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들에게 임한 성령”
•본문: 사도행전 8:9-25
7/26/2020 주일 낮 예배
우리는 지난 주에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의 의미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적대시하고 원수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인종과 문화와 편견을 뛰어 넘어 원수의 땅, 사마리아를 거쳐 온 세계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 가운데 쓰임 받았던 인물은 일곱 집사 중 한명이었던 빌립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직접 택하신 사도는 아니었지만, ‘사도적 권능’을 가지고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더러운 귀신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낫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는 원래 교회의 구제 사역과 교회 살림을 책임맡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이었던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빌립에게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은사를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전도이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에디오피아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고위 관리인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전도자로서 살았습니다. 행 21장에 보면 그의 이름이 ‘전도자 빌립’이라 소개되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네 딸도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온 가족이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스데반 순교 이후 사울에 의한 교회의 핍박이 극심하여,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교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 빌립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꺼리는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전통적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비하면 타 민족과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었겠지만, 그 역시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들은 상종하기 꺼려진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깨닫고 기꺼이 사마리아로 나아갔습니다.
순종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복음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에는 ‘큰 기쁨’(great joy)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으로 인해 ‘행복한 소동’이 가득한 사마리아 성에서 일어난 사건의 연속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은 ‘시몬’이라는 마술사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마술사가 많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도 많은 마술사들이 복음에 굴복하여 마술을 행하는 비법을 적은 책들을 모아서 불태우는 일도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몬이라는 마술사는 평범한 마술사가 아니라 소위 신통한 능력이 있는 마술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마술은 능력이 있어서 사마리아 백성들을 놀라게 하였고, 자칭 ‘큰 자’(someone great)라고 자랑하였습니다.
자료에 보면 시몬은 초대 교회 대표적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의 조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시몬이 사마리아에서 뿐 아니라,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로마에서까지 가서 활동한 인물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마리아인 마술사 시몬은 그가 행한 마술로 인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그를 따랐습니다.’ (10) 그들은 시몬을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시몬은 자신을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큰 대리자’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가 마술을 행한지 오래되어 사마리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적인 존재로 여겼고 그를 추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신적 영향력 하에 있었던 사마리아에 빌립을 통해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자, 사람들이 복음에 굴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전도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2절에 보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 마술사 시몬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3절에 보면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 radical change(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술을 버리고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침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자 빌립을 ‘전심으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인지 아닌지는 오늘 본문 후반부에 등장하는 내용을 통해서 입증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빌립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다는 소식들 전해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도 중의 리더격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와 요한을 대표단으로 보냅니다.
그들이 가서 한 일은 복음을 믿고 침례를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성령 받기를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였을 대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마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사도들과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했던 것처럼, 부정한 민족이라고 여겨 상종조차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동일한 성령이 부어진 것입니다.
시몬은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도 이러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이러한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시몬은 성령 충만의 은사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가진 마술의 능력으로 돈벌이를 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상당한 돈을 주면 그 능력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사(선물)을 돈으로 살려고 했던 시몬의 이름을 따서 ‘성직 매매’라는 영어 단어 ‘simony’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어찌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과 은사를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직 매매’는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돈을 받고 교회를 개인에게 팔고, 하나님의 교회의 직분을 주는 조건으로 과도한 헌금(기부)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총회의 임원(총회장, 총무)이 되기 위해 돈으로 로비를 하는 부끄러운 행동들이 한국 교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 한국 교회의 일부의 모습이긴 하지만 부패상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시몬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20-23절까지 걸쳐서 통렬하게 그를 책망합니다.
1)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돈)과 함께 망할지어다(20)
2)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다(21)
3)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주께서) 사하여 주시리라(22)
4)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3)
요약하면 시몬의 믿음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는 믿고 침례를 받았지만 진실된 회개와 온전한 믿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혹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믿는 체’ 한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가르침)에 있었다기 보다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능력”(13)이었던 것이지요. 소위 잘 나가던 마술사였던 자신이 갖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소유한 빌립처럼 자신도 그 능력을 돈 주고 사서 그 능력을 행하여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고, 돈벌이에 이용할려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상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시몬을 향해 먼저 강한 어조로 책망하기를 “네 은과 함께 망할 지어다”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유산) 될 것도 없다”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 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를 줍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아무리 악한 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 기회를 주었지만 시몬은 그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24절 말씀에 보면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대신 기도해 달라고 함으로 그가 온전히 회개한 것 같지 않습니다.
시몬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교회안에도 거짓된 믿음을 가진 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판때에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신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의 교회가 존재하는 한, 알곡과 가라지는 공존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돈벌이나 친교의 수단으로 교회 모임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교회 내에서 힘을 행사할려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희생과 봉사에는 관심이 없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누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돈벌이에 이용할려고 하였던 시몬처럼, 돈을 우상시하여 맘몬이즘의 노예가 된 성도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하셨는데,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위하여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일과 유익만을 위해서 돈을 축적하고 사용한다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심판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십자가의 복음으로 변화되어 구속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생각과 가치관,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5-16)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고백하고 그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날마다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입고,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롬 12:2)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두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내용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임한 성령에 관한 것입니다.
14-18절 말씀에 보면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내게 됩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한 일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였을 대 그들은 성령을 받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의문은, 빌립이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들이 믿고 침례를 받은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성령은 받지 못한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베드로의 전도 설교에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와 성령의 내주는 동시에 이루어 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사마리아인들이 믿고 침례까지 받았으나 한 명도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믿고 침례 받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은 별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주로 오순절 계통의 교단에서는 성령 세례를 중생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합니다. 오순절 지도자의 안수나 방언과 같은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부터 주어지는 선물로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행 2:38의 베드로의 메세지와 배치되는 해석입니다.
두번째 해석은 중생과 침례, 성령의 내주는 동일한 사건임을 전제하고, 사마리아인들이 경험한 회심은 진정한 회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령의 선물을 받지 못하였다는 주장입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에 지적으로는 동의하였으나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지 못하였다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또한 합당하지 않은 것이, 12절 말씀대로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 믿음이라는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시몬의 회심과 침례 받음은 베드로의 책망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사마리인들의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 하였을 때 비로소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게 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칼빈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오늘 본문의 사건은 전적으로 ‘예외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주시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셔서 그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사건은 초대 교회 최초로 원수 관계에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많은 무리가 복음에 반응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어 비유대 지역에 최초로 그리스도를 믿는 무리에 의한 교회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확증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예외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반목과 불화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혹은 사도들에 의한 확인이 없이 독자적으로 교회를 시작하게 된다면 이질적인 문화와 갈등의 역사로 인해 새로운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회심자들에게 성령 주시기를 일시적으로 보류하셨고 사도들에 의한 검증과 승인 이후에, ‘교제와 결속’의 표시로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제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한 성령 안에서 ‘한 몸 공동체’ ‘연합된 교회’가 된 것입니다.
만약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인들의 회심에 대한 소식을 듣고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설령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갔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무시하였다면 성령 받기를 구하는 안수의 기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인종과 문화와 편견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이방인들과 온 세상 가운데에 복음을 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성숙한 신앙 공동체는 사람의 생각과 전통의 우월성을 내세우기 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고 성령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공동체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고 원수 관계에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을 복음 안에서 포용하였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 지역에 전파되게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가 그 지역에도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가 깨닫고 발견한 ‘비밀의 경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6,18)
그리스도의 피는 원수 관계에 있었던 사마리아인들과 화목케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둘이 하나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도, 우리 교회도 사마리아인들을 품었던 예루살렘 교회처럼 넓고 너그럽고 포용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주장을 버리고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복음이 장벽으로 인해 막히지 않고 벽을 넘어서 우리의 이웃과 땅끝까지 전파되는데 쓰임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교훈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몬처럼 돈과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로잡혀 살지 않고,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고,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처럼 아집과 편견, 기득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웃까지도 품고 사랑하는 너그럽고 관대한 우리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