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그 이름을 위하여 (사도행전 5:17-42)

Posted on 5월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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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그 이름을 위하여 (사도행전 5:17-42)


“그 이름을 위하여”
•본문: 사도행전 5:17-42
5/3/2020 주일 예배

흔히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다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순교자의 피위에 세워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때부터 교회는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수 많은 핍박을 당했으며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무신론 철학자였던 볼테르는 사람들에게 늘 말하기를 ‘성경은 사기꾼이 지어낸 책이며, 100년이 지나지 않아 성경은 이 지구상에서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며, 기독교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나서 그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그의 집은 성경을 인쇄하는 인쇄소가 되었고 그의 창고는 성경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고난과 핍박이 심해질 수록 교회의 생명력은 강해졌고 복음은 더욱 힘있게 전파되었습니다.

유태계 루마니아인으로 루마니아의 공산 치하에서 고난을 당했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한 살때 고아가 된 그는 무신론자로 살아왔는데, 어느 산간 마을에 살고 있던 나이 많은 목수가 전해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교회의 지도자로 사역하던 중 나찌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구타를 당하였고, 공산당이 루마니아를 통치하게 되어 지하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극심한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1948년 2월 29일 당국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고문을 당했는데, 척추와 뼈들이 부러졌고 12군데나 칼에 맞았고 18군데나 화상을 당하였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일주일 만에 복음을 다시 전하다가 3년후에 다시 투옥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잡혀 가서, 아들 미하이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유랑자가 되었고, 그 아들을 불쌍히 여겨 몰래 도와 주었던 여 성도들도 잡혀가 매를 맞아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거꾸로 매달려 채찍에 맞는 것은 보통이고, 속옷만 입고 냉동실에 끌려가 얼어 죽을 것 같으면 다시 따뜻한 방으로 옮겨졌고, 몸이 풀리면 다시 냉동실에 잡아 넣는 고문을 반복적으로 당했습니다. 1965년 그를 돕던 친구들에 의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고, ‘순교자의 소리 선교회’를 설립하여 전 세계에서서 핍박받는 성도들을 지원하고 공산권과 회교권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뿐 아니라 구름같이 허다한 수 많은 크리스찬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에 맞고 구타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제한할 수 있었지만 복음은 가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에 오히려 고난과 핍박이 강해질 수록 더 힘있게, 능력있게 전파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들이 당한 두 번째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전에 나누었던 사도행전 4장 말씀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 종교자들에 의해 잡혀 옥에 갇히게 되고 공회 앞에서 심문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공회 앞에서 오히려 더욱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그들을 보고 놀란 유대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하고 그들을 풀어줍니다.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말미암아 온 교회와 예루살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사도들이 민간에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고, 병든 사람들과 귀신에 사로잡힌 자들을 낫게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대적하는 무리들

그러자 4장 1장에 기록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 즉 제사장들, 사두개인들, 성전 맡은 자(경비대장),이 사도들을 대적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내에서 그 주간에 직무를 행하고 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전 맡은자(5:24)는 지도적인 제사장 가문의 일원이며, 대제사장에 버금가는 지위(서열 2위)에 해당합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가계 출신들로 이루어진 유대인 종파로 성전을 관리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나 인격적인 메시아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 중 한명의 대제사장이 산헤드린(공회) 의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17절에 보면,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그들 모두의 마음속에 ‘시기’ (zelos, 열정)가 가득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의 잘못된 열정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율법을 준행하는 자들이라고 자부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단지 갈릴리 출신의 무식한 사람들이 행하는 표적과 메세지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도를 따르게 되자 그들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무리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일어나는 시기심과 질투는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비교하는 마음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 불평이 가득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는 시기심이 자라나게 됩니다.

선지자 사무엘로 부터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은 자신의 직분에 감사하며 충실하지 못하고, 충신이었던 다윗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시기심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게 됩니다.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우리 안에 나도 모르게 자라나고 있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셔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보호하시는 하나님

시기심에 가득한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다시 잡아다가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미 한번 경고를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더 큰 형벌을 가할려는 의도로 사도들을 체포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도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주의 사자(천사)를 보내어 밤에 옥문을 열고 그들을 끌어 내게 하십니다.

‘주의 사자’라는 말은 사도 행전 다른 곳에서 네번 사용되었습니다.

행 7장에 스데반이 주의 사자에 대해 말하고 있고, 8장에서 주의 사자가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여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에게 이끄십니다. 12장에서는 주의 사자가 옥에 갇혀 있던 베드로를 풀어주며, 주의 사자가 교만한 헤롯을 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주의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사도들을 보호하실 뿐 아니라 20절 말씀에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라는 메세지를 전해 줍니다.

행 18장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중에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무리들이 대적하여 비방할 때에 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10)

하나님은 주의 사자(천사)들을 보내셔서, 때론 환상 중에 직접 나타나셔서 사도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러한 메세지는 환난 중에 있던 사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함과 확신 가운데 백성중에 나아가 힘있게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주의 종들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천사들을 보내 보호하시며 그들에게 친히 위로와 격려의 말씀과 복음 전도의 사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부활 후 승천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마 28:20)

히브리서에서도 약속하시기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 13:5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날개 아래 피하러 오는 자를 품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사도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때로는 천사들을 보내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왕들이나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70년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때 바사 왕 고레스를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가마리엘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율법 교사(율법 학자)였습니다. 그는 당대에 하나의 학파를 형성한 유명한 율법 학자였으며 바울은 그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자는 아니었지만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공회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애려고’합니다. 그들의 목숨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가마리엘은 공회원들을 설득합니다. 드다와 갈릴리 유다의 예를 들면서 ‘사도들의 주장과 사상이 사람으로 부터 났으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 부터 났으면 우리들이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며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한다고 말하였을 때에 그곳에 있던 공회원들이 그말을 옳게 여겨서 사도들의 목숨을 해하지 않고 채찍질하고 경고를 주고 풀어줍니다.

가마리엘은 알지 못하였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진행하기 위해서 택한 사람들을 사용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바꾸어 선을 이루게 하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롬 8:28)

• 담대한 증거

행 4장에 기록된 것과 동일하게 사도들은 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축되지 않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자, 그들은 그들에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기 위해 모여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그 소식들 들은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소집하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게 합니다. 이해 되지 않은 것은 사도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텐데 그들은 어리석게도 감옥으로 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옥 문은 굳게 잠겨있고 지키는 사람들이 그 문을 지키고 있었지만 감옥은 비어 있었습니다. 전하는 사람이 와서 그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전 맡은 자(경비대장)가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공회 앞에 세워 심문을 시작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전에 경고한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명령을 어긴것에 대해 꾸짖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는 것에 대해 책망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공회 앞에서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3.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
4.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 되신다.

공회 앞에서 사도들은 조금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생명의 복음, 믿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생명의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들에게는 공회 앞에서 심문 받는 그 장소가 복음 전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이사(황제)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기 전 가이사랴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직접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자,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8)

바울의 대답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행 26:29)

얼마나 담대하고 확신에 가득찬 말입니까?

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바울처럼 사도들도 담대하게 유대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합니다.

42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도들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구원자, 예수는 메시야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41절에 사도들은 그 이름(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생명의 이름이요 그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모든 이름 보다 존귀한 그 이름을 위하여 사도들은 고난받고 핍박받는 것을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하였습니다.

뇌성 마비 장애 시인 송명희 시인은 예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찬송시로 지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 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어서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시인이 노래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버려진 이름이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그 이름의 비밀을 아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이름 구원의 이름 사랑의 이름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육체적으로 억압하고 채찍질하고 잠시 감옥에 가두어 두었지만, 하나님의 복음에 쇠사슬을 맬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은 매이지 아니하며 억압과 핍박의 가시덩쿨을 뚫고 생명의 씨앗을 땅끝까지 흩뿌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담대히 생명의 복음을 전한 사도들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있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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