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마 4:12-22
9/5/2021 주일 낮 예배
• 예수님의 복음 전파 사역의 시작 (12-17)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은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증거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였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3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시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경험한 시험이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험입니다.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마귀로 부터 오는 이 세가지 시험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4)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4:7)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인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는 ‘성령의 검’과 같은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순종함으로 영적 전투에서 날마다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 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자라나신 곳은 갈릴리 부근에 있는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중심지는 갈릴리 호수 인근 마을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버나움이 사역의 본거지(base camp)였습니다.
갈릴리 서북안에 위치한 가버나움은 세리 마태가 부름받은 곳이며,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곳이며, 귀신들린 사람들과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곳입니다. 현재는 베드로의 집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5세기에 지으진 바실리카식 교회당이 서 있고, 4세기의 회당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살면서 사역을 하게 된것은 구약 성경, 이사야서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으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사 9:1-2절 인용)
(사 9: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가버나움은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북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앗수르의 입장에서 볼 때 요단강의 서쪽에, 즉 ‘요단강 저편’에 있습니다. ‘해변길’은 갈릴리 해변 지역을 가리키는데 가버나움은 해변 마을입니다. ‘이방의 갈릴리’라는 표현은 가버나움이 속한 갈릴리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갈릴리는 과거 앗수르의 침공으로 이방화되었고, 예수님 당시에도 여전이 이방인이 많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지역 중심으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갈릴리 지역은 흑암이 지배하는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소외받고 천대받던 그 어두운 곳에 큰 빛이 비칠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면서 큰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마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기 이전의 우리의 삶 또한 이방의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처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심으로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 중에 복음이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첫 메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침례 요한의 첫 메세지와 동일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태복음의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4회/32회 언급)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왕이요 온 인류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 왕국’이 실현되었습니다. 귀신이 쫓겨가고 눈 먼자가 눈뜨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가는 치유의 기적을 통해서, 말씀으로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시고 물위를 걸어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짐을 보여 주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죄의 노예 상태에 있던 ‘흑암의 권세’아래 있던 백성들에게 ‘기쁨 소식’을 전하심으로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영생의 약속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회개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악을 마음으로 뉘우치고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 숭배하던 자들은 우상을 버리고 주께로 나오는 것을 의미하며,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거짓말 하던 자들은 그 악한 행실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받은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선포하였을 때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들은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에게 “우리가 어찌할꼬”라고물었을 때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이 있어야 우리 마음 속에 회개가 일어납니다. 마음속의 뉘우침은 행동의 변화로 연결됩니다. 과거의 악한 행실들과 습관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옵니다.
회개하는 자들은 천국을 선물로 받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심으로 천국이 가까이 다가옴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개를 통해 예수님을 마음 속에 주님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신 성도님들은 날마다 주님앞에 나아갈 때 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고백하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실 줄 믿습니다.
• 제자들을 부르심 (18-22)
갈릴리 호수 인근 지역에서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우선 순위를 두시고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신 일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란 의미는 유대인의 스승인 랍비에게서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랍비에게서 율법과 탈무드를 비롯한 유대 전통을 배우고 익히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심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 나라는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짐을 가르쳐줍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혼자서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실 수 있고, 천사들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천국을 확장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는 ‘소수 정예’의 원칙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이적을 행하시고 복음을 전하셨지만, 제자들을 선택하신 후 열 두명의 제자들을 양육하시는데 집중하셨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16:21 “이때로부터” (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후) 이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제자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제자도’(discipleship)를 가르치십니다. 제자도의 핵심은 ‘십자가 지는 삶’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삶’ ‘서로 발을 씻기는 겸손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명의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르신 4명의 제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곳은 갈릴리 해변입니다. 어촌 마을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지식인들과 비교하면 무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평생을 고기를 잡으며 살았던 평범하고 가난한 서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일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시로 변하는 기후에 대처하는 유연함과 강인함,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듯 그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명의 제자들 중 첫 제자 4명을 평범한 갈릴리 어부들 중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시험을 치르고 원서를 내고 인터뷰를 하여 선발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적인 의미에 있어서 ‘부르심’(calling)에는 3가지 종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구원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죄악 가운데 살고 있던 우리를 찾아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섬김에로의 부르심’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섬기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주신 은사(달란트)에 따라 봉사하고 섬기시길 바랍니다.
세번째는 ‘특정 사역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로 부름받은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구별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종(사역자)의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흔히 말하는 풀타임 사역자(목사, 전도사, 선교사) 뿐 아니라 자신의 직업과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한 의사, 교수, 교사, 엔지니어, 기술자들이 포함됩니다. 의료 선교사, 컴퓨터 기술 선교사, 농업 선교사, 언어 선교사, 교육 선교사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목회 영역도 세분화 되어 전문 목회자(어린이, 음악, 행정, 선교, 실버, 설교)가 각광 받는 추세입니다.
예수님께서 4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내용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1) 모두 갈릴리 어부들이었고 자신의 일(어부의 일)에 충실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이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4:18)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4:21) (ex. 모세, 다윗:목자, 아모스:농부, 예레미야/에스겔:제사장 가문)
2) 예수님은 명령하셨고 그들은 순종하였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4:19)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20)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부르시니”(4:21)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22)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실 때 다른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단지 제자들이 할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원어: 사람의 어부)로 만드시는 일이었습니다.
평생 갈릴리 호수에서 생선을 잡아 삶을 연명하며 가족을 부양하던 어부들을 제자로 삼아 그 후로는 “사람의 어부”, 즉 영혼을 구원하는 제자로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동일합니다. “곧” 즉시로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과 재산과 가족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았고 뒤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ex.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예수님의 말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 9:62)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려면 문자적으로 직업을 버리고 가족을 버려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베드로도 아내가 있었고, 바나바도 사유 재산이 있었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 삶의 목적이 바뀌어야 함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사람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음으로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3) 예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일생의 사명’(life mission)을 주십니다.
그들에게 주신 일생의 사명은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기에 그들은 평생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험이 오고 환난이 닥칠 때에도 사명은 그들을 붙잡아 주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사명을 잊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슬픔과 낙심,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제자들을 찾아 가셔서 그들과 대화하시며 음식을 나누어 드시며 그들에게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너희들은 다시 생선이나 잡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갈릴리 어부’로 살지 말고 ‘사람들의 어부’로서 살아야 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 가운데 헤매며 목적 없이 살던 우리를 찾아 오셔서 구원의 선물을 주시고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주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을 기억하며 붙들고 사는 성도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시험을 이길 힘은 사명을 회복하고 사명에 충실함에 있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조건에서 보면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이었으나 주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셨고, 그들의 미래를 보셨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들의 어부”로 만들어 주십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곧”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즉각적으로 온전히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제자로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을 기억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하는 일에 쓰임받는 천국의 일꾼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