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스데반의 설교 II,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있는 인생”(사도행전 7:17-36)

Posted on 6월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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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스데반의 설교 II,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있는 인생”(사도행전 7:17-36)

스데반의 설교 II,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있는 인생”
•본문: 행 7:17-36
6/28/2020 주일 예배

우리는 지난 주에 사도 행전 7장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의 첫 번째 시간으로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의 성취와 요셉을 통한 구원 사역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스데반 설교 시리즈의 두 번째 시간으로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모세는 12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사용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40년 단위로 세 부분으로 명확히 나누어 집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숫자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완전한 숫자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10 또한 완전수입니다. 두 개의 완전한 숫자, 4와 10이 곱한 수이니 ‘완전함’ ‘완벽함’의 의미를 갖고 있는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창세기7: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 땅에 비가 40일 동안 내렸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율법을 받습니다. (출 24:18)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신 8:2-5) 이스라엘의 초대 왕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모두 40년간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무서워 도망갔고 40일 동안 호렙 산에서 기다리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왕상 19:8)

신약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후,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 4:2)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후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준비시킨 후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한 숫자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포함된 숫자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는 ‘고난’, ‘훈련’ ‘준비’의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대로 “때” “시간” 을 의미하는 헬라어에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인지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함을 받고 구원 받게 된 날, 그날은 다른 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의미있는 날,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배우자를 만나 한 가정을 이루게 된 날 또한 우리 모두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삶도, 인류 역사도 하나님의 시간표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인도하심이 없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표 가운데 살았던 한 사람, 자신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섭리와 강권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입니다.

말씀드린대로 그의 인생, 120년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 40년은 애굽의 궁전에서 왕자로서의 생애였고, 두번째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의 40년이었고,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부터 인도하여 험난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끈 영적 지도자로서의 40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모세의 40년으로 나누어진 인생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출생과 성장 (애굽 왕자로서의 삶) (7:17-22)
• 미디안 광야에서의 훈련 (목자로서의 삶) (7:23-29)
•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순종함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 (7:30-36)

출생과 성장 (애굽 왕자로서의 삶) (7:17-22)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 3명을 설교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 중에서 모세의 생애에 대해서 아브라함과 요셉보다 더 길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고발한 죄목 중 하나가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애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참 정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함을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입니다.

17절에 언급한것과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한지 400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 (창 15:13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가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암울한 시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1장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강하여지자 애굽의 왕 바로가 산파를 시켜서 히브리 남자 아이는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히브리 민족이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히브리 사내 아이들이 모두 죽게 되는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기 시작할 시간에 하나님은 미래의 지도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가장 캄캄한 밤에 한줄기 빛을 비추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만의 계략에 의해서 전멸당하기 직전에 미리 바사(페르시아) 왕국의 왕후로 에스더를 예비하여 주셔서 “죽으면 죽이리이다”의 신앙으로 왕에게 간청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이 땅에 왔지만 그 백성들을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헤롯 왕은 또 다른 왕이 태어 났다는 소문을 듣고 베들레헴과 인근 지역에 있는 2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구원자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20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대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그 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no ordinary child, NIV) 아이였습니다. 원어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아이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그의 미래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의 믿음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세는 죽임을 면하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 요게벳에 의해서 3달간 양육받다가, 더 이상 몰래 키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아이를 넣어 나일강에 띄워 보내게 됩니다. 마침 나일강에 목욕하기 위해 나오던 애굽 공주가 그 갈대상자에 누인 히브리 아이을 보게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아이를 아들로 삼아 이름을 모세라 하고 (‘건져냄’) 왕궁에서 키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가 아니었더라면, 애굽 공주가 조금만 늦게 강에 나와 강물위를 떠가는 갈대 상자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설령 히브리 아이를 보고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았더라면 모세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겠습니까?

또 놀라운 사실은 그 모습을 강가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공주에게 다가가서 유모를 소개해 줄까요 라고 묻게 되고 공주의 승락을 받고 모세의 친엄마(요게벳)을 소개해주어, 요게벳은 왕궁에서 공주로 부터 돈을 받으며 젖 뗄때 까지 모세를 양육합니다. 요게벳은 모세를 젖 뗄때 까지 (3-5세가 될 때까지) 모세를 키우면서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과 야훼 하나님 신앙 교육을 시켰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됩니다.

모세의 그 후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로서 40년을 스데반은 22절에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당시 애굽은 세계의 최강대국으로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뛰어난 민족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실의 왕자로서 당시 최고의 학자들로 부터 학문을 배웠을 것이며, 전략과 전술을 연마하고, 왕실의 법도를 익혔을 것입니다.

1세기에 활동한 유대의 철학자요 역사학자인 필로(Philo)는 그의 책에서 모세는 애굽 뿐 아니라 멀리 그리스의 최고 학자들로 부터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장차 2백만명이 넘는, 애굽에서 4백년 이상 노예 생활을 한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 오경(토라)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한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모세를 준비시킨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는 인생에게는 우연이란 없고, 낭비되는 불필요한 시간은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 같고, 때로는 고통스런 시간의 연속일 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디안 광야에서의 훈련 (목자로서의 삶) (7:23-29)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살고 있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의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그의 형제(동족)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났다” (7:2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왕자로서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그의 마음 속 한편에는 노예로 고통받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의 형편에 늘 마음이 쓰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동족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해볼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자기 동족 한 사람이 억울한 일 당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애굽 사람을 쳐 죽이게 됩니다. 모세는 자기가 한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그렇게 깨달으리라 믿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화해시키려 하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 중 한 사람이 모세더러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7:27-28)고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의 모든 행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급히 도망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나그네로 40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모세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관리와 재판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백성들로 부터 거절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슥 4:6)

모세에게는 그러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특별한 연단과 훈련의 장소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미디안 광야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40년 동안 낮아지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왕자에서, 이름없는 목동으로 무려 40년간을 지냈습니다. 자기의 목축도 없이 장인 이드로 밑에서 심부름꾼처럼 40년을 보내었습니다.

육체는 연약해 지고 얼굴에 주름은 늘어나고 미래의 꿈과 비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배웠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십보라와 결혼을 하여 아들 두명을 얻었습니다. 첫째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지었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나그네’입니다. 둘째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지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살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잠시 광야 같은 곳에서 머물다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임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은 모세에게 있어서 ‘자신의 힘을 빼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 최고의 학문과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무섭게 내리치는 천둥 번개를 보며, 사나운 맹수와 맞닥드리며, 그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무릎에서 듣고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경험하였습니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다듬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로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광야의 시간이 언제였습니까? 현재 나는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외롭고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나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불로 연단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고난의 시간, 광야의 시간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온전한 하나님의 그릇으로 변화되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순종함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 (7:30-36)
40년의 연단의 시간이 되었을 때, 30절 (“사십년이 차매”), 천사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시내산 광야 가시 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는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히 무서워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무서워 떨고 있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7:33) 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당시 종들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인들만 신발을 신고 다녔습니다. 종들은 주인이나 주인의 손님들이 집으로 들어오면 신발을 벗기고 발을 씻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이 모세의 주가 되시며 모세는 하나님의 종임을 알려 주십니다. 네 스스로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지 말고 주인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함을 알려 주십니다. 모세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또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모세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거룩한 땅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데반 설교의 핵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은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에 지어진 성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의 영광이 머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스데반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하자 그도 예수님과 동일한 죄목으로 고발하고 심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서 있었던 그곳은 가나안 땅도 아니었고 예루살렘도 아니었고 성전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이방인의 땅, 미디안 광야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곳은 “거룩한 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출 20:24)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주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사업장에 있든지, 교회당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에 함께 하시며, 복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거룩한 땅”에서 모세는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먼지와 때로 가득한 신발을 신은 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교만의 신발을 벗어야 했고, 부정의 신발을 벗어야 했고, 과거의 신분/지식/경험의 신발을 다 벗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7:34)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7:35)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예배의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여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벗어야 할 신발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교만과 탐욕과 이기심의 신발’을 벗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7:36) 된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신발을 벗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발의 신발을 벗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능력있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을 벗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첫 40년은 애굽의 왕자로서 애굽의 학문과 지식을 연마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지도자로 쓰임받기 위해 광야에서 평범한 목동으로 살았던 4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고난의 훈련을 통해 그의 모난 부분이 다듬어 지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불꽃처럼 나타난 “거룩한 땅”에서, 그는 그의 신발을 벗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겸손한 지도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마지막 40년 인생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위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웨인즈빌 침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인생 또한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전에 나를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함께 하시며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나의 힘과 나의 능력 의지하지 말고, “나의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남은 인생 하나님께 쓰임받는 복된 인생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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