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사도행전 5:12-16)

Posted on 4월 25,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04-26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설교 –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사도행전 5:12-16)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본문: 사도행전 5:12-16
4/26/2020 주일 예배

19세기 영국 출신으로 ‘고아들의 아버지’ ‘5만번 기도 응답받은 사람’으로 유명한 조지 뮬러라는 분이 있습니다.

조지 뮬러는 1805년 9월 27일, 지금은 독일로 편입된 프러시아의 작은 마을인 크로펜슈테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세관원의 아들이던 그는 스무 살까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그저 은퇴 후 아들의 목사관에서 살고 싶은 목적에 아들이 성직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조지 뮬러는 16세 때부터 습관적 도벽과 만성적 거짓말, 음주에 빠졌고 사기죄로 5주 동안 감옥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1825년 그가 기독교로 회심하기 전까지 본인이 인정하는 바에 따르면 짓지 않은 죄가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임종하는 순간에도 그는 술에 취한 채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던 독일 할레대학에서 우연히 한 기도모임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모임이 그의 인생 전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공부하고 프린트물 설교를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회심의 경험은 참석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뮬러는 무릎을 꿇어본 적도, 그런 모습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모임 전체는 영적 분위기로 가득했고 그는 거기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지 두 달만에 선교사로 헌신한 그는, 1829년 24세때에 유대인 선교를 위해 런던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선교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심각한 병을 앓았고 거의 죽을 뻔 했습니다. 뮬러의 인생에 또 다른 방향 전환이 일어난 것은 병을 회복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후 뮬러는 브리스톨에 있는 베데스다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사람들로 넘쳤던 교회는 쇠퇴하여 6명이 모일 정도로 작아져 있었습니다. 뮬러는 하나님께 맡기고 열정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늘어났고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교회는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뮬러는 1834년 브리스톨에서 교회 사역 중 성경지식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목적이었습니다. 특히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학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후원했습니다.

당시 브리스톨 인근에서는 유행성 콜레라로 고아들이 급속히 늘었습니다. 뮬러는 즉각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835년부터 고아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거대한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마침 하나님은 이 사역을 시작하기 나흘 전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는 말씀으로 확신을 주셨습니다.

조지 뮬러는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며 하나님께 1000파운드와 도울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다섯 달만에 재정과 인력은 공급됐습니다. 30명의 소녀들을 자신의 집에 수용하며 고아원을 시작해 나중엔 130명 어린이를 위한 세 개의 건물을 건립했습니다. 1845년에는 원생들이 300명으로 늘었는데 이들을 위해 1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금액이 필요했습니다. 뮬러는 다시 기도했고 1849년 애쉴리다운이란 곳에 300명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의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1870년까지 애쉴리다운에는 10만 파운드 넘는 다섯 개 건물이 추가로 건축됐고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라났습니다. 모든 재정은 일체의 부채 없이 해결됐고 사역자들은 광고나 요청 없이 오직 기도의 결과로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고아원에 머물렀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고아원을 떠나면 조지 뮬러는 축복기도를 해 주었고 성경을 선물했습니다.

한 고아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내 소지품은 성경과 옷들과 반 크라운의 돈이었다. 그리고 그 중 최고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조지 뮬러의 축복 기도였다.’ 또 다른 아이는 ‘내게 일어난 가장 위대한 일은 뮬러의 고아원에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서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875년 70세이던 조지 뮬러는 고아원 사역을 이양했습니다. 이후 설교와 가르치는 사역에 헌신합니다. 뮬러는 하나님에 대해 그가 발견한 진리를 많은 청중들에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이후 17년의 선교여행 동안 미국, 인도, 호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 42개국을 순회하며 설교했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통틀어 20만 마일(32만㎞)을 다녔습니다. 그는 1892년 88세에 여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제가 조지 뮬러의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는 것은 평범한 한 사람의 회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청소년 시절 음주와 도벽과 방탕에 빠져 소망없이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어 그의 일생을 주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통하여 19세기 산업 혁명의 후유증으로 시름하던 영국 사회를 깨우고 복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도전을 주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다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붙잡혀 심문을 받은 이후 풀려나게 되었을 때 모여 있던 무리들에게 가게 됩니다.

그들에게 사도들은 그들이 당한 일과 제사장과 장로들이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를 전하였을 때에 그들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위협에도 조금도 두려움 없이 기도하기를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행 4:29-30)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은 그들의 담대한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신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기 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막 16:17-18)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막 16:20)

마가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입니다. 표적과 기적들은 주께서 역사하심의 증거였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의 진실성을 확증하는 표징이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3장에 기록된 대로 나면서부터 앉은 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목격한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연이어 일어나는 많은 표적과 기사로 인해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그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믿고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3절 말씀에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고, 사도들이 행하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 많은 백성들이 사도들을 칭송하였는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사도들의 무리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None of the rest dared to associate with them.)

왜 그들은 사도들의 기적을 보고도 믿은 무리 가운데 합류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 당시부터 예수님과 제자들을 잘 알았고 멀리서 따라 다니며 말씀을 듣던 자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당하시고 죽자 큰 두려움에 휩싸였을것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심문을 당하고 위협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 또한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러한 운명에 처해 질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얼마 전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감히 사도들의 무리에 합류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한 두려움을 삶의 주인되신 예수님께 내어 맡기고 좁은 길,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15절 말씀에 주께로 돌아온 많은 사람들은 사도들이 지나가는 소식을 듣고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 중풍 병자의 친구들이 중풍 병자의 병을 낫게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신 집의 지붕에서 침상에 친구를 달아 내렸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절박함과 병을 낫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도들이 지나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과 직접 맞부닥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베드로가 그 길을 지나갈때 그의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라는 마음으로 병든 사람들을 침대와 요 위에 누인 채 혼잡한 거리로 달려 나왔습니다.

병든 환자를 메고 나온 가족과 친구들의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해 가던 길에서 만난 열두해를 혈루병 앓던 여인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당시 혈루병은 부정한 질병으로 율법에서 규정되었기에 그 병에 걸린 사람과는 접촉해서도 안되며 그 환자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보통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공중의 모임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수 많은 인파로 인해 도무지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음을 얻으리라는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인파를 뚫고 지나가시던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가져다 댑니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눅 8:44)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만지심을 아셨습니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니라” (눅 8:46)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간절함과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만진 것을 아시고 그 여인의 불치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아마도 병자들을 침상과 요에 누인채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와 동일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그림자 자체에 신비한 효험이 있기 보다는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서 전도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9:11-12)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도 바울의 손을 빌어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16절에는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치유 사역은 전인적인 사역이었습니다. 육신의 질병 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질병까지 치유케 되는 치유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행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이 사도들은 불과 얼마전까지 겁쟁이요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번씩이나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고 저주하였던 베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실 때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기에 바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삼년씩이나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천국 복음을 배웠고 예수님의 삶을 보았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목격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낙망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무리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났기에 변화된 사람들이 될 수 있었나요?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확신을 주시고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대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의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는 베드로와 사도들은 전혀 다른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손은 평범한 어부의 손, 세리의 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손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입은 허공에다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없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메세지를 전하는 입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거친 발은 비록 먼지로 덮여있는 냄새나고 더러운 발일지언정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보잘것 없고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들,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펼쳐나가십니다.

그들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펼쳐가는 하나님의 손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

베드로에게,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니까 그들은 표적과 기적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고 그림자에만 덮여도 병이 나을 만큼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 볼 때는 한 없이 실망하고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못하고 믿음이 부족하여 흔들릴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은 연약하지만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어리석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지혜롭고 강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이 세상 가운데 베푸는 치유의 손길, 사랑의 손길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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