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 제자 바나바 (사도행전 9:19b – 31)

Posted on 8월 23,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08-23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예배 – 제자 바나바 (사도행전 9:19b – 31)

“제자 바나바”
•본문: 사도행전 9:19b – 31
8/23/2020 주일 낮 예배

우리는 지난 주일에 ‘제자 아나니아’라는 제목으로 이방인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택하신 그릇으로 쓰임받게 될 사울을 찾아갔던 아나니아에 대한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핍박자 사울을 찾아가는 일은 아나니아에게도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 아나니아’는 ‘가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사울이 머물고 있는 유다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를 형제로 품었고, 그에게 안수함으로, 핍박자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방인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택하신 도구로 쓰임받는데 위대한 조연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울이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는 내용과 그가 유대인들에게서 받은 핍박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은 사울은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9:18) 됩니다. 그의 눈을 덮고 있었던 ‘비늘 같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자신이 의지하고 살았던 율법과 자기 의와, 그의 인생의 목표였던 세상 권력과 명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짐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침례를 받은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 교제한 이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회당에서 사울의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믿는 자들)을 멸하던 자가,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어가기 위해 다메섹까지 온 자가, 어떻게 180도 변화되어 그 도를 전하는 자가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사울은 성령 충만함으로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라 증언합니다.

23절. “여러 날이 지나매” 많은 이들은 이 구절을 사울이 다메섹을 떠나 아라비아 광야에서 보낸 3년간의 시간을 의미하는 구절이라고 해석합니다. (갈 1:17-18)

사울은 광야에서 보내는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영적으로 새로와지고, 하나님의 사명을 확실히 붙잡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시 다메섹에 돌아 왔을 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 위해 공모하여 사울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려 그곳을 벗어나게 됩니다.

나중에 사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 목적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교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울의 변화를 믿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고 의심합니다. 아나니아와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의 반응과 동일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때 사울의 곁에는 바나바라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영적 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바나바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사울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내용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하였는지를 소상하게 전해줍니다.

그의 적극적인 추천과 지지로 인하여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과 교제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도 복음 전함을 싫어하는 유대인들로 부터 살해의 위협을 당하게 되어, 형제들의 도움으로 가이사랴를 거쳐 자신의 고향이었던 다소로 피신하게 됩니다.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세워지기까지 그의 곁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제자 아나니아’와 오늘 본문의 주인공 ‘제자 바나바’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오늘은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로 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까지 사울의 조력자로 쓰임받았던 ‘바나바’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살펴보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바나바’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4:36 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Son of encouragement)이라) 하니

원래 이름은 요셉인데 사람들이 그를 바나바 즉 ‘위로의 아들’이라 불렀던 것으로 보아 그는 힘들고 지친 사람들 곁에 가서 위로해 주고 격려하는 은사를 가진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행 4장에 보면 바나바는 자신 혹은 아내가 소유한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둘 정도로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성경에서 두번째로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은 오늘 읽었던 본문 9:27 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사울이 회심 이후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삼 년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스토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일 동안 머무는 동안 사울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야고보 외 다른 사도들은 만나지도 못할 정도로, 사도들에게는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의 이름은 이미 온 유대와 사마리아, 이웃에 접한 외국의 성에 이르기 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믿는 자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넘기는 자이며, 교회를 진멸하는데 앞장섰던 악명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다메섹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들었겠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반신반의 하였을 것입니다. 사울이 진심으로 변화되었는지,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자가 회심하자 마자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유대인들에게 전도하였다는 것이 사실인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사울의 회심 사건 이후 수년이 지나고 사울이 예루살렘에 나타나자 예루살렘 교회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사울이 어떤 목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였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혼자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가 그의 후견인(Supporter, Guardian)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도들에게 사울이 예수님 만난 사건과 그의 회심 이후 행적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해줍니다. 한마디로 사울은 믿을 만한 사람이며, 그가 진정 변화된 그리스도인임을 보증해 준 것입니다.

사울의 추천인 역할을 한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 만큼이나 영향력있는 영적 지도자임을 행 11장 22절 말씀 이하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 지역이었던 안디옥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게 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자, 이 모든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여 진위여부를 확인케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로서, 새로운 교회가 형성되는 헬라 지역 안디옥에 바나바가 파송된 것은 그가 헬라말을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에 버금가는 영적 지도자들 중 한명이었기 때문임을 짐작케 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도착하여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있으라 권하는”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안에서 안디옥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성숙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He is a good man, full of the Holy Spirit and faith) 바나바의 인품과 영성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선한 성품을 가진 바나바,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영성을 소유한 제자 바나바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할 영적인 롤 모델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권면과 위로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안디옥 교회는 큰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11:24)

안디옥 방문 후 바나바는 다소에 칩거 중인 사울을 찾아 갑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 가이사랴를 거쳐 고향 다소로 도피한 내용이 나오는데, 대략 7년정도 사울은 다소에서 숨어지내며 아라비아 광야의 시간 이후 또 다시 침묵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사울은 회심 이후 모두 10여년동안 광야에서, 고향 마을에서 무명의 사람으로, 은둔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카이로스)가 되었을 때 칩거중인 사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할 기회를 줍니다.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로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신앙의 선배인 바나바의 너그러움과 영적 지도력으로 말미암아 사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동역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복음 전도자로 훈련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영적 지도자의 동역의 열매는 성도들을 통해 나타났는데,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전까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사렛인’ ‘갈릴리인’이라는 조롱과 경멸의 의미로 불리워졌는데, 안디옥 교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작은 예수’라고 일컬음 받은것입니다.

이후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차 전도 여행을 함께 하게 됩니다. 그런데 1차 전도 여행중 살라미에서 바나바의 조카였던 마가 요한이 동참하게 되는데 나중에 버가라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요한은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하여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무렵에 바나바와 바울이 크게 다투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서서 각각 따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주장하였으나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에서 중도 포기한 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맞섭니다.

바울이 원칙 주의자인 반면, 바나바는 포용력 있는 사람, 관계 중심적인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재기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2nd chance)를 주기를 원했고, 자신의 전도 여행에 마가를 데리고 갑니다. 이후 마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바울과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었고,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술하는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너그러운 인품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나바와 바울 이름의 순서에서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던 바나바은 회심한 사울의 영적인 멘토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는 두 사람을 소개할 때 항상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바울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13:46 보면 처음으로 바울의 이름이 바나바 이름보다 먼저 기록됩니다.

14장에 잠시 ‘바나바와 바울’로 표기되었지만 15장 이후로는 계속해서 ‘바울과 바나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성숙하고 분별력 있는 제자였기에, 초대 교회의 ‘떠오르는 스타’ (rising star), 바울을 대할 때 시기심과 질투심을 가지고 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바울의 사역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고, 병자가 나음을 얻고 귀신이 떠나가는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을 확신했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펼쳐가실것을 믿었기에 후배 사역자를 세워주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이었다면, 자신보다 신앙의 후배인 바울이 주도권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반대하였겠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인물이었기에 오히려 섬김과 동역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구브로의 살라미에 있는 바나바의 수도원에서 출판된 조그만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구브로 태생의 바나바는 처음에는 주님의 제자인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후 바나바는 거룩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많은 나라로 선교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구브로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 유대인들에게 살해 당했다. 바가는 아무도 모르게 그의 시신을 살라미 교외에 있는 바위 절벽으로 박혀 있는 빈 무덤에 안장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나바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바울과의 관계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적해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영적 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구브로 레위인 출신 바나바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변화된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적극 추천한 인물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평판이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담대히 사울을 추천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기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그리스도의 제자’였기에 성령께서 사울을 통해 하실 일을 보는 영적 안목과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이후 사울과 동역하면서 보여준 그의 너그러움과 포용력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성품을 본보기로 보여줍니다. 인간적인 고집과 기득권을 지켜려는 집착 대신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사람을 통해 세계 선교의 문을 여시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 겸손의 지도자였습니다.

나는 누구의 바나바입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신앙이 어리고 영적으로 미숙한 지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진리 가운데 잘 이끌어 주는 사람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신앙의 연륜은 짧지만, 영적인 경험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나라 위해 섬길려고 애쓰는 지체들을 세워주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묵묵히 섬기는 사람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부족한 저의 신앙 여정에도 바나바와 같은 영적인 멘토들이 계셨기에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신앙의 확신없이 교회 출석하고 있던 사춘기 10대 시절에, 수련회를 소개해주고, 영적 거듭남의 체험 이후 소그룹 성경 공부를 통해 신앙의 기초를 세워주신 교회 고등부 선생님(이후 대학생 선교회 간사를 거쳐 중국 선교사로 헌신)이 저에게 바나바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간사 훈련을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난 이후 새롭게 부임한 30대 초반의 열정적인 간사님을 통해 제자 훈련을 받게하셨습니다. 서른 세살의 나이에 하나님 품에 안기기까지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불꽃같이 열정적인 삶은 헌신과 사랑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만 6살때부터 아버지 없이 자란 저에게 간사님은 아버지처럼 따스한 분이셨고, 때론 엄한 큰 형님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와서 대학 생활 중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함께 신앙 훈련을 받으면서 만난 선배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여준 영적 멘토들이었습니다. 군 제대 후 캠퍼스에서 만난 또 다른 간사님은 희생과 헌신, 제자 사랑의 모범이 되신 스승이셨고, 저에게 바나바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10대와 20대 시절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여러명의 영적 ‘바나바’를 만나게 하신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 가운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우리 곁에서 위로와 격려, 사랑과 섬김으로 함께 하였던 “바나바”가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하게 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남은 일생이 그 어떤 사람에게 또 다른 바나바가 되어, 지쳐있는 영혼을 위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적 지도자를 세워가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기도와 사랑으로 겸손히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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