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성장의 원리”
•본문: 사도행전 9:31
8/30/2020 주일 낮 예배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시작과 확장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120여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였고, 그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대로 생명의 복음이,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의 증인들을 통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기록이 사도행전의 주요 내용입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사도행전의 주요한 사건을 구분하는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초대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관한 내용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교회의 역동성과 확장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입니다.
6 군데 나오는 표현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세 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각 단락은 복음이 새로운 지역에,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9장 32절 이하에서 펼쳐지는 사도 베드로의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에서의 복음의 확산의 기록을 이어주는 bridge 역할을 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믿는 사람이 하루에 3천명이 넘었다 (2:4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되었는데,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2:42-4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교회 성장의 원리는 사도의 가르침(말씀 증거),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 기도의 헌신이 균형있게 포함되어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안에서 나눔의 실천, 일치된 마음, 진실한 교제, 경건한 예배, 본이 되는 삶이 중요한 요소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2:47)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영혼을 날마다 더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는 인위적인 교회 성장과 부흥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전도 프로그램과 제자 양육 코스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탁월한 전도자가 있었지만, 그 역시 인간적인 기준에서 보면 전도자로서는 자격 미달인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변화시키셔서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역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구절은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는 그 이후의 내용이 그 이전의 내용의 결과임을 표현하는 접속사입니다. 영어로는 ‘therefore’ ‘then’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31절을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1절 이전의 내용으로 인하여 온 교회가 평안하고 든듣히 서가고 성장하였다는 의미인데요, 31절 이전의 내용을 보면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9장 전체적으로 보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의 회심 사건이 먼저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 제자 아나니아의 순종을 통해서 사울에게 안수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침례를 받은 사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하게 되고,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 탈출하는 장면, 마지막으로는 바나바의 추천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로 부터 인정받게 되고, 예루살렘 성도들과 교제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고 그들이 사울을 죽일려고 하자 형제들의 도움으로 가이사랴를 거쳐 고향 다소로 피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31절 바로 앞 부분의 내용은 사울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 고향 다소로 급히 도망하는 기록임을 보게 되는데, 누가는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를 사용함으로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는 든든히 서가고 성장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순되게 보이는 내용같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고난을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강하여 지고, 고난 중에도 교회는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행 8장 초반부에도 기록된 바와 같이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을 때 흩어진 성도들(diaspora)로 인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겸손히 순종한 제자 아나니아와 바나바를 통해서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세워지는 일들을 통해서 초대 교회는 큰 부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부르심을 따라 순종하는 제자들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은 선교의 일꾼을 세우시고 교회를 성장케하십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초대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게 된 중요한 원리들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는 교회의 평안함입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온 교회가 평안하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NIV “enjoyed a time of peace”) 교회는 주의 은혜 가운데 늘 평안해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하다는 의미는 교회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초대 교회는 외적으로 유대인들의 핍박(행 6장, 스데반의 순교)에 직면해야 했고, 내적으로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였습니다. (행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6장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는 문제’)
하지만 고난이 초대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지 못했고, 내적인 갈등이 성도들간의 화합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핍박 중에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고, 성령의 지혜로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평화 (샬롬)은 하늘로 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하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키고 평안을 누릴 수는 비결은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믿음의 선배들은 환난 중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 평화를 누렸기 때문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36장 1절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그런데 사탄은 교회안에 평화를 깨뜨리기 위해 갖은 계략을 동원합니다.
리더가 불경건의 죄악에 빠지게 하고 리더십을 흔들어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합니다. (ex. 리버티 대학교 총장 제리 폴웰 Jr.) 또한 성도들 간에 분열을 조장하고, 작은 문제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서로간에 대립과 반목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에베소서 6장은 마지막 때 영적 전투에 임하는 군사들이 취해야할 방어용 복장과 공격용 무기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대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지금도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기 위해서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성령안에서 깨어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평화를 누리는 교회는 든든히 서가며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두번째는 교회의 세워짐입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it was strengthened(NIV), were edified (KJV), being built up (NASB))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다양한 은사들을 가진 지체들이 교회의 몸을 세우기 위해 연합할 때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롬 12장에서 바울은 권면하기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5-6)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공동체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름’(difference)을 불편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각기 다른 은사와 기능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또한 형제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자매의 즐거움에 함께 기뻐할 때 우리는 한 몸 공동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며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6-27)
서로에 대해서 귀하게 여기고 존중히 여길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되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 영광이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는 계속 자라나는 유기적인 생명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몸을 구성하는 각 지체들은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각 지체들이 건강하게 각자의 기능을 잘 감당할 때 교회는 자라납니다.
교회가 계속 자라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교회는 병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교회가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자랄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4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이 말씀에 근거하면, 먼저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Speaking in truth in love) 진리를 말하되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합니다. 사랑 없이 말하는 진리는 판단과 거침돌이 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안에 거해야 영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할 때, 각자의 기능에 충실할 때 교회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번째는 주를 경외함입니다.
지난 2주간 수요 예배 때 나눈 시 34편에서도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은 천사를 보내어 둘러 진치심으로 보호하십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잠언 말씀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1: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우리는 죄인이기때문입니다. 온갖 죄악으로 얼룩진 우리는 하나님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인이 거룩함과 영광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분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찬양하였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이다” (시 145:1-3)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웠던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욥 1:1)
행 10장에는 이방인 최초로 구원을 얻게 된 이탈리아 군 장교 고넬료가 등장하는데 그를 소개할 때 누가는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10: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부흥은 주를 경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며,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에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입술로 고백할 뿐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고 그분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님을 존귀히 여기며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위로/후원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였기에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요한복음 14장에 “보혜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인데 ‘위로자’ ‘상담자’ ‘변호사’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 곁에서 위로하시고 조언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변호해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본문의 ‘성령의 위로’에서 ‘위로’라는 단어는 ‘파라클레세이’인데 성령을 의미하는 단어 ‘파라클레토스’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단어입니다. 성령은 낙심되고 지쳐있는 영혼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지치고 낙심한 영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안식처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참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누리게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마 11:28)
또한 ‘성령의 위로’를 ‘성령의 후원’(각 주)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뿐 아니라 담대히 부활의 주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후원(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서, 우리 뒤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영어 표현 중에 “I’ve got your back”이라는 숙어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아무런 조건없이 너의 편이 되어 너를 도와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I’ve got your back. Don’t worry, just trust in m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행 9:31 말씀 통해서 초대 교회가 환난과 핍박 중에도 건강하게 성장하게 된 네 가지 영적 원리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1.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평화를 누릴 때 가능합니다.
2.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들이 서로 귀하게 여기고, 각자의 기능에 충실할 때 이루어집니다.
3.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예배하고 섬길 때 이루어집니다.
4. 교회의 성장은 성령의 위로와 후원으로 가능합니다.
웨인즈빌 침례교회가 이러한 성경적 원리를 따라 건강하게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몸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