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사도행전 5:1-11)

Posted on 4월 18, 2020

Exemple
sermon date 2020-04-19
sermon manager 박성환 목사

주일설교 –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사도행전 5:1-11)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 본문: 사도행전 5:1-11
4/19/2020 주일 예배

미국에서 세탁소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미국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자 세탁소를 하면서 수입의 일부분으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탁소를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이전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맡겨진 세탁물의 안주머니에서 2천 7백 달러가 발견되자 그는 투덜거리며 말했습니다. “하는 일도 힘들고 자존심도 상하는데, 이제는 시험거리까지 생기는군.”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그 세탁물의 주인이 오자 그 사람에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왜 이런 것으로 나를 시험하는 거요?”

얼마 후 세탁물 주인은 이 사람을 다시 찾아와 세탁 공장의 운영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 세탁물 주인이 항공사의 부사장이었던 것입니다. 세탁소의 주인은 현재 700명의 직원을 고용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정직한 자가 이 세상에서 결국 인정받고 성공한다는 미담의 일부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부부의 비참한 종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 기록된 내용은 유무 상통하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과 ‘위로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바나바의 헌신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없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고 밭과 집이 있는 자는 팔아서 그 판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에게 주었고 사도들은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가난한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밭과 집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하루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분명 빈부의 격차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물질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었기에 물질을 서로 나누며 물질로 서로 섬기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4장 마지막 절에는 그 중에 레위족 출신의 바나바라는 사람은 “자신의 밭을 팔아서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장에도 이와 유사하게 재산을 팔아 헌금한 한 부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 부부에게도 토지가 있었고, 그 토지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바나바의 스토리와 큰 차이가 없이 보입니다.
하지만 부부에게 임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통해 부부에게 큰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하게합니다.

먼저 5장 1절 첫 구절은 원어 ‘데’ (또한)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데 개역 개정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4장 마지막 부분의 바나바의 행위와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위를 비교하기 위해 ‘데’라는 접속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토지를 팔아 그 중에 얼마를 감추고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둡니다.
그들 또한 하나님께 헌금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드렸으나, 사도들을 속이고 판 것중에 일부는 감추고 일부만 드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부정직의 죄이고 두번째는 위선과 탐욕의 죄입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토지의 팔아 일부를 헌금하기로 작정하고 사도들에게 그 일부를 드렸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토지를 팔아서 그 일부를 감추고 일부를 헌금한것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감추었다’는 단어는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된 아간의 범죄함에 사용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아간도 여리고성의 전리품 중에서 일부를 ‘감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들 부부는 판 값의 일부를 감추는 행위에 있어서 공모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의 잘못된 행위를 보고 반대를 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베필’로서, 또한 가정의 영적인 파수꾼으로서 때로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꾸짖고 돌이키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그 부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판 값의 일부를 감추는 행위는 사도를 속이는 행위이기에 앞서 하나님을, 성령을 속이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그들의 부정직한 행위에 대해 엄히 책망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5:3)

아나니아의 행위는 사탄의 조종에 의한 악한 행위였고 결과적으로 성령을 속이는 행위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짓말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거짓말하는 자를 심판하신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 5:4,6)

그들의 감춘 행위는 사람을 속인 행위이기에 앞서 만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였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철처하게 회개하고 시편 51편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사람에게 범죄하였지만 그 범죄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임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 51:4 상)

아나니아의 범죄는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임을 베드로는 다시 한번 책망합니다.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4 하)

결국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아내 삽비라도 동일하게 ‘주의 영’(성령)을 시험한 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정직의 댓가는 죽음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짓의 영이 없는지, 거짓말하는 습관은 없는지 되돌아 보며 하나님께 철저히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범죄한 이후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 51:6)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0)

두번째로 부부의 죄는 위선과 탐욕의 죄이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소유의 얼마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려고 했던 행위 자체는 선한 행위처럼 보이나 그 중심의 동기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그 부부는 4장에 기록된 것처럼 바나바가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헌금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영적 지도자였기에 그의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교인들은 바나바에 대해서 더 큰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이름은 더욱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도 전해졌고, 그들도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토지를 팔아서 공동체에 헌금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 속에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위해서,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헌금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순수한 동기로 헌금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헌금을 통해서 바나바처럼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명예를 얻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 헌금을 하였기에 그들은 사도들과, 성령을 속이고 판 것의 일부는 감추고 마치 전부인 것처럼 헌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위선적인 행동은 사탄의 계략입니다. 그들이 그러한 마음을 먹었을 때 그들은 이미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사탄의 조종을 받게 된것입니다.

요한 복음 8장 44절에 보면 마귀를 가리켜서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의 진실함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판단과는 다른 기준을 갖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16:7 말씀에도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나타난것을 보고 판단하고 내면보다는 외면을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인간들의 외식됨과 위선을 미워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들로 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기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재산을 판 값의 일부는 감추고 그것이 전부인 양 외식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그들 마음 속에 탐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아간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명품?) 은 이백 세겔과 금 덩이 오십 세겔’에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 하는 전리품을 감추어 두었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가 열왕기하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은 후 불치의 병 나병으로 부터 깨끗함을 받은 나아만 장군의 예물을 엘리사가 거절하자,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좇아가서 거짓말을 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서 집에 감추게 됩니다.

게하시는 탐욕으로 순간적으로 눈이 멀게 되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주인 대신 예물을 취하게 되었고, 그 댓가는 나아만 장군이 갖고 있었던 나병을 얻게 되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5:4 베드로의 말처럼 그들의 토지는 팔기 이전이나 판 이후의 대금도 그들의 것이었기에 그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헌금 할려고 할 때 그들의 마음 속에 사탄이 들어왔고 사탄의 영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자 그들은 성령을 속이고 일부를 감추고 헌금한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물질이 우상이 됩니다. 물질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을 섬기는 자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의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물질이 나의 삶이 주인되지 않고 물질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당시 초대 교회에게 주시는 영적인 메세지와 우리가 배우게 되는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의 순수함, 성결을 원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행전 4장까지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소수의 무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초대 교회의 확장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해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함께 하심으로 성령 충만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나된 초대 교회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고, 수 많은 무리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승리의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5장의 기록은 초대 교회의 최초의 실패에 대한 기록입니다. 영적인 시련은 교회 내부에서 먼저 발생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인 영적인 순결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사건입니다.

초대 교회의 승리는 위대한 사도의 감동적인 설교로 인한 것도 아니며, 초대 교회 교인들의 헌신과 믿음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오천명이 넘는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된 것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구원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의 단기간의 외면적 확장은 또 다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교만과 탐욕이 교회안에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부정직하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온 열방 가운데 세워질 하나님의 교회안에 세속적인 가치관과 죄악의 습관들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기준을 제시하신 사건이라 해석해야 합니다.

레위기에 반복되는 말씀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니라”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이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내에서 손상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된 아간의 범죄 사건과 동일한 영적인 교훈을 던져 줍니다.

여호수아 6장까지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 장군의 지도력하에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있던 이방 족속들을 다 물리치는 내용입니다.

정복 전쟁의 클라이막스는 여호수아 6장에 기록된 여리고성 정복 전쟁입니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정복하고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여호수아 7장에 아간의 범죄 사건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가소롭게 생각하던 작은 성 아이 성 전투에서 첫 패배를 경험하게 되고, 결국 아간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은 위기를 한 단계 넘어가게 됩니다.
두 사건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의 공동체인 이스라엘과 초대 교회 공동체를 성결케 하시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열방 가운데 증거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이 사건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생겼습니다.

5절 말씀에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아내 삽비라의 죽음 이후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5:11)

무엇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악을 미워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이 하나도 상한 것이 없이 살아 있음을 본 다리오 왕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치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단 6:26)

다리오 왕은 그 당시 세상을 호령하는 메대-바사의 황제였지만 다니엘의 생명을 보존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앞에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설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은 그 당시 온 교회 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살아 계셔서 악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세상 가운데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이자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인 우리들 안에 부정직과 위선과 탐욕이 사라질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된 우리 교회가 악을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날마다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놀랍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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