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산에 오를자가 누구인가?”

  • 본문: 시편 24편

4/29/2020 수요 예배

오늘 본문의 시편은 시편 15편과 한쌍을 이루는 시로서, 하나님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로 묘사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자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시편입니다.

먼저 배경을 살펴보면 시편 24편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법궤(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을 때(참조 삼하 6장), 혹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적은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는 오랫동안 이 시편을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예루살렘 성소로 들어가시는 승천 기념시로 사용해왔습니다.

  •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 (1-2)

1-2절에서 다윗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짝을 이루며 우주 전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것(소유)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분의 다스리심을 받습니다.

2절은 원어로 보면 ‘왜냐하면 그는’(키-후)로 시작하는데, 1절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은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강들을 건설하셨습니다. 혼돈을 상징하는 바다와 강위에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번주에 여행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았는데 ‘물의 도시’로 알려진 이태리 베네치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베네치아는 수백개의 작은 섬들이 연결된 도시인데 놀라운 것은 수백년 전에 물 속에 수만개의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집과 집 사이로 작은 물길이 나있고 그 사이로 배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대 베네치아 인들의 지혜와 강인한 생존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작은 도시를 보면서도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창조주 하나님은 혼돈이 가득한 흑암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질서정연한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그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창조하시고 지금까지 운행하고 계심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찬양케됩니다.

  • 참된 예배자의 자격 (3-6)

 3-6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자들의 자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5편에서는 “주의 장막에 머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마음에게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진실하며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거의 유사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손이 깨끗한 자’입니다. 손이 깨끗하다는 의미는 외적인 행동이 올바르고 진실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인데 그것은 의로운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이는 외적인 행위와 함께 내적인 생각이 모두 강조된 표현입니다. 이처럼 외적인 태도와 내면적인 삶이 일치될 때,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게”됩니다.

뜻을 허탄한 데 두는 자는 우상 숭배하는 자이며, 거짓 맹세하는 자는 위증하는 자,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율법입니다. (출 20:16)

참된 예배자는, 시편 15편과 24편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청결하며 진실하며 외적인 삶의 모습이 공의롭고 올바른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 한국의 뉴스를 보니까 대형 금융 사기 사건의 주범들이 검거되었는데, 그 중의 한명이 훔친 수억원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였는데 일부는 개인 생활비로 사용하였고, 그 일부는 교회에 헌금을 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돈으로 교회에 헌금하는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헌금 행위’가 하나님께 헌금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 이름을 낼려고 교회라는 ‘종교 기관’에 기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돈을 받지 않으시겠지요. 오히려 하나님은 그 사람의 깨끗지 못한 손과 진실하지 못한 마음을 책망하지 않으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된 예배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어떠한 복을 누리게 됩니까?

5절에 보면 그들은 “여호와께 복을 받게 되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는다”라고 말씀합니다.

6절에 “이는” 지시 대명사가 사용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시온 산에 올라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며 “야곱의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찾다’ ‘구하다’ 이 동사는 모두 예배와 관련된 용어로, 성전 방문, 예배, 하나님의 뜻을 구함, 하나님의 임재 요청에 사용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예배자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찾고 구하는 자에게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코로나 19로 하루 하루의 삶이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일지라도,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며, 하나님을 찾고 구하되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으면서 큰 도전과 은혜를 받게 되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 중에서 소수의 왕들만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통치 기간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땅에는 평화가 임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많은 왕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했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봅니다. ‘나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섬기되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하는가?’

  •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 (7-10)

이 단락에서는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이 마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영광스럽게 돌아오는 전사같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시온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전쟁후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 성소로 다시 옮겨 온것을 연상케합니다.

‘영광의 왕’이라는 표현이 무려 5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7-8절과 9-10절은 유사하게 쌍을 이루며 반복적으로 문들을 향하여 ‘머리를 들어라’라고 명령합니다.

8절, 10절에는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고 그 대답으로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라고 대답합니다.

전쟁에 능하시며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영광의 왕이시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왕이신 것입니다.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만왕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새찬송가 67)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1.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그 크신 사랑 늘 찬송하라

예부터 영원히 참 방패시니, 그 영광의 주를 다 찬송하라

2. 능력과 은혜 다 찬송하라 그 옷은 햇빛 그 집은 궁창

큰 우뢰소리로 주 노하시고 폭풍의 날개로 달려가신다.

3. 저 아름답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이 땅 다 주의 조화

그 힘찬 명령에 터 잡히나니 저 푸른 바다는 옷자락이라.

4.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 주 의지하여 늘 강건하리

온 백성 지으신 만왕이시니 그 자비 영원히 변함없어라.

이 찬송가는 유명한 작곡가 하이든의 동생 미카엘 하이든이 작곡하였고, 인도 동인도회사의 임원이었다가 나중에 인도 뭄바이의 총독이 된 로버트 그랜트가 작사하였습니다. 그랜트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인도 선교에 사용하였고 선교사들을 많이 도왔습니다. 그는 시를 잘 썼는데 인도인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여러 편의 찬송을 지었습니다. 그 찬송시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졌지만 이 찬송가는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찬송의 고백처럼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인 우리가 날마다 온 백성 지으신 만왕의 왕, 영광의 왕께 경배하며 그 크신 사랑을 늘 찬송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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