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사도행전 8:26-40)

Posted on 8월 2,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08-02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예배 –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사도행전 8:26-40)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본문: 사도행전 8:26-40
8/2/2020 주일 낮 예배

우리는 두 번에 걸쳐서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명이었던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에 대한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받았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대인들과 오랫동안 원수 관계에 있었던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특이한 사건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신처럼 여겨지며 영향력을 끼치던 마술사 시몬도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능력을 보고 놀라며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가짜였음이 증명되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인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위에 임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기를 원했지만, 그의 악독과 불의에 대해 베드로로 부터 큰 책망을 듣게 됩니다.

2주전에 나누었던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가 다수의 무리를 대상으로 한 ‘대중 전도’였다면, 오늘 본문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대일 ‘개인 전도’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전도와 오늘 본문의 에디오피아 내시의 전도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 본다면, 먼저 차이점은 전자는 ‘대중 전도’이며 후자는 ‘개인 전도’라는 것과, 전자는 지역적으로 ‘사마리아’이며 후자는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입니다. 전자는 ‘혼혈 유대인’을 대상으로 전도한 것이라면 후자는 ‘이방인으로 추정되는 에디오피아의 고위 관리’에게 전도하였고, 전자는 ‘표적과 기사’(치유 사역)이 포함되었다면 후자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공통점은 두 사건 모두 성령에 의한 전도가 강조되고 있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복음 전하기 꺼리는 대상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한 영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대해 살펴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 주 본문 마지막 절에 보면 두 사도(베드로와 요한)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8:2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계속 전해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주목하여 보고 계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의 직책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무리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산상 수훈과 같은 보석과도 같은 말씀은 대중을 대상으로 전한 복음 설교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개인 전도도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지역으로 걸어가셨고,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 우물가로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와의 만남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만남임을 오늘 본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먼저 주의 성령께서 빌립을 감동하시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로 이끄셨습니다.

26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라고 기록하고 있고, 29절에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39절에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은 전도의 영이십니다.

위대한 복음 전파의 명령인 마 28:18-20, 행 1:8에 보면 공통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침례를 주라’고 명령하셨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장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요 14:16-17 a)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자들에게 찾아 가셔서 진리되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가사로 가는 광야로 나아간 빌립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수레를 타고 가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모든 국고를 관리하는 한 내시를 보게 됩니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자신의 나라 에디오피아(북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간다게’는 여왕의 이름이 아니라 여왕(황태후)의 존칭어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왕을 ‘바로’라 하고, 로마의 황제를 ‘가이사’라고 칭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당시 에디오피아 왕은 신성시 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들은 황태후(왕대비)가 주로 맡아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내시가 나라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이라는 직함을 가진 것으로 보아 오늘날로 말하자면 ‘재무 장관’에 해당하는 그 나라의 최고위 관리중의 한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God-fearer)중 한 명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1500키로미터가 넘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먼 길을 예배드리러 온 정도인 것으로 보아 그는 유대 종교에 심취해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목마른 사람임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2.그런데 빌립이 그를 만난 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가사(Gaza)로 가는 광야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전도를 마친 빌립이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내시보다 훨씬 먼저 출발해야 만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예루살렘 보다 약 70킬로미터 더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디오피아 내시는 마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고 있었고 빌립은 걸어서 광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짐작해 볼 때 성령께서는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출발하기 2-3일전에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라고 명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3.그리고 하나님께서 둘의 만남을 예비하고 계셨음을 분명히 알게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에디오피아의 고위 관리가 더운 광야 지역을 수레를 타고 가면서 두루마리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이사야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빌립더러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였을 때, 빌립이 달려가서 그에게 질문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읽고 있었던 이사야의 본문은 사 53:7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고난 받으시는 메시아를 너무나 생생히 묘사하는 내용을 마침 읽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시간에, 가장 정확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내시에게 빌립을 보내어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 53장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4편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중 마지막 노래입니다.

내시는 이사야 53:7 이하 말씀을 마침 읽고 있었는데 그는 본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어린 양,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고 굴욕을 당하며 목숨을 잃게되는 이가 누구를 가르키는지 궁금하였습니다.

당시에도 본문의 주인공이 이스라엘을 가르키는 지, 이사야 선지자을 말하는 지, 장차 올 의인을 말하는 지, 오실 메시아를 가르키는 지 논란이 있었기에 그의 궁금증은 더해 갔습니다.
바로 그 때 성령께서는 빌립을 내시가 타고 있던 수레로 이끄시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게’됩니다. 빌립은 아마도 이사야서에서 말씀하는 고난 받는 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에 대해 상세히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진리에 목마른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상황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전도자 빌립을 준비하셨고 그를 미리 이끄시어 광야로 가게 하셨습니다. 수레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관리에게 빌립이 다가 왔을 때 마침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본문 말씀을 일고 있었습니다. 진리에 목마른 한 영혼의 마음이 열려 있을 때 빌립을 통해 전해진 생명의 복음은 능력이 있었고 그 사람은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의 키를 가지고 계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문을 여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문을 닫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원수처럼 여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의 문을 여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또 다른 적국이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회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선교와 복음 전도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을 인정하고 성령의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또하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점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은혜를 체험한 두 사람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순종과 겸손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최선(하나님의 100%)과 인간의 최선(인간의 100%)이 만날 때 이루어짐을 성경의 많은 예를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빌립의 순종에 대한 모습을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큰 성공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하였을 때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8: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전도의 메세지를 듣고, 그가 행하는 표적을 보고 그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뿐 아니라 복음을 전했을 때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낫게 되는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서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도 사마리아는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꺼리는 원수의 땅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을 때 큰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고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는 그에게 더 이상 적대시하는 Red Zone 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시작하기에 좋은 ‘옥토밭’이 되었습니다. 평안한 가운데 그곳에 머물며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를 또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곳은 광야(desert)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야는 강수량이 적어 건조하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고, 밤과 새벽에는 매우 추운 곳이어서 사람이 거주하고 여행하기에 매우 척박한 땅입니다. 또한 광야에 서식하는 독성이 있는 뱀과 전갈, 밤에 나타나는 야생 동물들은 여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계곡이나 동굴 지역에는 강도들이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공격하여 재산을 빼앗고 몸을 해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가까운 광야가 아니라 사마리아에서 150여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가사로 가는 광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루에 40킬로씩 걸어도 나흘길을 걸어야하는 먼 거리입니다.

성령께서 명하였을 때 빌립은 사마리아 지역에 갈때처럼 아무런 불평없이 기꺼이 순종합니다.

27절에 보면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적혀 있는데, 나흘길을 그는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걸어갔습니다.

가서 보니 부와 권세를 가진듯이 보이는 이방인 한 사람이 수레를 타고 가는데 구약 성경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누가는 그 이방인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괸리인 내시라고 설명합니다)

29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말씀하자, 그는 ‘달려가서’(ran up)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빌립의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복음 전도자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으로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전도자가 준비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을 전할 준비(메세지), 어떤 장소에서나 잠을 잘 준비(환경 적응력), 주님이 부르시면 순교할 각오)

핑계를 대지 않고, 미루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순종하는 전도자의 본을 빌립이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빌립을 광야로 이끄시어 인도한 사람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였습니다. 에디오피아는 구약 성경에 ‘구스’라고 불리웠던 지역인데 구스인들은 노아의 자녀들중에 저주를 받은 함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료에 보면 그리스의 호머 시대로부터 헬라인들과 그들의 이웃 민족들은 에디오피아인들을 ‘세상 끝’에 사는 민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시’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거세당한 ‘내시’들을 멀리했습니다. 율법은 내시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신 23:1) 나중에 이사야 5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내시를 수락하심을 말씀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임은 분명하였습니다.

빌립에게, 유대인들에게 ‘땅 끝’처럼 여겨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로 주님께서 이끄신 것은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단기간에 하나님의 복음은 행 1:8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된것입니다. 그곳도 핍박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땅 끝’은 어디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북한이 될 수도 있고, 일본이 될 수도 있고, 복음이 한번도 전해지지 않은 원시 부족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가까운 이웃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 있고, 믿음의 형제 자매중 한명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그 땅 끝’으로 부르실 때, 우리는 순종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 ‘그곳만은 제외해 달라’고 핑계하기 보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어 주십시오. 제가 순종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고 사명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사명을 이루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경험한 두 번째 인물은 에디오피아 내시입니다.

그는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처럼 진리에 목마른 한 영혼이었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고위 관리였던 니고데모처럼 구원에 이르는 도에 대해서 갈급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900여마일이나 되는 먼 거리를 덜컹거리는 수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왔던 것입니다.

그가 한 나라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였다는 말은 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권력과 부를 누리는 사람이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쉬울 것이 없는 그였지만, 이방인으로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율법을 진지하게 공부하였습니다. 예배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육체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순례의 길을 떠났으리라 생각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한 영혼의 순수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면 열릴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에 목말라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불편한 수레 위에서도 그는 이사야서 두리마리를 펼쳐 놓고 큰 소리로 읽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찾되 신비한 경험이나 예언적 은사를 가진 사람의 말을 통해서 찾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구하되 세상의 지식이나 명상등과 같은 세상적 방법으로 구하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읽고 있을 때 구원의 은혜가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펼쳐놓고 읽고 있을 때 성령은 빌립을 그가 있는 수레 가까이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빌립과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내시의 인품은 겸손함입니다.

수레곁에 보니 남루한 한 유대인이 다가와 질문을 하는데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라고 할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그 질문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시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오르게 하고, 읽고 있던 이사야 본문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질문합니다.
“선지가가 말한 것이 누구를 가르킵니까? 자기를 가리킴입니까? 타인을 가리킴입니까?”

흔히 ‘배울려는 마음’(teachable mind)을 가진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울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배우기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비교하고 비평하기를 좋아합니다.

내시는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냄새나고 남루한 한 유대인을 청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을 얻게합니다. 읽고 있던 이사야 본문의 핵심은 ‘고난 받는 종’이 바로 오실 메시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시의 질문은 빌립을 통해 해답을 얻게 하였습니다. 빌립은 ‘고난받는 종’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성경에 예언한 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내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되고 지체하지 않고 근처 물이 있는 곳에서 침례를 받게 됩니다.

진리에 목말라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읽고 공부하며 겸손한 성품을 가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한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날마다 새로운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에게 그 은혜가 임합니까?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자신의 지위와 형편을 다 내려놓고, 진리에 갈급한 심령으로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채우심을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웨인즈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여건을 미리 준비하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순종함으로 광야로 나아가서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한 빌립 집사의 순종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방인으로서 높은 자리에 있었던 에디오피아 내시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빌립에게 질문하였을 때, 구원의 은혜가 임하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에 늘 깨어 순종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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