니다. 바울은 감옥과도 같은 곳에서도 영적 재생산 사역을 하였습니다. 제자 양육에 매진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디모데처럼 영적인 아들과도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심복(심장)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갇혀 있었으나 ‘쓸모없이’(useless) 보이는 한 영혼을 ‘쓸모있는’(useful)한 존재로 변화시켰습니다.
30절 말씀대로 바울은 2년간 로마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다 영접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지식인이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나 노예나 군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재판 결과를 기다리면서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가택 연금 상태에 있으면서 복음 전파를 위해 한 일은 4권의 성경을 집필한 일입니다. 소위 ‘옥중 서신’이라 일컬어지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여 편지로 남겼습니다.
쓰여진 순서대로 보면, 골로새서는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인 골로새 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장로인 에바브라가 교회내에 침투한 이단의 문제를 가지고 로마에 있는 바울을 찾아 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서신서입니다.
빌레몬서는 골로새 교회의 장로인 빌레몬에게 쓴 사적인 편지로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두라고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쓰여진 에베소서는 3년동안 눈물로 사역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편지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영광스러운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으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를 교인들에게 보내고, 빌레몬서를 골로새 교회의 장로인 빌레몬에게 전달케 합니다.
빌립보서는 마지막으로 쓴 편지로서 빌립보 교회에서 파송한 에바브라디도편으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에 대한 내용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옥에 갇혀지내는 바울을 섬기도록 빌립보 교회가 파송한 일꾼인데, 큰 병에 걸려 죽을 뻔 하였으나 완쾌되어 이 편지를 가지고 빌립보로 돌아갔습니다.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간의 시간을 보낸 바울에게, 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로마 셋집에서 보낸 감방같은 2년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그 2년간의 시간이 허송세월하는 wasting time/killing time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를 찾아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로마 시위대 군인들과 황실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을 양육하는 시간이 되었고 오네시모와 같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갇혀 있는 동안 초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서 구원의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기록한 서신들 중에 4개를 신약 성경에 포함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로마 셋집에 매여 있었으나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두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인 디모데 후서에 기록한 바와 같은 의미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세상의 권력이 전도자 바울을 감옥에 가두고 그의 손과 발에 쇠사슬을 채울 수는 있어도, 바울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복음, 하나님의 말씀은 쇠사슬로 맬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얼마나 심했습니까? 하지만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순교의 제물로 자신의 몸을 드리면서 믿음을 지켰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육체를 제어하는 세상의 권력을 두려워하기 보다 영혼을 멸하실수도 있고 살리실 수도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강할수록 하나님의 복음은 더욱 힘있게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 방방 곡곡에서 교회에 대한 핍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정부에 의한 핍박, 이슬람이나 힌두교인들에 의한 핍박,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핍박,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에 의한 핍박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불타고, 선교사가 납치되어 고문 당하고,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이웃들에 의해 가족들이 목숨을 잃고 집을 잃기도 합니다. 고향 마을에서 추방되기도 합니다. 직장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는 핍박 중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조차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매이지 않고 감옥을 넘어, 전쟁의 상흔을 넘어, 인종과 종교의 장벽을 넘어 세상 끝까지 전파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헬라어 원문을 보면 사도 행전의 마지막은 두 단어로 마무리되고 있는데요, ‘메타 파세스 파레시아’(boldly, ‘아주 담대하게’), ‘아콜루토스’(without hindrance,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입니다. 이 두 단어는 사도행전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외적인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핍박과 고난이 닥칠지라도 ‘아주 담대하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힘있게 전파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세상을 이기고, 핍박을 이기고, 권력을 이기는 능력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고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스도의 구주되심과 주 되심-을 ‘담대하게’ ‘거침없이’(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사도 행전은 30-31절에 기록된 대로, 사도 바울이 셋 집에서 찾아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가르쳤다고 하면서 갑자기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재판을 받고 무죄로 석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도 않고, 그 이후의 바울의 사역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왜 누가는 갑자기, 조금은 어색하게 사도 행전을 끝마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을 통해서 로마에 전파된 복음은 그 누군가에 의해 그 이후로 계속 전파 되었고, 계속 전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복음은 지금도 땅끝까지 계속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사도 행전 29장(Acts 29)을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가 써가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은 사도 행전 28장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복음을 들고 세상 끝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멀리 나가지는 못해도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삶의 현장에서 아내로, 남편으로, 어머니와 할머니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섬기는 교회에서 사도 행전 29장을 써내려가는 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써 내려가는 사도 행전은 주님께서 심판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고(welcome),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모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하고 가르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