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박해자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 (사도행전 9:1-9)

Posted on 8월 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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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박해자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 (사도행전 9:1-9)

“박해자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
• 본문: 사도행전 9:1-9
8/9/2020 주일 낮 예배

사도행전은 교회의 시작과 확장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 1:8 기록된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됩니다.

우리는 최근 3주동안 스데반의 순교 이후 빌립 집사를 통해 복음이 유대 지역을 넘어 원수의 땅, 사마리아 지역에 전파될 뿐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함을 통해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부어진 놀라운 사건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에서 북아프리카 이방인 에디오피아 내시에게까지 복음이 증거되어 그가 믿고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을 분기점으로 하여 생명의 복음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초월하여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이방인 선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사울(나중에 바울로 개명)입니다.

사도행전 8장까지의 교회의 시작과 초기 복음 전파의 주역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한 사도들과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일곱 집사 중 한명이었던 빌립이었다면, 행 9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바울을 중심으로한 복음 전파의 내용 (그의 회심과 4번에 걸친 선교 여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을 붙일 때 많은 분들은 ‘사울의 회심’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굳이 본문의 제목을 ‘박해자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이라고 붙인 것은 그의 회심이 사울의 의지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호감은 커녕 적대감으로 가득차 있었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열혈 유대 청년 사울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전도자 바울로 변화된 것은 그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그를 거꾸러 뜨리시고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회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이요 은총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택하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찾아 오시는 하나님, 죄인을 찾아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에서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노예 생활의 시기가 마쳐갈 즈음에, 즉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탄식하며 부르짖은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출 2:24-25)

그리하여 하나님은 40년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지내고 있던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하십니다.

온 세상이 어둠 가운데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 없는 민족으로 방황하며 로마의 통치하에서 신음하며 메시아(구원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때,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갈 4:4-5) 하셨습니다.

흑암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참 빛으로 찾아 오셨지만, 어둠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으며 그 빛을 거부하였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9-11)

예수님은 병자들을 찾아 가서 병을 고쳐 주셨고,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가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기에, 뽕나무위에 올라가 있던 키 작은 세리 삭개오를 주목하여 보셨고 그의 집에 머물면서 교제하셨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리고 떠날지라고 자신은 절대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였지만, 여종과 사람들 앞에서 세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하기 까지 하였던 베드로를 찾아 오신 예수님.

절망하고 낙심하여 평범한 어부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 있던 그를 찾아 오셔서, 친히 생선을 구워 나누어 주시면서 그와 교제하시며 그에게 사명을 회복하여 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은 박해자 사울을 주목하고 계셨고, 때가 차매 그에게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이 세번씩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9:1-30, 22:6-21, 26:12-23) 그만큼 사도 바울에게 죄인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찾아 오신 예수님의 은혜와 은총의 사건이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고, 그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와 설교시에 여러번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그 날, 그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나 소위 모태 신앙으로 어릴 때 부터 교회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였지만, 구원의 확신이나 회심의 경험없이 ‘선데이 크리스챤’ ‘명목적인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었던 저에게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1982년 7월초 어느날 밤, 충북 영동 심천에서 열린 여름 수련회장에서 저는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갈 길 몰라 방황하던 저에게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날 밤 이후로 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믿어지지 않았던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졌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삶속에서 넘쳐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도 출신의 그리스도인 중에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은 ‘선다 싱’이란 분이 계십니다. 힌두교 성자로 일컬어 지고 있던 그는 복음에 대해 극도의 적대감을 품고 있었는데, 1904년 12월 18일 이른 아침에 자기 방에서 기도하고 있던 중 찬란한 빛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내가 기도하고 빛을 바라보았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였다. 그 모습은 영광과 사랑의 모습이었다. 만약 그 모습이 힌두의 성육신이었다면, 나는 그앞에 엎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내가 며칠 전에 그토록 모독했던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나는 이와 같은 환상이 내 자신의 상상에서 나올 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힌두어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박해할 것이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너는 그 바른 길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냐?’ 그때에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고 살아 계시며, 내가 본 모습은 예수 자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다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이 놀라운 평화를 얻었다. 이것은 내가 얻고자 했던 기쁨이다. 엎드렸던 자리에서 내가 일어났을 때, 그 환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그러나 비록 그 환상은 사라졌지만, 평화와 기쁨은 그 이후로 계속해서 내게 남아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박해자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먼저 예수님 만나기 이전의 그의 모습을 본문 9:1-2에서 볼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그는 스데반이 분노한 무리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8:1) 그리고 사울은 교회를 잔멸(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며 각 집에 들어가 예수 믿는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깁니다. (8:3)

사울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을 제외하고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유대와 사마리아 멀리 외국의 성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9장 1-2절에 기록된 사울의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의 분노와 적대감이 어떠했는지 잘 묘사 되어있습니다.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Saul was 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against the Lord’s disciples) ‘살인으로 치닫게 하는 위협’으로 가득한 사울의 모습은 광기서린 살인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사울은 주의 제자들에게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넘겨서 궁극적으로 기독교를 전멸시키기 위해 행동을 취합니다.

로마의 시리아 속주에 속한 곳으로 예루살렘으로 부터 북동쪽으로 2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메섹 지역에, 박해를 피해 도망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요청합니다.

당시 로마는 유대를 위임 통치하고 있었는데 로마당국은 유대의 대제사장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였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망명자 소환법’으로 유대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피신하였을 때, 외국에 도망한 범죄자를 유대로 소환하여 재판을 받게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공문을 받아, 다메섹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사울 일행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정오, 26:13) 홀연히(갑자기)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춥니다. 행 22:6 ‘하늘로부터 큰 빛’(bright light), 26:13 ‘해보다 더 밝은 빛’(brighter than the sun)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정오의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갑자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얼마나 그 빛이 강렬하고 밝았던지 그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22:11) 순간적으로 그 밝은 빛으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박해자 사울에게 임한 그 강렬한 빛은 살아계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 빛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 (요 1:9)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비추는 참 빛,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빛이 비추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자들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강한 빛으로 사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 빛은 자기 의로 가득한 사울을 거꾸러 뜨렸고, 위협과 살기 등등한 사울을 순한 양처럼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나중에 변화되어 선교사 바울이 된 이후 기록한 서신서에서 그는 죄인 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찾아오셔서 사도의 사명을 주신 부활의 주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바울에게 너무나 생생한 개인적 체험이자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3-8)

참 빛으로 오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방인 선교를 위한 특별한 사도의 직분을 받은 자임을 확고하고도 자랑스럽게 늘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고전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 1:1)

‘하늘로 부터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은 또한 그에게 “들리는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늘에서 그를 둘러 비추는 빛과 함께 소리가 나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4)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의 눈을 멀게 할 정도의 강렬한 빛으로 인해 땅에 엎드러져 있는 그에게 들린 하늘의 음성은 그를 더 놀라게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말씀”(Logos)라고 하였습니다. (요 1:1)

또한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택하신 백성들을 부르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사 43:1)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으로, 영생으로, 사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말씀하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주인 사래로부터 학대를 당하여 임신한 중에 도망하여 광야에서 방황하던 여종 하갈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창 16:8) 그를 돌보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출 3:4)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시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낙담하여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에게 나타신 부활의 주님은 세번이나 반복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 16, 17)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은 회복과 사명에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가던 자, 사울을 부르신 그 부르심,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4) 그 부르심은 구원에로 초대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악한 사울을 변화시켜 위대한 전도자로 삼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룩한 순교자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가진 하나님의 영으로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목도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추격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포도원을 파헤치는 멧돼지처럼 날뛰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할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의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이 녹아져 있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향한 놀라운 계획이 있단다. 이제는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내가 인도하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복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핍박받는 성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핍박받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심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받을 때 주님도 아파하시며 우리가 기뻐할 때 주님도 기뻐하십니다.

박해자 사울의 이름을 부르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성환아 성환아’ (우리 각자의 이름을 넣어 보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초대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친밀한 교제의 자리로, 회복의 자리로, 소명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만약 우리 중에 생명으로,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시간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 부르심에 진실하게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여기있습니다. 죄인을 부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주님으로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의 뜻대로 살게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옵소서.’

이렇게 기도함으로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자기 의’와 학문과 지식과 특권의식과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 찬 사울은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6)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에게 또 다른 만남들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라는 제자와 바나바라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긴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만남의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웨인즈빌 침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 선교 역사상 가장 크게 쓰임받았던 전도자 사도 바울의 극적인 회심의 사건이 주는 영적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박해자 사울을 찾아 오신 부활의 주님은 빛으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세상을 향한 눈, 율법을 향한 눈,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한 그의 눈을 멀게한 그 찬란한 하늘의 빛은, 그를 구원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참 빛이 되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사울을 찾아 오신 부활의 주님은 그의 이름을 개인적으로 부르심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의 친밀한 부르심은 사울을 향한 사랑의 부르심이었고, 구원에로의 부르심이었고, 위대한 소명에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고 계시며 부르고 계십니다.

생명의 빛으로 나아오라고 하시며,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나아오라고 부르십니다.

날마다 나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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