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행 12:25-13:3)

Posted on 10월 19, 2020

Exemple

주일설교 –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행 12:25-13:3)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 본문: 사도행전 12:25-13:3
10/18/2020 주일 낮 예배

2020년 1월 첫째부 부터 시작한 사도행전 설교가 중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작년 9월말에 부임한 이후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주일 낮 설교는 권별 말씀 강해 형태로 차근 차근 묵상하며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첫번째 성경으로 사도행전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경 본문 중에서 사도행전을 택한 이유는, 먼저는 제가 성도를 목양하는 목회자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하는 단순한 바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할 초대 교회의 모습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고 한마음과 한뜻으로 세워지는 교회, 항상 기도하고 성령 충만한 교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되는 교회, 환난 중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교회.
우리 교회도 초대 교회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걸맞는 성도들로 인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먼저 “예배 공동체”입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기도 공동체”입니다. 복음으로 인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며,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간구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성령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마 28:18-20)에 순종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의 본질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2주전에 우리는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시작에 대한 스토리를 공부하였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무명의 전도자들의 복음 전파로 세우진 안디옥 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와, 이방인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인 바울의 영적인 지도로 큰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숫적으로 성장하였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하여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설립된지 일년 남짓 지났을 무렵에 팔레스타인과 인근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개척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그 힘대로’ 부조를 하여 바나바와 사울 편으로 전달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의 시작 단계에서 부터 ‘베푸는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남보다 더 여유 있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넉넉하지 않는 형편이었지만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초대 교회중에 안디옥 교회를 ‘선교적 교회’의 모델로 삼습니다. 최초의 이방인 교회로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가지고 그들의 지도자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물심양면으로 동역한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용어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는 아닙니다. ‘선교 지향적인 교회’ ‘선교하는 교회’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선교적 교회’라는 개념은 생소하리라 생각합니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라는 개념은 인도 선교사 출신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0여 년간의 인도선교를 마치고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 70년대 영국의 영적상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이 더 이상 선교사 파송국이 아니라 오히려 인도처럼 선교가 필요한 선교지로 변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웅장했던 교회는 텅텅 비어가고 술집과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가는 영국을 바라보며 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뉴비긴의 이런 선교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북미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오랜 연구 끝에 ‘미셔널 처치’라는 용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북미에서도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국가가 더 이상 선교를 주도하는 기독교 중심국가가 아니라‘ 복음에 의해 다시 변해야 하는 선교현장’ 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건물 중심의 교회보다는 삶의 현장을 중심으로 모인다.
– 세상 속으로 보냄받은 자로서의 사명 강조, 성육신한 교회(incarnational church)
2. 계시에서 경험으로
–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 배움에 그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경험되어지는 신앙
3. 믿음에서 따름으로
–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믿음보다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본받는 제자도에 촛점
4. 성장에서 확장의 개념으로
– 교회 자체의 성장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포커스

하지만 최근에는 ‘선교적 교회’에 대한 오해도 많이 있고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님은 제안하기를 ‘선교적 교회’보다는 ‘선교사 교회’(Missionary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교하는 교회’라기 보다 ‘교회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선교사 교회’(missionary church)의 모델로서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살펴 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도전을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안디옥 교회는 ‘개방성’(openness)과 ‘다양성’(diversity)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뿌리부터 ‘순혈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설립한 사람들은 지중해의 작은 섬 구브로와 멀리 북아프리카 (오늘날 리비야)에 위치한 구레네 출신이었습니다.

디옥이라는 도시도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국제적인 도시였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과 인종들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안디옥 교회 설립자들도 낯선 외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을 소개하는 글에서 교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대해 엿볼 수 있습니다.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 유대인으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예루살렘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아 안디옥 교회에서 초대 목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시므온이라는 이름은 흔한 유대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가 유대인임을 알려주고 있고, 니게르(‘검다’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검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혹자는 이 시므온(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사람 시므온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구레네 출신으로, 구브로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안디옥의 이방인들에게 맨 처음 복음을 전했던 구레네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마나엔은 ‘위로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므나헴의 헬라어 말입니다. ‘젖동생’이라는 호칭은 왕자들과 함께 양육 받을 수 있도록 왕궁으로 보내졌던 왕자들 또래의 아이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헤롯 대왕의 막내 아들인 헤롯 안디바입니다. 마나엔은 헤롯 안디바의 절친한 친구여서 헤롯과 함께 궁궐에서 함께 성장한 것 같습니다. 왕실에서 성장한 마나엔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헤롯 가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입니다.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유대인이며 바리새인으로서 어릴때 부터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대학자 가마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하였고 장래가 촉망받는 유대 청년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대제사장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전도자, 바울로 살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 고향 다소에 칩거하던 그는 바나바의 요청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선지자들과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인종도 다양하고 (유대인, 이방인), 출신 지역도 다양했습니다 (다소, 구브로, 구레네, 팔레스타인). 사회적 신분도 왕실 출신(마나헨)도 있었고 유대 엘리트 출신(사울)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시므온, 루기오)도 있었습니다. 많는 학문을 소유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안디옥 교회를 섬기는 신실한 일꾼들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출신 배경을 내세우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로서 은사에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선교적 교회로서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세워가는 개방적인 교회, 열린 교회였습니다.

두번째로 안디옥 교회는 온전한 예배 공동체였습니다.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주를 섬겨’ (헬. ‘레이쿠르게오’:국가를 위해 자비로 봉사하거나 사회를 위해 공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의미함. 본문에서는 종교적인 차원으로 사용되었는데, 기도와 예배와 가르침과 기타 다른 방법으로 주를 섬기는 것을 의미함. NIV: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KJV: ministered the Lord and fasted)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헌신적으로 기도하는 일과 예배 드리는 일, 그리고 11:26 근거해 볼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자신들을 주께 드렸습니다.

신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의 감격 없이 이웃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living sacrifice)로 드려짐이 없이 선교의 열정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열방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악한 민족 앗수르도 구원하시기 위해 요나를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원수처럼 여기던 니느웨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으로 회개하고 순종하여 니느웨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자 왕와 모든 신하들, 모든 백성들, 심지어 동물들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마음이 몸시 불편해 집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찌 저 사악한 민족에게 긍휼하심을 베푸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투덜거리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던 박넝쿨이 말라 따가운 햇살이 그의 머리를 내리쬐자 그는 하나님께 성을 내며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Should I not have compassion on Nineveh)하시니라” (욘 4:10-11)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고, 기도의 불씨를 지펴주며, 영혼 구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식은 육신을 지탱하는 음식조차 끊고 집중하여 하나님께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마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이후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도 금식하며 기도한것으로 보아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금식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려지는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기도와 말씀 공부에 헌신함으로 영혼 구원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공동체였습니다.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 할 정도로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으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 충만/성령 침례)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행 1:4-5)고 하셨습니다.

또한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120여명의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불처럼, 바람처럼 임했고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으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스데반 집사는 죽음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의 복음을 전했으며,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할 때까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회개한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부어졌습니다.

성령은 빌립 집사를 이끌어 광야로 가게 하셨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박해자 사울에게도 충만히 부어졌고,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베드로를 이끌어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선교를 주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면,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에게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따로 세우다”(set apart)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경계를 지어 다른 것들로 부터 구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원어에는 ‘데 모이’(즉시 자기에게)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자기에게(성령)에게 즉각적으로 구별하여 세울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시키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3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런데 지금 안디옥 교회는 누구를 파송하고 있습니까? 바나바와 사울입니다.

바나바는 말하자면 안디옥 교회의 초대 목사이고 사울은 교회내 가장 탁월한 성경 교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담임 목사와 최고의 성경 교사를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명령하셨고, 교회는 즉각 순종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냅니다.

말이쉽지 실제로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천막 혹은 상가 지하실에서 시작한 교회를 크게 부흥하여 큰 교회로 만들고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훈련하여 파송하고 선교사를 후원하고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아름다운 교회를 세운 목사님이 어느날 주일 예배 설교 중에 “제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말라위 부족 마을의 선교사로 저를 부르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저를 선교사로 파송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성도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습니까? 그리고 흔쾌히 파송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디옥 교회는 그렇게 했습니다. 기도하는 공동체, 예배에 헌신하는 공동체였기에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었겠지요. 그리고 순종의 결단이 동반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기 희생을 실천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성도들이 가장 사랑하는 목회자와 성경 교사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원대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선교사로 기꺼이 파송한 것은 그들안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살려고 하면 죽게 되지만 한알의 밀알처럼 죽으면 많은 생명을 낳게됨을 그들은 알았기에 예수님처럼 자기 희생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권면 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고 했습니다.

주님의 내어줌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고통 가운데 살고 있을 것이며 영원한 심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부요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항상 나의 유익과 나의 이익을 먼저 구하지 않습니까? 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나의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먼저이고, 우리 구역이 다른 구역보다 중요하고,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내가 조금 손해보고 나의 것을 베푸는 삶, 우리 교회의 필요도 넘치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대한 비전을 위해 우리의 소중한 자원들을 나누는 삶을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선교에 힘쓰는 교회로 알려져 있고, 우리 모두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처럼 ‘선교적 교회’ ‘선교사 교회’로서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위해서 안디옥 교회의 모범을 따라서 ;
1)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품는 열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기도와 금식, 말씀으로 훈련되어 온전한 예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자기 희생을 실천하는 교회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웨인즈빌 침례교회가 이 시대의 또 하나의 안디옥 교회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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