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전도 여행, “구브로 선교”
• 본문: 행 13:4-12
10/25/2020 주일 낮 예배
오늘 본문부터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한 전도 여행의 기록이 펼쳐집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중심 인물이 전도자 바울이 됩니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사울은 십여년간 사역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라비아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사역(?)하였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초야에 뭍혀 조용히 지내고 있을 때, 바나바의 요청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일년간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함께 하게 됩니다. (A.D. 35-45/46)
부활의 주님은 사울을 부르실 때 그에게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전하신 말씀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이방인 선교를 위해 택하신 그릇인 바울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드디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세계 선교(world mission)의 문을 여는 위대한 전도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지도 않았던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이었지만 바울의 첫번째 전도 항해는 세계를 뒤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훗날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말하기를 “바울을 싣고가는 배가 유럽을 싣고 가는 배였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으로 인해 유럽을 변화시키고 전세계를 변화시킬 놀라운 일이 시작된것입니다.
1차 전도 여행에는 바울과 바울의 영적 멘토인 바나바와 바나바의 사촌 마가 요한이 동행하였습니다.
우리가 낯선 곳을 여행하기 전에 그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하는 일이 지도를 펼쳐놓고 위치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지도를 보면서 이동 경로를 계획하고, 지도(GPS)를 보면서 운전해서 다음 목적지로 가게 됩니다.
마찬 가지로 앞으로 바울의 전도 여행-로마행까지 모두 네번-을 공부할 때 지도를 함께 보아야 이해가 쉽습니다.
*1차 전도 여행 경로 (지도 참조)
안디옥(시리아)에서 출발→ 실루기아(시리아 항구) → 구브로의 섬 (키프러스) 살라미→ 바보 → 밤빌리아 의 버가 → 안디옥 (비시디아) → 이고니온 →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안디옥 (비시디아) → 밤빌리아의 버가 → 앗달리아 → 안디옥 (시리아) 도착
오늘 본문은 1차 전도 여행의 시작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요한은 시리아 항구인 실루기아(Seleucia)에서 배를 타고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구브로(Cyprus)라는 섬이었습니다. 그곳에 위치한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바보에서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총독의 측근인 마술사 엘루마가 대적하게 되고 사울이 성령 충만하여 그의 악함을 드러내 밝히고 그로 하여금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게하자 그것을 본 총독이 믿게되고 주의 가르침에 놀라게 됩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하여 16마일 정도 떨어진 항구 실루기아에서 구브로로 가는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바울 전도팀의 전도 사역이 시작된 구브로(Cyprus, 키프러스)라는 섬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 동북부에 있는 길이 224Km, 폭 69Km에 이르는 큰 섬입니다. 구브로(Cyprus)라는 이름은 구브로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Cooper)에서 유래되었고,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브로는 BC 57년에 로마에 합병되었고, 2년후 길리기아 지방에 통합되었습니다. BC 27년에 구브로는 아우구스투스를 대신해서 황제의 특사가 통치하는 독자적인 지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BC 22년에 아우구스투스는 구브로를 로마 원로원의 통제를 받도록 조치했으며, 그 해부터는 구브로는 7절에 기록된 것처럼, 원로원이 통제하는 다른 지방들처럼 총독(Proconsul)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구브로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기독교인들에 대한 큰 박해로 인해 신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한 곳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주 예수를 전파” (행 11:20)하였다고 했는데 그들중의 일부는 구브로 출신이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했고 (행4:36), 나중에 바나바와 마가는 다시 구브로를 방문하여 전도하게 됩니다. (행 15:39)
오늘 본문 말씀에 근거하여 ‘구브로 선교’가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는 팀사역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두 명의 영적 지도자인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원래부터 있었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두 명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온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설립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보내는 교회’(sending church)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NAMB(SBC의 북미선교부)의 선교 전략도 교회 개척자는 반드시 ‘파송/후원 교회’(sending church/mother church)를 발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선교사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처럼 ‘지역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church planting by local church)것이 성경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이것을 알면서도 실천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회는 점점 내부지향적이 되고, 자기 교회 유지와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개척이 필요하다고는 말하지만, 다들 어렵다고만 말하고 교회 개척을 위해 돕지는 않습니다.
교회 개척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기존 교회는 사람을 키워 파송해야하고,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지원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초대 선교사는 바나바와 사울 그리고 ‘수행원’(assistant)로서 바나바의 사촌 마가 요한, 모두 3명이었습니다.
3명이 한 팀이 되어 첫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출신 배경과 성격이 매우 다른 인물들입니다.
바나바는 레위 지파 출신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자신의 밭을 팔아 초대 교회의 사도들 발 앞에 둘 정도로 헌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릴만큼 그는 격려와 위로의 은사를 가진 너그럽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혜와 믿음이 충만하였고,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적극 추천하였을 뿐 아니라, 다소에 칩거하고 있던 사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영적 멘토였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인이었고 산헤드린 공의회의 주요 멤버중의 한명인것으로 추정되는 유대교의 차세대 지도자 중 한명이었습니다. 성격은 직선적이고 목표 중심적이어서 전형적인 개척자형(frontier) 지도자였습니다. 율법에 대한 지식은 풍부하였으나 기독교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역 경험이 많이 없어서 영적인 지도가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선교를 위해 한팀이 되게 하셨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들을 통해서 서로 배우게 하시고, 연약한 부분을 서로 보충케 하심으로 효과적인 사역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믿어집니다.
2018년 12월 말,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KWMA) 정기 총회 보고 자료에 의하면 한국 교회와 선교 단체가 파송한 선교사는 171개국, 27,993명이라고 합니다. 전세계에서 두 세번째로 해외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국가입니다.
한국 선교사님들의 강점은 뜨거운 열정과 개척정신이 투철해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현지인들을 전도하고 제자화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다른 해외 선교사님들로 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선교사님들끼리 팀웍을 형성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각자의 개성이 강해서 서로 세워주고 섬기는 모습이 약한 것이지요. 모두가 다 리더가 되기를 원하고, 자신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러 선교사들이 협력하여 각자의 은사에 따라 서로 돕고 양보하는 모습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선교사님들끼리 분쟁이 일어나서 갈라서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섬기는 부분은 다른 나라 특히 서구권 출신 선교사님들로 부터 배워야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한팀이 되어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이 시작될 무렵에 마가 요한의 일로 인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서 각자의 길로 전도 여행을 하게 되었지만 선교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때에도 실라와 함께 출발했고, 루스드라 지역에서 신실한 제자 디모데를 핍업해서 함께 긴 선교 여행을 합니다. 마게도냐 사람들의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배타고 떠날 때 사도행전의 저자인 의사 누가도 합류합니다. 나중에 고린도에서 전도하고 수리아로 돌아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동행합니다. 3차 전도 여행 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외에 여러명의 동역자들이 바울을 도와 힘들고 고단한 선교 여행에 함께 합니다.
바울에게는 함께 한 동역자들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예수님도 칠십명의 전도대를 파송하실 때 둘씩 둘씩 짝지워 보내셨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
불같은 열정과 담대한 믿음을 소유한 바울도 사랑하는 제자와 동역자의 사랑과 위로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특히 로마의 차갑고 습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이요 제자인 디모데에게 쓴 편지글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9-11)
죽음을 앞둔 노 선교사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외롭고 힘들었을 때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1차 선교 여행중에 중도 하차한 마가 요한과의 관계도 회복되어 신실한 제자 마가도 함께 데리고 오라고 요청합니다.
선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역자들과 함께 협력하여야 하고, 교회가 기도와 물질로 적극 동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두번째는 익숙한 환경에서 부터 시작하는 전도 전략입니다.
구브로는 지역적으로 수리아 안디옥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 회당이 존재하였습니다.
구브로를 첫 선교지로 택한 것은 아마도 바나바의 고향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에 바나바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었습니다. 아마도 일가 친척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의 여러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한 사명을 받았지만 행 9:15에서 유대인들과 임금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임을 예언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여러 지역에 흩어지게 되면서 정착지에서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회당에서 그들은 율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지속하였습니다. 회당은 예배의 장소였을 뿐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커뮤니티 센타와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팀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대인 회당을 찾았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선교 학자들은 초대 교회 선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로마가 닦아 놓은 도로망, 세계 공용어로서 헬라어 보급과 더불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구심점이었던 회당의 존재를 꼽을 정도로 유대인 회당은 기독교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선교 명령에서도 예루살렘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파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행 1:8)
선교는 우리의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들, 형제 자매들,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친척, 이웃들에게 복음의 지경이 확장되어야하고,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한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새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온 세상 위하여 주 은혜 임하니 주 예수 이름 힘입어 이 복음 전하자 먼 곳에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나 어느곳에 있든지 늘 기도 힘쓰리 (후렴) 전하고 기도해 매일 증인되리라 세상 모든 사람 다 듣고 그 사랑 알도록”
먼 곳에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기도로 세계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가까운 곳에서부터 복음의 증인되는 삶을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세번째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교팀은 살라미(Salamis)에 도착하여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후 섬을 가로 질러 살라미에서부터 약 160Km서쪽에 위치한 바보(Paphos)에서 전도합니다. 바보는 구브로의 수도로서 총독이 거주하는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바보는 ‘바비안’(the Paphian)으로 불린 여신 숭배로 유명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이 여신은 수리아에서 기원한 신으로서,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비너스)와 동일시됩니다.
바보에서 총독인 서기오 바울(Sergius Paullus)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나바와 바울 일행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총독의 측근인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가 훼방을 놓습니다. 그는 마술사 엘루마(Elymas) (‘마법사’ ‘마술사’ ‘현자’를 뜻하는 셈어)로서 마술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총독의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엘루마가 대적한 이유는 그가 생각하기에 만약 선교사들이 선포하는 신앙에 총독이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새로운 종교를 믿게 된다면, 총독 옆에서 행사했던 자신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 ‘바예수’(Barjesus) (예수/여호수아(구원자)의 아들) – 그는 스스로 구원자, 현자로 일컬으며 사람들을 미혹한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복음 전파를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존재는 사단입니다. 자신들이 다스리는 영적인 영역이 축소되고 영향력이 사라질까 두려워 그들은 필사적으로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대적합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이 늘 경험하는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지역 유지들을 동원하여 선교 사역을 가로 막기도하고, 갱들이나 조폭들이 돈을 요구하며 방해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타종교 혹은 토속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불태우고 믿는 현지인들을 핍박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가로막는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능력의 선포로 물리칩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여’보았습니다. 바울은 거짓 선지자를 자신의 능력으로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모든 악한 자의 궤계를 파하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도 바울은 권면하기를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엡 6:11,17,18)고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마귀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강하고 능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를 ‘주목하여(looked straight)’ 보았습니다. 거짓 선지자요 마술로 사람을 현혹하는 엘루마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담대히 마귀를 정면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리할때 마귀는 그 힘을 잃고 우리를 피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Resist the devil, and he will flee from you) (약 4:7)
우리는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나를 짓누르고 괴롭히는 모든 악한 마귀는 내게서 떠날지어다!” 아멘!!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은 성령의 지혜와 영적 통찰력으로 그의 실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마술사 엘루마가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이며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자”라고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에게 선언하기를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을 때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일을 목도한 총독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주의 가르치심에 놀라게 됩니다.
바보에서 있었던 영적 전투의 승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바울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결과 구브로 섬에게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의 회심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계 선교의 문을 열게 된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의 첫번째 스토리로 ‘구브로 선교’가 주는 영적 교훈을 살펴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선교를 위해 동역하는 팀사역의 중요성을 대해서 배웠고, 둘째는 가까운 곳, 익숙한 환경에서부터 전도하는 전도 전략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사도행전이 가르쳐주는 선교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 모두가 먼곳에 나가 전하지 못해도 어느 곳에 있던지 복음을 전하고 기도에 힘쓰며, 성령 충만함으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