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함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함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히 내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 본문: 23:6 a

4/15/2020 수요 예배

켄 가이어(Ken Gire) 목사님의 책 “폭풍 속의 주님” (At Peace in the Storm)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동북부에 인생 풍파를 겪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 카운셀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잠시나마 생명줄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인사를 나눈 뒤 내담자에게 소파를 권하고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언제가 똑같은 형식으로 상담을 시작합니다. 절대 먼저 내담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깊은 트라우마나 가정 환경을 파헤치지 않습니다. 교회에 꾸준히 참석하는지도 묻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카운셀러는 도움을 청하는 내담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언제 느꼈습니까?

이 현명한 카운셀러가 내담자에게 신실한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묻는 것은 신실한 하나님이 곧 우리 영혼의 피난처이자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난 날에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떠올리고 포착함으로 든든한 반석 위에 견고하게 자리하게 됩니다.

예기치 않은 인생의 풍랑 앞에서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 잡히게 되는것은 우리를 삼킬 듯 넘실대는 거친 파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파도 넘어 계시는 “말씀만으로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믿음의 안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의 가택 연금 당한 듯한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환경에 눌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소생케되며 날마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웨인즈빌 침례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시편 23편을 마무리하는 엔딩 구절입니다.

23:1-5에서 선하신 목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에게 어떤 분이셨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보호자이시며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회복자시며 공의로운 분이시며 삶의 인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 때에도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베푸시는 보호자, 보복자되시며 기름으로 머리에 부으시고 내 잔을 가득채우시는 참 좋으신 나의 주인되십니다.

그리고 6절 말씀으로 시편 23편을 마무리하면서 다윗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자비로운 두 가지 성품을 노래하면서 그의 인생을 복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 찬양합니다.

‘선하심’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에 ‘토브’라고 기록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중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4, 12, 18, 21, 31)

성경에서 말하는 ‘선’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부족함이 없고 건강한 상태를 ‘좋은 것’ ‘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선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 (롬 8:28) ‘모든 것’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당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것은 ‘선한 일’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working together) 하나님의 ‘선’(goodness)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일들 -최근의 코로나 19를 포함하여- 을 통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성도들과 자주 만날 수 없음으로 인해 경험하는 외로움과 소외됨을 통해 한 성령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코이노니아’(교제)의 가치를 알게 되고, 이동의 제한과 활동의 자유롭지 못함을 통해 일상 생활에서 누렸던 작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됩니다.

언제 해결될지 알 수 없으나, 이 어려움의 시간을 지혜롭게 이겨 나갈 때 나중에 이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lovingkindness) 찬양합니다.

‘인자하심’의 히브리어 원어는 구약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인 ‘헤세드’입니다. 히브리어 ‘헤세드’는 여러가지 단어로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인자하심, 긍휼(mercy), 사랑(love), 변치않는 사랑(unfailing love, steadfast love)등 등. 그런데 하나님의 ‘헤세드’는 사람들에 대한 단순한 긍휼과 사랑과는 달리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 백성들의 언약 관계 속에서 경험될 수 있는 ‘언약적 사랑’(covenantal love)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로운 행동을 행하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조건적 사랑’ (conditional love)이 아니라, 그 백성의 무지함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으로 인해 언약 백성에게 부어지는 ‘무조건적 사랑’ (unconditional love)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 가운데 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불릴 만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교만하기도 했고, 음란하기도 했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하신 약속 – “집과 나라가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 7:16)- 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가 이 땅에 오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although, nevertheless)의 사랑입니다. 내가 잘 나서, 내가 노력해서, 내가 의로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 먼 사랑’- 어떤 사람은 직설적인 표현으로 ‘crazy love’라고 함- 때문에 우리는 존재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또 다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의지하며 살아 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Have mercy on me),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Pour out your grace and abundant love)

이러한 기도가 날마다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Surely goodness and mercy sha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과거에 그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원수의 위협과 공격 가운데서도 늘 함께 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할 뿐 아니라, 그의 미래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늘 함께 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따르리니”에서 동사 “따르리니”(follow)는 히브리어 원어 ‘라다프’의 번역인데, 이 단어는 원래 원수들이 해를 가하기 위해 집요하게 쫓아가는 것(pursue after)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시편 23:6 상반절 구절을 직역하면 “진실로 선과 인자가 나의 모든 생명의 날들 동안에 나를 추적하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보살폈는가하면, 마치 원수가 그를 죽일려고 집요하게 쫓아오는 것처럼,  그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를추격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날개로 그를 덮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하나님을 ‘추적자 하나님’ (God the Chaser)이라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의 평생에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남은 인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늘 함께 할 것을 믿고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또 다른 시편의 권면처럼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오늘 하루,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을 누리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최근 기도제목

Contact